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집

비어 있음은 무너짐이 아니다

by 운조


바람이 머물다 간 자리에 남은 것



크리스마스 오후였다.

계절을 잊은 듯한 햇살이 산책길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눈이 내리지 않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대신, 세상은 봄날처럼 따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람은 심술궂을 만큼 매서웠다.

따스한 빛과 차가운 공기가 동시에 머무는, 기묘한 크리스마스의 오후였다.

그날 나는 낮은 나뭇가지 사이에 몸을 숨긴 작은 집 한 채를 발견했다.

이미 주인이 떠난, 빈 둥지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 집은 온전히 자연의 재료만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무심히 버렸을 투명한 비닐 끈과 질긴 비닐 조각들이 진흙과 엉겨 붙어 둥지의 외벽을 감싸고 있었다.

도시의 숲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작은 새가 선택한,

가장 현실적이고도 치열한 생존의 방식이었다.

사람의 어깨 높이밖에 되지 않는 낮은 나무에 집을 짓기까지,

그 작은 부리는 얼마나 많은 두려움을 물어다 날랐을까.

둥지를 흔드는 것은 바람이었다.

앙상한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바람이 불 때마다

둥지에 섞인 비닐 조각들이 파르르 떨리며

마치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금방이라도 바닥으로 떨어져 흩어질 것만 같은 위태로운 모습.

그러나 둥지는 무너지지 않았다.

새끼를 품기 위해 진흙을 개어 바르고,

깃털을 뽑아 온기를 채웠을

어미 새의 시간이

그 안에 기둥처럼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새가 떠난 뒤,

비어 있는 그 자리를 가장 먼저 채운 것은 공기였다.

낮에는 크리스마스의 눈부신 햇살이 다녀갔고,

밤에는 살을 에듯 차가운 추위가 그 자리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집은

한 번도 완전히 비워진 적이 없다.

생명이 머물다 간 자리에는

보이지 않는 삶의 무게가 남아

형체 없는 공기조차

그곳에서는 기둥이 되어 집을 지탱한다.

텅 빈 둥지를 바라보며

나는 ‘비어 있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무언가가 사라지면

그것을 상실이나 무너짐의 시작으로 여긴다.

하지만 저 둥지는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비어 있다는 것은 소멸이 아니라,

그곳을 거쳐 간 기억과 온기가

지금의 시간을 지탱하는 힘이 되어간다는 사실을.

비닐 조각 하나에도 스며든 생존의 의지는

주인이 없는 지금도

바람에 맞서 집을 세워두고 있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등 뒤로 여전히 바람이 불어왔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은

둥지에서 가져온 햇살 덕분에 따뜻했다.

비어 있음은 무너짐의 시작이 아니라

지속의 다른 얼굴이라는 문장이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오래 가슴에 남았다.

우리 삶의 빈자리들 역시,

사실은 보이지 않는 기억들로 빽빽하게 채워진

가장 단단한 성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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