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than Mar 11. 2024

3. 미국 문화 그리고 직장 적응기

3. 드디어 답이 왔다.

관련 분야에 지원하긴 시작했지만 답이 없다. 한 50군데에 넣어 본 것 같지만 당연히 답이 없었다. 풀타임이든 파트타임이든 인턴이든 지원했지만 답이 없었다. 그래서 한국의 경력과 관련한 곳에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답이 서너 군데에서 왔다. 그리고 한 군데에서는 보기 좋게 전화면접에서 떨어졌다. 그 당시 전화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피자 하나를 시키는 것도 미리 나올 표현들을 머릿속에 생각하고 전화를 들던 때였기에 인터뷰의 벽은 높았다. 미국에 오기 한참 전에도 토익은 900을 넘었지만 처음 들어보는 고유한 단어들과 인터뷰하는 사람 각각의 특유의 억양들을 마주하면 시험과 너무 다르다.  예를 들어 피자를 시킨다고 해도 "a slice of grandma please"라고 할 때 그랜마가 피자의 종류 중 하나라는 것을 모르면 알아들을 방법이 없다.  여하튼 전화면접 말고도 다른 곳들은 현장 면접에서 물을 먹었다.


사실 나라도 안 뽑았을 것 같다. 이제 미국에 일 년도 안 되어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사람을 사무직으로 쓰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클 것이다. 그렇게 좌절을 맛본채 대학원에서 한 학기를 보내고 있었다. 열심히 통계 공부와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얼마 되지 않던 돈을 다 까먹고 있었다. 그리고 첫 번째 팀프로젝트가 끝나갈 때 즘 같은 팀의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여름에 무슨 일 해? 별일 없으면 우리 회사에서 인턴 할래?" 여긴 직장인 중 대학원을 다니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나에 보니 그 친구는 시니어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일하고 있었다. 생각도 못 했는데 이런 식으로 오퍼가 올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그 친구는 나의 은인이다. 당연히 별 계획이 없던 나는 당연히 예스라고 했고 출근일을 기다렸다. 하지만 내가 받은 이메일은 면접 일정이었다. 몇 번 없는 실패의 경험이었지만 이번에도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사무실로 향했다.


헬스케어 분야지만 맨해튼 남쪽에 파이낸셜 디스트릭트에 사무실이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어색하게 "면접 보러 왔는데요"라고 했다. 그리고 한 회의실에 안내되었다. 그리고 그 친구가 들어왔다. "걱정 말고 그냥 보면 돼 면접관들 실무 잘 몰라 내가 실무담당이니까" 그리고는 가벼운 이야기들을 나눴다. "아 그리고 하는 일은 현재는 sql로 보고서 만들고 클리니컬 프로파일 만드는 거야 할 수 있지?" 그리고 그 친구는 방을 떠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이 면접이었다. 그 후에 두 명의 면접관들이 한 명씩 들어와 이것저것 물어봤다. "헬스케어 분야에서 일해봤어요? 어떤 프로젝트해 봤어요? 이런 툴 다뤄봤어요? 무슨 알고리즘 써 봤어요? 설명 좀 해주세요." 뭐 솔직하게 아는 대로 또 모르는 대로 답을 했다. 그렇게 서너 시간이 지났고 기차를 타고 집에 왔다. 사실 집에 오면서도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출근 날짜를 받았다. 나중에 회사를 다니면서 알게 된 거지만 그때 들어왔던 면접관들은 그냥  팀 상사이자 비즈니스 쪽 사람이라 실제 기술 쪽 관련은 잘 모르는 사람이었고 그냥 실무 담당자인 친구를 믿고 이미 나를 뽑아놓은 것이었다. 그렇게 삼십이 넘어 인턴으로 첫 출근을 했다.

작가의 이전글 2. 미국 문화 그리고 직장 적응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