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상속자(3)
발인 전날 오실 손님들은 거의 다 왔다 갔을 때 내 친구 현수가 찾아왔다. 낮에 나의 연락을 받고 그날 밤늦은 퇴근을 하고서 바로 달려와준 것이다. 사람이 거의 없는 장례식장에서 단 둘이 앉아 저녁을 먹었다. 우리 둘은 먼저 재킷을 벗고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맨 위 단추를 풀었다. 그리고서 나는 냉장고에서 차갑게 봉인되어 있던 알코올 2병을 가져다 식탁에 놓았다. 현수는 놀란 듯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일이 있으면 바로 좀 연락해야 하는 거 아니야?”
현수는 와이셔츠의 소매를 걷어 올리고서 나의 빈 잔에 첫 술을 채워주며 말했다.
“나도 이런 일이 처음이라 어떻게 말해야 할지, 언제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나도 현수의 잔을 가득 채웠다.
술이 가득 담긴 잔을 현수는 단번에 비워냈다. 현수는 한 동안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었다. 나는 무거운 분위기를 풀기 위해 현수의 헛웃음이 나올 때까지 한술 농담을 떴다.
“그래 괜찮아 보이니 그래도 다행이네… 근데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닐 수 있지만, 그 전시관 대관 계약하자고 해놓고 왜 계약 날짜를 계속 며칠씩 미뤘던 거야?”
현수는 내가 하기로 한 사진전을 맡아 도와준 사람이다. 1인 작가들을 위한 전시관을 운영하고 있는 회사에 다니는 현수는 나의 친구이자 이번 전시전에서 가장 중요한 계약 파트너이기도 했다. 둘 중 하나를 놓고 끝까지 고민하던 나는 계약 날짜를 며칠 미뤘고, 그 결과 여기에서 현수를 보는 날까지 나의 계약은 해결되지 못했었다.
“사실 그전부터 할머니가 좀 많이 아프셨어. 그래서 쉽게 뭔가 일을 손에 잡을 수가 없더라. 미안하다.”
나는 가득 찬 술잔을 비우고서 고개를 숙이고 참회하듯 말했다. 현수는 자신이 큰 실수라도 한 거처럼 엉덩이를 의자에서 떼고 내 등에 손을 올렸다. 현수는 주제를 틀었다.
“저번에 듣기로는 결혼하기로 했다며, 쉽지 않은 결정인데 그 일은 잘 돼 가고?”
결혼 이야기를 꺼낸 현수는 마른오징어를 계속해서 씹었다.
“나도 잘 모르겠다. 처음부터 너무 진지했던 걸지도 몰라.”
내 시선은 텅 빈 유리잔을 어루만지는 곳을 향해 있었다. 분명 상속 후에는 결혼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지만 나의 의식의 흐름은 오히려 다른 쪽으로 흘러갔다.
“그게 뭐야, 이랬다 저랬다. 여자친구랑 무슨 일 있어?”
현수의 작은 황당함은 안 봐도 느낄 수 있었다.
“이한아, 뭐 너무 진지하게 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그렇게 가볍게 하는 거 괜찮은 거야? 여자친구는 알고?”
나는 시선을 다시 현수의 얼굴로 옮겼다.
“이봐 현수, 사람이 이렇게 만날 수도 있고 저렇게 헤어질 수도 있는 거지, 물론 결혼을 안 한다는 건 아니고. 그런 것보단 또 막상 하려니까 여러 생각이 들어서 그런 거지. 그리고 너도 알겠지만 난 너무 무거운 건 딱 질색이야, 여자도 말이지. 무거운 거보다는 가벼운 게 좋잖아?”
현수는 잠시 멍하니 나를 쳐다보다 이내 헛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밤이 깊어 가도록 현수와 나는 과거와 현재를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 느껴졌지만 우리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은 오늘이 지나면 모두 우리를 잊을 것이 분명했다.
장례를 마치고 할머니는 고향인 ‘나진’에 묻히셨다. 생전에 직접 구해 놓은 장지였다. 내가 태어날 때쯤 돌아가셨다는 할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딱히 사이가 그렇게 안 좋았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할머니의 선택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고 했다. 나도 발인을 마치고 오랜만에 서울을 벗어나서 처음 가보는 할머니의 고향 땅으로 향했다. 남쪽으로 장장 4시간 가까이 가니 서서히 그 모습이 나타났다. 우거진 풀과 나무들을 지나 작은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장지는 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이었다. 짙은 여름의 풀내음이 코를 찌르고 있었다. 저 멀리는 웅장한 지리산 산맥이 훤히 다 보였다.
안장을 마친 후 다 함께 할머니를 바라보고서 묵념을 할 때에 알 수 없는 떨림이 나를 들뜨게 했다. 해질 무렵 높게 솟은 작은 봉우리 속에 있는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그 누구보다 아련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건만 같았다. 나를 봐라 보기엔 너무 강한 시선이 느껴졌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어느 때보다 따뜻했다. 뒤를 돌았다. 할머니의 시선은 푸르다 못해 열대우림 같아 보이는 지리산 자락을 향하고 있었다. 저 멀리서 보이지 않는 까마귀가 울고 있었다. 할머니의 부름에 이모는 이마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처절한 곡소리로 대답하고 있는 듯했다. 산소 위에 흰나비 한 마리가 나라와 앉았다. 호젓한 몸짓은 우아하다 못해 경이로웠다. 날갯짓이 잦아들고 나비는 한참 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어른들은 이미 차로 가는 길에 모여 담배 연기를 뿜고 있었다. 쾌쾌했다. 유달리 내 코를 찌르는 냄새는 다양한 종들이 함께 뒤섞여 있었다. 나는 흰 장갑만을 벗어 콧등 앞에서 펄럭였다. 서서히 날갯짓에 힘이 실리는 것이었다.
한 달 후, 여전히 강력한 햇볕이 나의 아침을 강제로 깨우고 있었다. 눈도 아직 다 뜨지 못했지만 침대 옆 테이블 위에 있을 계약 봉투가 생각났다. 다시 한번 보고 싶어 졌다. 이것저것 만져지다가 계약 봉투를 찾았을 때 봉투가 땅에 떨어져 버렸다.
‘하’
일어서서 봉투를 집어 올렸다. 다시 침대에 누워 봉투를 천장을 향해 올리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어제 현수를 만나 계약을 마무리했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하얀 눈은 없을지 몰라도 율을 위한 하얀 꽃다발을 준비해 프러포즈하는 완벽한 하루로 만들고 싶었다.
계약금이 빠져나갔다.
현수는 나머지 금액이 가을 중으로 나갈 것이라고 했었다.
오전 9시 알람이 울렸다. 율과 시립수목원을 가기로 했다. 웬만하면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나지 않는데 잠자코 잠만 자고 있기엔 나의 생각이 꿈속에서도 미래로 향해 있었다. 사실 데이트의 메인은 수목원이 아니었다. 그동안은 모든 것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미래였기에 작품을 직접 보여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드디어 처음으로 전시회의 모든 작품을 보여주기로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율의 반응은 그 어느 때보다 격렬했다. 작품 이야기는 미완에서 시작해 완결로 다가가고 있다. 마지막 퍼즐은 직접 내 손으로 채워 넣어야 한다. 손안에 작은 퍼즐을 굳세게 잡아 나를 떠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떠나지 않길 바랐다.
‘띠리리리링’
내 바로 등뒤에서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위치를 찾아 뒤적이다 베개 밑에서 휴대폰을 찾았다.
‘시숙 이모’
나는 애매한 자세로 침대 위에 놓인 휴대폰에 낯선 이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휴대폰을 들고 앉아 이모의 부름에 응답했다.
“이한아……, 혹시 증조할머니가 태준이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신 적 있니?”
“태준……이요? 아니요, 그런 이름은 들은 적이 없는데요.”
“이한아 잘 들어, 너희 증조할머니에게 아들이 한 명 더 있었어.”
“네?”
“우리가 상속절차 때문에 족보, 그러니까 제적등본을 떼어봤는데 거기서 처음 보는 사람이 나왔어. 정말 아무로 모르는 사람이야, 자식이 한 명 더 있던 거야, 친자식인지 사생아인지… 그래서…”
분명 할머니는 아들 하나 딸 둘이 있었다. 나도 그 외의 이야기는 듣지 못했었다. 떨리는 이모의 말투에 심장이 한사코 진정이 되질 않았다. 날씨 탓인지 실내에 있는 내 얼굴이 벌게 지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계속된 이모의 말이 내 마음속 사진과 여자친구, 동물원인지 수목원인지 하는 계획을 모조리 없애 버렸다.
“그래서 말인데 이한아, 그 상속은… 지금 당장은 불가능해.”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법원에선 그 사람도 상속자래, 그러니깐 우리끼리 상속을 할 수가 없는 거야, 그 사람 없이는. 그런데 우리는 그 사람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지…”
그 사람의 생사는 당장 나의 생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만약 죽었다면 죽었다고 말하고, 살았다면 나는 그 사람을 만나야만 했다. 벌게진 자화상을 지나, 지상 수중 작전을 방불케 하는 습도를 지닌 어느 8월 날 방안에 차가운 서늘함이 퍼지는 데는 삼킨 침이 목젖을 넘어가는 시간보다 짧았다.
“이한아, 우리가 그 사람을 찾아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