이 땅에 심고 싶었다.
민재는 그저 학교에 다녔다.
하지만 그 아이를 미국 땅에 머물게 하기 위해, 준희와 지수는 수없이 국경 같은 서류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결국, 가족이라는 이름이 그들에게 한 줄의 문을 열어주었다.
준희와 지수, 그리고 여섯 살 민재.
이 가족이 미국 땅에 발을 디딘 건 관광이었다.
처음엔 진심으로 그랬다.
지수의 여동생이 이곳에서 오래전부터 살고 있었고, 부모님과 함께 작은 비즈니스를 운영하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한데 모여 시간을 보내기 위해,
민재의 첫 해외여행을 기념하기 위해,
그저 몇 달의 체류를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수는 미국 학교에 다니는 조카들을 보며 마음이 흔들렸다.
학원 다섯 개를 전전하던 민재의 한국 생활이 떠올랐다.
조금 더 여유롭고 안정된, 웃으면서 등교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지수에게 너무도 대조적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결정은 내려졌다.
돌아가지 않겠다고.
이 땅에 민재를 심고 싶다고.
준희는 어학연수 비자로 신분을 바꿨다.
캠퍼스라고 하기엔 너무 좁고, 수업이라고 하기엔 너무 느슨한 영어학원에서
하루 몇 시간씩 수업을 들었다.
비자 연장은 그 학교 출석률과 서류에 달려 있었다.
지수의 여동생은 형제초청을 신청해주었다.
하지만 그 길은 멀고 험했다.
수십만 명이 대기 중인 그 문 앞에, 그들의 이름이 올라갔다는 사실만으로는
당장 어떤 삶도 보장되지 않았다.
생활은 빠르게 현실이 되었다.
돈이 필요했고, 신분을 유지할 수 있는 다른 방법도 필요했다.
준희와 지수는 작은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작은 카페, 미용실, 한인 슈퍼…
어떤 것이든 좋았다.
그래서 그들은 E-2 투자비자를 신청했다.
E-2 비자란,
미국과 투자 조약을 맺은 국가의 국민이
미국 내에서 상당한 자본을 투자해 실질적인 사업을 운영할 경우 발급되는 비자다.
2년마다 갱신이 필요하며, 사업의 연속성, 고용 창출, 자금 출처 등
까다로운 요건을 증명해야 한다.
그들은 영어로 된 사업계획서를 작성했고,
지수의 여동생 가족의 도움으로 매장을 인수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경제에 금융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고객은 줄었고, 월세는 밀렸으며, 결국 문을 닫았다.
사업은 철수했고, 그들의 비자 갱신 사유는 사라졌다.
서류는 다시 그들을 밀어냈다.
지수는 울었고, 준희는 밤마다 노트북을 켰다.
지수는 여동생에게 다시 손을 내밀었다.
다른 사업체를 알아보고, 직원으로 등록해주는 방식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이민 브로커를 만났다.
"이건 해줘야 해요. 그게 빠지면 통과 안 됩니다."
서류 하나에 수천 달러,
이력서 한 줄, 영수증 하나까지 값이 매겨졌다.
그리고 다시, 어학연수.
준희는 비자 만료 전마다 학교를 옮겼고,
출석 체크에 늘 신경을 곤두세웠다.
하루하루가 서류와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민재는 학교에 다녔다.
사립 크리스천 스쿨, 작은 교회 안의 교실, 친구들과의 점심, 성경 구절 암송.
그는 웃었다.
그러다 어느 날, 편지가 도착했다.
지수의 형제초청 서류가 이민국으로부터 ‘승인’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 편지는 단 한 장이었지만,
그 종이 위에는 지난 몇 년간의 고비와 도피와 선택과 망설임이
모두 얹혀 있었다.
그날, 지수는 준희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이제, 우리 조금은 편해져도 되겠지?”
나는 그 이야기를 지수의 여동생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그녀는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
“형제초청이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그 종이 하나 받기까지, 언니 부부는 진짜... 많이 싸우고, 버텼어요.”
그들은 결국 서류 위에 뿌리를 내렸다.
그러나 그 뿌리가 한 줌의 종이에서 출발했음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 이야기는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은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한 것으로, 특정 인물이나 사실을 단정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