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영웅, 그리고 희미한 나의 시절

드라마의 주인공과 나

by 운조


넷플릭스 드라마 『약한 영웅』을 볼 때마다, 켜켜이 쌓여 있던 어린 시절의 먼지가 스르륵 걷히는 기분이 든다. 쉰을 넘긴 어느 날, 초등학교 동창을 길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어색한 미소와 짧은 인사를 나누는 순간, 그는 뜬금없이 한마디를 던졌다.


"야, ㅇㅇ가 너 혼내준다고 했었어."


그 말 한마디에 낡은 흑백 사진처럼 잊고 지냈던 풍경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작고 왜소했던 어린 나. 공부깨나 한다는 이유로 선생님과 부모님의 칭찬을 독차지했던 아이. 어쩌면 그 시절의 나는, 덩치 큰 아이들의 눈에 곱지 않게 비쳤을지도 모른다. 내게 그런 말을 전해준 친구는 늘 뒷자리에 앉아 웅성거렸고, 나는 앞자리에 얌전히 앉아 책에 코를 박고 있었다. 특별한 교류도, 뚜렷한 갈등도 없었던 우리 사이. 그런데, 왜 나를 혼내준다고 했을까.


어린 시절, 나는 누군가의 주먹이나 발길질에 멍든 기억은 없다. 50년의 세월을 훌쩍 넘어, 낯선 친구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그 한마디가 묘한 파장을 일으켰을 뿐이다. '혼내준다'는 간결한 단어는 여전히 불편한 잔상으로 남아 아릿하게 가슴을 찌른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던 걸까. 그저 조용히 책상에 앉아 숫자를 풀고, 예습 복습을 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못마땅했을까.


그때, 폭력은 그림자처럼 주변을 맴돌았을지 모른다. 차가운 시선, 짓궂은 농담, 알 수 없는 소문의 형태로. 만약 그 '혼내준다'는 말이 어린 날의 내 귓가에 직접적으로 꽂혔다면, 나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아무 일 없었다고 믿고 싶었던 그 시절, 과연 나는 정말로 평온했을까. 어쩌면, 불안한 그림자를 애써 외면하며 작은 세상에 웅크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맞설 용기 따위, 어린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숨 막히는 공포 속에서 작은 어깨를 떨며, 그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간절히 바랐을 뿐.


『약한 영웅』 속에서, 위태로운 소년은 자신을 덮쳐오는 폭력에 맞서 섬세한 전략과 용기로 꼿꼿이 일어선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과 단단한 의지를 지켜보며, 나는 오히려 힘없이 흔들리던 어린 날의 나를 떠올린다. 그때는 그저 흘려들었던, 혹은 아예 듣지 못했던 그 말 한마디. 이제 와 곱씹어보니, 그 말은 얼마나 서늘한 칼날이었을까. "ㅇㅇ가 너 혼내준다고 했어." 나를 겨냥했던지도 모를 그 섬뜩한 예고 앞에서, 어린 나는 얼마나 무력했을까.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영리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맞설 힘을 기르는 재능 따위는 내게 없었다. 잘하는 건 고무줄놀이와 시험지를 빼곡하게 채우는 것뿐. 그 시절의 나는 너무나 작고 여렸고, 그저 조용히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것이 전부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말은 50대가 되어서야 희미한 과거의 소음처럼 내 귀에 흘러들어왔다. 마치 두꺼운 벽 너머의 희미한 속삭임처럼, 그 말은 어린 나의 세계에는 닿지 못했다.


문득, 만약 그때 그 말을 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이 꼬리를 문다. 영문도 모른 채 던져진 적의 앞에서, 나는 얼마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떨었을까. 아무 잘못도 없이 '혼내준다'는 섬뜩한 말은, 어린 가슴에 얼마나 깊은 흉터를 남겼을까. 그 아이들은 나를 어떤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을까. 알 수 없는 불안감과 두려움에 밤잠을 설쳤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그 칼날은 무뎌진 후에야 내게 도착했다. 그래서 그 시절의 나는 상처 입지 않은 채, 그저 평범한 하루들을 살아낼 수 있었다. 오히려 지금, 50대의 눈으로 그 말을 되짚어보니, 그때의 나는 정말 '약한' 존재였는지, 아니면 그저 주변의 소음에 무심했던 '둔감한' 아이였는지 혼란스럽다.


『약한 영웅』은 잊고 있던 나의 어린 시절을 자꾸만 불러낸다. 그때의 나는,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빛나는 용기를 가진 '영웅'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조용히 숨죽이며, 세상의 풍파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던, 작고 평범한 아이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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