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업 업의 개념

항공업, 결국 시간을 파는 가게

by 닥터로

무턱대고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업(業)의 정의가 먼저였다. 쉽게 말해 '우리는 효율적으로 어떻게 돈을 버는가?', '스카이젯 M8을 운영하는 핵심 원리는 무엇인가?'


이 질문을 붙들고 씨름하다가 내린 결론은 한 문장이었다.

" 항공업이란 거리의 시간적 차익거래(Temporal Arbitrage of Distance)이다"


거리를 시간으로, 그 시간을 다시 고객의 가치로 바꾸는 일


업을 분석시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은 "효율적으로 돈을 어떻게 버느냐?"

업의 개념을 잡는 가장 기본 질문중 하나이다.


항공업은 “정해진 시간에 좌석이라는 공간을 파는 업”이다. 좌석은 빵처럼 그날 안 팔리면 굳는다. 스케줄은 약속이고, 약속은 재고다. 재고가 흘러가면 매출 기회도 흘러간다. 우리의 게임은 결국 시간–공간–가격의 정렬이다. 어느 시간대에, 어느 목적지로, 몇 석을, 얼마에 내놓을 것인가. 그리고 그 결정이 고객에게 목적지에서의 시간을 얼마나 돌려주는가.


필리핀에서 이 질문은 더 단단해졌다. 7천 개가 넘는 섬, 그 사이를 잇는 유일한 다리가 비행기인 곳. M8이 가진 독특한 목적지는 매력적이지만, 접근성이 떨어지면 ‘그림의 떡’이다. 가는 데만 10시간이 걸리면 그 멋진 바다도 바다 같지 않다. 항공이 시간을 베어내 주지 못하면, 휴양의 가치는 절반으로 줄어든다. 그래서 나는 M8의 업의 개념을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고객의 이동 시간을 줄여, 목적지에서의 체류 시간을 늘려주는 산업이다.
이 문장을 붙잡고 스케줄을 보고, 기단을 보고, 수요를 봤다. 좌석은 숫자지만, 결국 사람의 휴식 시간을 파는 일이라는 뜻이니까.


업의 본질을 붙잡고 나니 기준이 선명해졌다. 좌석=재고. 출발 30/7/3/당일 같은 컷을 두고 가격·좌석배분을 조정하지 않으면, 출발과 함께 그 좌석의 가치는 0이 된다. 정시성=신뢰. 15분 지연이 환승 웨이브를 끊으면, 한 편의 연료 절감이 여러 편의 수익을 갉아먹는다. 운영은 약속을 시간표대로 찍어내는 공장이어야 한다. 네트워크=연결성의 경제. ‘마닐라→OOO 금요일 밤, 일요일 저녁 복귀’처럼 어디서–어디로–언제가 맞아야 수요가 붙고, 같은 요일·같은 시간 반복이 습관 수요를 만든다. 페어(pair)는 필수다. 예를 들어 ‘MNL→MPH 08:00’을 띄웠다면 ‘MPH→MNL 10:00’이 맞물려야 기체·승무원 로테이션이 살아서 하루 3회전이 가능하다. 페어가 틀어지면 지상대기 시간만 늘고, 좌석은 남는다.


여기까지가 원리다. 그럼 지금까지 현장에서는 무엇이 성패를 갈랐는가. 내가 업을 공부하며 정리한 답은 두 가지였다. (1) 어떤 혁신을 택했는가, (2) 밀도를 어떻게 만들었는가.


짧게 사례를 들면, 팬암(PANAM)의 후안 트리페는 더 크고 더 빠른 기종, 제트 도입 같은 제품·기술 혁신에 집중했다. 하지만 외부 환경 변화 속에서 수요·리스크를 보수적으로 관리하지 못했고, 어느 순간 거대한 기단이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는 시간이 왔다. 반면 아메리칸(American Airline)의 밥 크랜달은 마일리지 프로그램, 예약 시스템의 개방 같은 작은 제도·유통의 변화로 매출 구조와 점유율을 바꿨고, 규제 완화 이후에도 현금흐름과 생존성을 지켰다.


여기에 항공 특유의 밀도의 경제(Economies of Density)가 더해진다. 이것은 ‘기단을 키워 단가를 낮추는 규모의 경제’가 아니라, 특정 노선·시간대·허브에 수요를 모을수록 회당 고정비가 얇아지고 빈좌석 리스크가 줄며, 환승·부가수익·화물이 따라붙는 구조다. 웨이브(bank) 스케줄로 도착과 출발을 묶어 환승을 ‘제조’하고, 고빈도 운항으로 원하는 시간대의 선택지를 늘리면 빈도–수요의 선순환이 생긴다. 현장에서는 정비·지상조업·승무원 로테이션이 허브에 모여 생산성이 오른다. RM은 촘촘한 운항을 전제로 가격 구간을 세분화해 마지막 순간까지 수요를 끌어올린다. 결과는 높은 탑승률(LF), 낮은 단위비용(CASM), 더 나은 단가(Yield 믹스)다. 다만 허브 의존도가 커지면 기상·ATC·슬롯 같은 외생 변수에 취약해진다. 그래서 밀도는 “많이 모으는 것”이 아니라 "모으되 흐르게 하는 설계”가 핵심이다. 웨이브 간격과 타이밍, 예비기·예비승무원, 지상조업의 체력이 숨통이 된다.


정리하면, 항공의 성패는 기술(기단·네트워크) × 전략(유통·RM·로열티) × 밀도(빈도·웨이브·페어)의 곱셈이다. 어느 한 항이 0이면 전체는 0이 된다.


결국 업의 개념은 다시 이렇게 정리될 수 있다


항공은 시간을 상품화하는 산업이다. 우리는 좌석을 파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에서 보내게 될 소중한 시간을 되돌려 판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 더 깨달았다. 홈쇼핑도, 항공도 ‘시간을 파는 업’이라는 것.

홈쇼핑에서 내가 다루던 건 상품보다 방송 시간(타임슬롯)이었다. 60분이라는 선반 위에 SKU를 올리고, 고객은 매장에 들를 시간을 아끼는 대신 지금을 샀다. 항공으로 보면 언어만 달랐을 뿐 구조는 같았다. 좌석이 방송 시간이고, 스케줄이 선반, 정시성이 신뢰였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회장님은 일찍이 이 공통분모를 보고 나더러 항공사 경영에 개입하라고 했고, 나는 한참 뒤에야 그 뜻을 알아챘다. 이 기준으로 Charter 비즈니스를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작은 메모—같은 구조, 다른 언어

방송 타임슬롯 ⇄ 항공 좌석

편성표 ⇄ 운항 스케줄

매진/재고소진 ⇄ 탑승률 관리(RM)

배송 리드타임 ⇄ 정시성/연결성

딜/번들 ⇄ 부가수익(수하물·좌석지정·패키지)


— 다음 편(#6): Charter Business 사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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