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기억하는 이별은, 아주 작은 이별이었다. 초등학교 앞에서는 병아리나 메추리를 팔곤 했다. 혼자 하교했다면 눈길조차 주지 않을 텐데, 그날따라 언니와 함께 하교했고, 우리는 메추리 앞에 멈춰 섰다. 난 졸지에 한 메추리의 엄마가 되었다. 다음 날 아침, 난 일찍 눈을 떠 메추리를 보러 갔는데 죽어 있었다. 엄마는 학교 앞에서 파는 동물들은 일찍 죽는다고 병든 걸 가져온 거라고 하며 내 손으로 묻어주라고 했다. 난 엉엉 울며 죽은 메추리를 두 손으로 잡고, 계단을 내려가 놀이터를 지나 아파트 공터로 갔다. 메추리를 박스에 담아 구덩이를 파고 박스를 끝까지 넣어 다시 흙으로 덮었다. 내 인생의 첫 이별이었다.
10살 채 안 된 나이에 죽음의 충격은 너무 컸던지 비가 오면 우산을 쓰며 메추리의 무덤을 지켰다. 종종 무기력해지고, 힘이 빠졌는데 아마 그건 죽음의 여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후 크고 작은 수많은 이별을 겪었다. 친구와의 절교, 애인과의 이별 그리고 할머니의 죽음. 하지만 이별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언제 겪어도 너무 갑작스러웠다. 단 하루만 더 있었더라면, 조금 더 괜찮은 이별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맞이하는 모든 이별마다 처음 이별했던 그때처럼 세상이 무너질 듯 울었고, 시간이 지나도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이별의 무덤을 내내 지켰다.
헤세의 「싯다르타」에서 싯다르타는 사랑하는 카말라와 ‘마지막 고통이 그녀의 눈을 가득 채웠을 때, 마지막 전율이 그녀의 사지 위로 퍼졌을 때 그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눈을 감겨주었고’ 그렇게 그녀와 이별한다. 이런 이별이 내게도 가능할까? 적어도 내가 하고 싶었던 능동적인 이별은 이런 것이었다. 떠나가는 사람을 원망하지도, 미워하지도 않고, 그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이며 내 손으로 조용히 보내주는 이별. 그동안 나는 이별 앞에서 왜 그렇게 세상 무너지는 듯 아파했을까? 언젠가 다시 이별이 찾아온다면, 그날이 비 오는 날이라도 웃으며 헤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