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어느 날, 한 청년은 친구를 태워주다 길을 잘못 들었다.
핸들을 돌려 돌아오려는 찰나, 그는 이미 미국에서 ‘사라진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는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단지 친구를 한 번 태워다 주려는 마음뿐이었다.
로스앤젤레스 시내에서 2시간 남짓, 익숙한 길에서 약간 벗어났을 뿐인데
그날의 작은 선택이 그의 삶을 완전히 바꾸고 말았다.
그는 다카(DACA, 불법체류 청년 추방유예제도) 수혜자였다.
아홉 살 무렵 부모를 따라 미국에 입국했고, 신분은 없었지만 학교를 다녔고, 일을 했으며, 세금을 냈다.
“드리머(Dreamer)”라고도 불렸다.
그는 합법적인 시민은 아니었지만, 국가로부터 ‘임시적으로 존재를 허락받은 사람’이었다.
그 허락은 조건부였고, 연장 심사는 늘 긴장감 속에서 이뤄졌다.
그날, 그는 친구를 라이딩해주기 위해 LA를 떠났다.
정확한 목적지도 없는 짧은 나들이.
네비게이션도 없이 길을 달리다보니, 어느새 도로 표지판이 바뀌어 있었다.
그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고, 핸들을 꺾어 U턴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그는 국경을 넘어 멕시코 땅에 들어선 뒤였다.
그 사실을 안 것은, 다시 미국 땅으로 돌아오려 할 때였다.
국경수비대는 차량을 세웠고, 그의 이름과 번호를 확인하자마자
그를 별실로 데려갔다.
“당신은 더 이상 다카 수혜자가 아닙니다.”
그 말은 곧, 당신은 이제 불법입니다라는 말과 같았다.
다카의 조건 중 하나는 ‘미국 내 거주’였다.
출국은 곧 자격 상실.
단 몇 분의 경계 넘김이, 법적으로는 ‘자발적 출국’이었다.
그는 친구를 위해 운전대를 잡았고, 길을 잘못 들었으며,
돌아오려던 그 순간,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의 등을 밀었다.
구금은 곧바로 시작됐다.
별다른 설명도 기회도 없었다.
그는 다시 미국에 들어올 수 없었다.
다카 서류는 그 순간 자동으로 무효화되었고,
그는 이름 없는 ‘불법 체류자’로 돌아갔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불법 입국자’가 되었다.
태어나 자란 나라로부터 하루 아침에 추방된 사람이 되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다카 수혜자 네트워크의 작은 뉴스레터를 통해 읽었다.
그의 얼굴은 공개되지 않았고, 이름도 이니셜로만 남았다.
하지만 나는 그 청년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LA 코리아타운의 델리에서 커피를 내리던 청년,
세탁소에서 옷을 접으며 머리를 조아리던 청년,
커뮤니티 칼리지의 야간 강의실에서 조용히 필기하던 누군가.
그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도 기사화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의 실수는 실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제도 밖에 놓인 사람만이 감당해야 하는 ‘정확함의 의무’**였다.
합법적 존재이기를 원한다면,
길 하나, 표지판 하나, 좌회전 타이밍 하나까지
‘국가가 요구하는 정답’을 선택해야 했다.
오늘도 나는 생각한다.
그는 여전히 멕시코 땅 어딘가에 있을까.
다시 돌아오고 싶어 한 번 더 국경을 넘으려 하진 않았을까.
혹은 포기했을까. 아니면 누군가의 집 마당에서 잔디를 깎고 있을까.
그는 사라졌지만, 그 실수의 이름은 여전히 이 땅 어딘가에 떠돌고 있다.
경계는 선이 아니다.
경계는 때로 한 번의 유턴,
단 한 번의 작은 불빛,
그리고 국가의 말 없는 문 하나로도 만들어진다.
“이 이야기는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은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한 것으로, 특정 인물이나 사실을 단정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