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처음 외박한 날, 호박 볶음이 있었다

된장찌개 같은 출장.

by 운조

식량이 애국이던 시절, 퇴비는 생명과 같았다. 깊은 산골 마을에 퇴비 독려를 위해 간 어느 날, 나는 생전 처음 외박을 하고 따뜻한 밥 한 끼를 얻어먹었다.


1980년대 초, 나는 면서기였다.


그 시절엔 나라 전체가 "쌀 한 톨이라도 더 많이 생산하자"는 구호 아래 움직였다.


식량 자급이 시급했고, 논밭마다 퇴비를 얼마나 잘 만들어내느냐가 곧 국가 목표 달성의 열쇠였다.


그렇기에 나는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건초를 썩혀 퇴비를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고, 실적을 독려하는 일을 맡았다.


그건 단순한 행정이 아니었다.


농사도 못 지어본 내가, 농민들 앞에서 퇴비를 말해야 했던


부담스럽고도 묘한 역할이었다.


그날도 그런 출장 중 하나였다.


면사무소에서 한참 떨어진 산골 마을, 버스가 끊기고 걸어야만 닿을 수 있는 곳,

산길을 돌고 돌아 머루. 멍가. 그리고 새소리... 산딸기를 따 먹기도 하며 선배 김서기 님 뒤를 쫄랑쫄랑 쫓아 갔다. 길치인 나는 김선배 님을 놓치면 큰일이었다. 잔뜩 긴장하며 걷다 보니 이장님 댁 사립문 앞이었다.


나는 이장님 댁 마루에 앉아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퇴비 더미를 살펴보고, 밤이 되어서야 하루 일정을 마쳤다.


그리고 그날, 생전 처음 외박을 하게 되었다.


낯선 곳, 낯선 이불, 낯선 마당.


하지만 부엌에서 풍겨온 된장찌개 냄새와 갓 볶은 호박 반찬이


그 낯섦을 천천히 녹여주었다.


그 밤의 밥은,


국가사업이라는 말보다 더 진한 책임과 따뜻함으로 나를 채워주었다.


이장님 사모님이 내 그릇을 보며 웃던 얼굴,


그 집 다락에서 조용히 바람 소리를 들으며 누웠던 마음.


그 모든 게 지금도 퇴비 냄새처럼, 뇌리에 깊게 스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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