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을 극복하고
끊임없이 빠르게 변화되는 세상 속에서
나는 어떻게 적응해야 될까?
한 주일에 교회 가족 두 분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무척 과로해서 아픈 몸으로
두 분의 위로예배, 입관예배, 발인 예배를
모두 참석하고 돌아와
내가 지금 죽음을 맞이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사유하면서 변화된 나에 모습을 돌아보았습니다
행복은 찾아오는 것도 찾아다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항상 나에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고단하고 아픈 중에도 나는 왜
행복한 마음이 들었을까?
아마도 주님께 내 삶을 맡기는 마음 때문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행복은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열심히 자신의 일상을 즐길 때
주어지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미라클 모닝을 지속하고 새벽에 글을 쓰고
화초 가꾸며 정원을 돌아보고
내 직업으로 주어진 일 가구를 소중하게 바라보고 사랑하며 일을 합니다
근심 걱정은 주님께 맡기고 기도합니다
고난이 있어도 힘들어도 행복하다 말하는
나에게 '독특하다', '어떻게 그렇게 살아'
'가식 아니야' 말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식이 아니고 진실이며 현실입니다
힘든 일을 할 때도 즐겁게 하려 하고
고난과 역경이 주어져도 순응하고
긍정으로 극복하려 노력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변화는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었습니다
기나긴 극심한 방황, 고난의 쓰라린 아픔을
통한 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생각합니다
내게 누군가 자주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할 것 같지 않은데 왜 행복하다 말해?'
'남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해'
'대다수 당신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힘들어해'
그러나 나는 내가 느끼는 현재의 감정 상태가
진실이고 그 감정 상태가 편안하니
범사가 감사가 되고 행복하다 말할 수 있습니다
'선제적으로 준비하고 자원해서 일합니다
창의적으로 변화되려 노력하고 하루가 다르게
변화되어 가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도 하고,
현실이 아무리 어려워도 최선을 다하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결과가 좋지 않아도 내가 최선을 다했다면 스스로 만족하고 고생한 일은 언젠가 성과로 다가오리라는 기대하며 일했던 과정에 의미를 둡니다
노력은 내가 스스로 대단하다.
말할 수 있을 만큼은 해야
보람이 있고 즐겁습니다.
스스로 만족이 행복입니다.
주변에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지만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불어오는 바람, 맑은 공기, 아름답게 펼쳐진 하늘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많은데
부족한 것들만 마음에 담고 있어서
행복하지 못한 것 아닐까요?
내게 우울증이 있었던 긴 시간,
모든 것이 절망이었습니다
살아있는데 죽어있었습니다
육체도 정신도 모두 아팠습니다
스스로 불행하다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으니
행복은 멀리 있었겠지요.
이제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상태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그런 고통의 과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겁니다
기대로 아침을 맞이하고
할 일은 스스로 찾아서 하는
자유함으로 살고 있습니다
어차피 해야 될 일이라면 순응하고
자원해서 즐겁게 합니다
날 대단하다, 하회탈 같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지만
현실을 순응하고 현실에 맞춰
변화되려 노력하고 재미있게 일하는 것뿐입니다
행복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현실에 만족하고 현실을 누리며 살고
나를 스스로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
그것이 행복이 아닐까요?
걱정이 없고 형편이 풍요하고
여유 있을 때만 행복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럽고 힘든 일을 처리했다는 성취감,
열심히 일한 후 잠시 시간을 쪼개서 취하는 휴식, 맛난 식사, 여행.... 등
그저 일상의 소소한 모든 것을
즐기는 감사한 삶을 향해 지속해서 달려가는
삶이 진정 생동하는 행복이 아닐까요?
경제적 여유가 있다고 꼭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내가 우울증의 터널에 들어가기 전
경제적 여건과 현실보다
지금의 경제제 여건과 현실이 더 어려워도
나는 행복하다 말할 수 있으니
아이러니합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나에 삶을 기적이라 말합니다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만으로도
마음먹기에 따라서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환경에서도 행복과 불행은 다른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같은 곳 다른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