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건의 상속자 (1)
‘온 세상이 눈으로 덮인 광활한 땅, 그 어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눈 위에 찍힌 발자국도, 죽은 나뭇잎 하나도 없는 완벽한 설원. 지평선은 시공간의 종말을 고했다. 푸르른 하늘은 매정하게 땅과의 선을 그었지만, 설원 위에 자신의 존재를 미약하게나마 알리는 듯 저 멀리 메마른 느티나무 한 그루만이 유일하게 지평선 위를 수직으로 가로지르고 서 있다.’
무더위 속에서도 차갑게 겨울을 알리고 있는 설원 사진은 그 테두리가 사람의 손으로 가공된 나무에 가로막혔다. 붉은 벽돌건물 꼭대기 3층에 위치한 작업실 모퉁이에 한 자리를 떡하니 맡았다. 제목 미상. 마땅히 놓을 자리가 없던 이번 사진전 메인 작품은 유난히 아늑하게 벽과 벽이 품어주는 곳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이런저런 신세가 되지 못하는 나였기에 금요일 저녁은 나의 작업을 방해할 사람이 없는 황금 같은 시간이었다. 땅거미가 질 때쯤 시작한 작업은 요동치는 아지랑이가 피기 시작하는 박명의 시간이 찾아올 때까지 이어졌다. 시간이라는 가느다란 실이 끊어지지 않고 무수히 흘러가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갑작스레 아침을 맞이하는 건 결코 기분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달궈지도록 돌아간 선풍기가 무색하게 관자놀이에 흐르는 땀은 내 눈꺼풀을 도망치도록 명령하지만 빛은 어둠을 모두 거둬내고 진실된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재촉했다. 둥근 안경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나는 한 팔로 빛을 가리고 재빨리 두 면의 커튼을 전부 닫았다. 복층 높이의 층고 때문에 내리는 시간은 영원처럼 길게 느껴진다.
하는 수 없이 화장실에서 간밤의 사투의 흔적을 지우고 젖은 수건을 목에 두른 채 믹스 커피 한 잔과 함께 소파에 앉았다. 세상을 호령한 듯 매미 떼가 울고 있었다. 주말에는 에어컨이 돌아가지 않았다. 정확히는 금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아침까지는 저절로 죽은 시체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장승처럼 애꿎은 좋은 자리만 빼앗아 서 있었다. 그 위로 빛이 들어온다. 어떤 병신 같은 이의 발명 덕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투명과 반투명이 이어져 있는 커튼은 두 면이 맞물려 모든 면적의 빛을 막는다지만, 앉아있는 나에게 위에서 비스듬히 비치는 틈새의 빛은 마치 레이저로 동공을 찌르는 것만 같았다.
질끈 눈을 감으면 뭉게구름이 나를 구원해 주길 바랄 뿐이었다. 뜨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분명 눈을 감았지만 내게 오는 그 현실을 느끼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감각이 함께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지만 구름은 나를 저버리지 않았다. 눈을 뜨니 한동안 내 눈에서도 빛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초점을 잡을 곳이 필요했다. 멀리, 저 멀리 메마른 느티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벽과 벽 사이, 그늘진 곳에서 어두커니 앉아있는 메인 작품 속 느티나무가 보였다. 모든 빛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한 점으로 소실되어 영원히 그곳을 빠져나가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 안에서 영원히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곳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그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날의 일은 내 육신을 타들어 가는 태양 볕으로 내던져버렸다.
‘나 지금 거의 다 왔어, 학교 정문이야.’
테이블 위에서 매미처럼 진동하던 핸드폰은 율의 목소리였다.
‘아무거나 상관없으니까 그냥 시원한 거 먹자, 내가 알아본다?’
율과 1층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다. 작업실의 더위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율은 한 번도 내게 아쉬운 말을 한 일이 없었다. 어렵거나 불편한 일이 있더라도 그저 도토리를 발견한 다람쥐 같은 표정을 한번 짓곤 환하게 웃었다. 나는 때론 그 얼굴에 미소로 화답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물론 눈동자가 안 보이도록 환하게 웃는 얼굴은 나를 보고 있지 못할 것이기에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아마 그녀도 그랬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진작가라는 꿈을 위해 달려온 것도 벌써 3년이 되었다. 더 좋은 사진을 찍고 싶다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은 다 동원해 배우고 경험해 보았지만 정작 내게 주어진 가르침은 인간의 종류와 종류별 대처하는 방법이었다.
돈을 좇는 것은 누구보다 싫고 꿈을 위해 살고 싶었던 나에게 대학시절 사용하던 사진 동아리에 얹혀사는 것은 마치 어미를 떠날 수 없는 자식 같은 처지가 되어 버렸다. 해가 지날수록 후배들의 눈치는 늘어만 갔고, 이제는 선배 취급도 못 받는 신세가 되었기에 사람 없는 주말에만 조용히 들어와 작업할 수 있는 것은 자연의 이치였다.
금세 더워진 열기에 내 손은 자연스레 다시 선풍기로 향했다. 맞바람으로 불어오는 생명의 숨결에 마지막 남은 식은 커피를 모조리 들이켰다.
율과는 만난 지 이제 막 1년이 됐다. 아직은 이른 나이이고 만난 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지만 몇 달 전부터 어딘가 모르게 여자친구는 적극적으로 결혼을 논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별다른 생각이 없었기에 적절한 호응으로 받아쳤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뒤엉키는 땀 냄새에도 쿵 짝이 맞는 상대를 만났다는 느낌이 내 몸과 마음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었다. 창 틈 사이로 바람이 선선히 불었다. 비워진 머그잔에서 비슷한 냄새가 나는 거 같았다.
마지막으로 세수를 한번 더 한 후 머리를 뒤로 넘기고 소파에 검은 모자를 눌러썼다. 동아리 회장이 바뀌면서 이제는 나에게 동아리방 사용료를 걷어 가겠다는 청구서가 서로 마주 본 소파 사이 테이블 위에 놓여있었다. 한참을 내려다봤지만 어색하게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하나의 예술 작품인 듯 나와는 상관이 없는 사각형의 누런 종이였다. 갑작스레 틈 사이로 분 강한 바람은 커튼을 깊숙이 펄럭이게 했다. 어느새 테이블 위 청구서는 머그잔이 가리고 있어 잘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는 7월의 여름, 우리는 냉면 한 그릇으로 피서를 보내고 냉면집 바로 위층에 있는 저가 커피숍으로 향했다. 비록 저가였지만 나름 분위기는 율의 마음에 들은 거 같았다. 높은 천장고는 숨통을 넓혀 주었고, 머리 위에서 돌아가는 팬은 케이크 위에 시원한 눈송이를 얹어 주는 것만 같았다.
긴 생머리에서 시원한 여름 향수를 풍기는 율이는 내 앞에서 어김없이 결혼 이야기를 시작했다.
“거의 다 지금 완성된 거 같아. 오빠 저번에 정확히 얼마 있다고 했었지?”
“내가 한 700만 원 정도 있어.”
“음, 내가 알아봤는데 한 500은 더 있어야 할 거 같아.”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에 조금 당황했다.
“오빠?”
순간 딴생각에 율의 말을 못 들었다. 내 마음에는 아직 작업실 사진이 가득 걸려있었다.
“500? 그건 그러면 이번에 사진전 하면 작품들 팔릴 테니까 그걸로 해보자.”
“진짜? 그러면 되겠구나! 역시……”
율이는 나의 두 손을 가져가 자신의 볼에 얹고 선 진심으로 기뻐했다. 나도 모르게 실웃음이 나왔다. 율의 볼은 방금 먹은 케이크보다 부드럽고 우리 사이에 놓인 우유보다 하얬다. 결혼에 대해 머리의 의견은 잘 몰라도 시각과 촉각 정보를 받은 몸은 벌써 반응하고 있었다.
내 통장에는 현재 700만 원이 없었다. 사진전을 준비하고 있지만 사진전을 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아마 사진전을 열면 남은 돈마저 사라져 버릴 것이다. 아니 사진전만 열기에도 부족하다. 물론 사진전이 잘 되면 된다. 그렇다, 이 결혼과 사진전이 나에게 주어진 뜻이라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하늘에서 주어진 것이기에 나는 어쩔 수가 없었다.
가게를 나와 다시 홀로 작업실에 돌아가는 길, 낮도 밤도 아닌 주홍빛 황혼이 시간의 경계를 지나고 있었다. 포악하던 태양이 사라지고 나를 품어주는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토록 원망스럽던 태양은 아무리 강해 보인다 한들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다시 산너머로 내려간다. 달은 선했다. 나에게 그 무엇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먼발치에서 지켜볼 뿐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그런 달이 오랫동안 있어 주길 바라지만 그 역시 별들의 호위를 받으며 떠오르는 태양을 도망쳐 어디론가 숨어든다. 그리고 또다시 내 의지와 상관없이 태양은 긴 집권기를 끝내고 산너머로 내려갔다.
오피스텔은 작업실보다 작지만 오래된 벽걸이 에어컨이 주말에도 항상 돈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낡은 LP판의 알몸에 날카로운 바늘을 가져다 댔다. 처음에는 아픈 듯 신음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이내 나른한 선율을 불러왔다. 셔츠의 단추를 서너 개쯤 풀었다. 침대 위에 누워 본 천장에는 습기에 차 황달이 온 하늘이 찢어질 부풀어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오른손에 몇 주 전 율이 놓고 간 브레이저가 잡혔다. 보지 않아도 연분홍색 브레이저가 어둠 안에 꿈처럼 떠올랐다. 그 옷에 기꺼이 가슴을 맡길 율이 나를 바라봤다. 흐릿하지만 분명 그녀는 웃음기가 없었다. 한 손으로 속옷을 쥐고 가슴을 가렸다. 다른 한 손은 서서히, 아주 천천히 나를 향해 들어 올려진다. 그 순간 내 오른손 정맥이 바늘로 찔리는 듯했다.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청구서가 주먹 안에서 죽지 않고 살아 발버둥 쳤다.
이마에 흐르던 땀이 관자놀이 언덕을 넘어 빠르게 구레나룻으로 흐르는 순간 별안간 선율과 어울리지 않는 불협화음이 시끄럽게 울렸다. 눈이 번뜩이며 호흡이 터졌다. 침대에서 일어서 LP판 바로 옆 휴대폰까지 걸어가는 시간은 원망과 희망이 뒤엉켰다. 뒤엉킨 둘은 의문으로 승화했고, 나는 뒤집어진 휴대폰의 허리를 붙잡았다. 기울게 들어 올려 의문을 끝까지 품고 가기로 했다. 귀에 닿는 순간 나는 ‘여보세요’조차 하지 않고 기다렸다.
“이한이니? 이모야. 이한아 침착하고 잘 들어… 네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