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2026) 리뷰
요크셔의 외딴 저택, 언쇼가 문의 히스클리프라는 고아 소년이 들어온다. 캐서린은 자신의 또래 친구가 생겨 신나 히스클리프와 집과 바깥을 뛰어 돌아다닌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 언쇼가 문은 몰락직전에 가난상태로 돌입하게 되고 캐서린은 가문을 일으킬 방법을 찾던 중 마침 부자인 에드거가 이웃으로 들어온다. 히스클리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에드거와 혼인을 한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에게 상처를 주게 되고 히스클리프는 폭풍의 언덕을 떠나게 되고 1년 후 부자가 된 채 캐서린 앞에 다시 나타나 사랑과 증오 사이를 가로질러간다.
에밀리 브론테의 고전 명작 소설인 폭풍의 언덕은 소설 출판 이후 현대에까지 영화, 드라마 등으로 실사화되며 현재까지도 영향력을 과시한다. 1939년, 1992년 2011년에 실사화 영화 이후 꽤나 빠르게 실사화되며 폭풍의 언덕은 책을 읽었거나 실사영화를 보았거나하면 이야기는 거의 각색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훌륭한 작품이다. 그렇기에 이번에 나온 폭풍의 언덕 또한 이야기를 바꾸지 않고 영상미와 에로스의 분위기를 집중하며 사랑과 집착, 증오에 대한 순정을 그린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인상적인 장점을 놓고 보더라도 아쉬운 점은 존재한다.
캐서린과 히스클리프가 서로를 증오하면서도 그 증오에서 비롯된 사랑을 그리워하며 서로 관계를 하기 전에 코를 스치거나 혹은 숨결 소리에 강조, 특히나 몸에 서린 땀과 같은 액체, 꾸덕하고 찐득한 액체에 강조로 사랑에 대한 은유를 드러내는 데 인상적이기도 했으나 이런 연출과 영상미가 즐비해지다 보니 무뎌지기 시작하게 되고 결국에는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 서로의 교감을 끝낸 뒤 관계를 시작할 때 이전에 쌓아놓은 에로스에 분위기가 식어버리는 것 같이 미디엄숏을 사용하며 단조롭게 찍으니 사랑에 흥분을 식혀버리는 느낌이 들었고 오히려 클로즈업과 핸드헬드 기법으로 찍었다면 그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폭풍의 언덕은 순수한 사랑으로 시작한 둘의 사랑이 오해와 배신으로 얼룩지며 결국 북수와 집착, 증오로 뒤바뀌고 결국 마지막에 다시 순수한 사랑으로 돌아가는 비극적 사랑을 그린다. 원작과 이전에 나온 폭풍의 언덕은 에로틱한 분위기보다 중반부부터 시작되는 집착과 증오로 번진 어두운 분위기를 초점에 맞추어 이야기를 진행하는 반면 이번에 폭풍의 언덕은 사랑에 에로틱함과 도발적인 모습을 보이며 차이점을 보여주지만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 선정적으로만 그려져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아예 15세 관람가가 아닌 19세로 해서 더욱 관능적이고 표현을 더욱 발산했다면 더 나은 영화가 됐을 것 같지만 흥행을 위해 15세로 맞춘 것 같아 아쉽다.
폭풍의 언덕은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 만나 친구가 되는 유년기가 1부, 성인이 된 캐서린은 에드거와 혼인을 하고 폭풍의 언덕을 떠나는 히스클리프가 2부, 몇 년 후 부자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히스클리프와 그를 다시 사랑하지만 결국 아기를 낳고 사망하는 캐서린이 3부, 그리고 캐서린의 딸이 히스클리프와 만나며 히스클리프는 복수를 하며 하지만 결국 캐서린을 잊지 못하고 죽게 되는 것이 4부로 나뉘는데 이번에 나온 폭풍의 언덕은 3부까지에 이야기를 보여준다. 히스클리프의 마지막 대사에서 처럼 캐서린이 귀신이 되어 히스클리프를 괴롭히고 서로를 사랑하자는 말과 캐서린이 임신을 하지만 결국 아기를 낳지도 못하고 사망하게 되는 것은 4부에 이야기를 진행하지 않고 오직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에 에로스적 사랑을 그리기 위한 것이며 4부에 복수와 증오에 대한 이야기를 과감하게 생략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서로의 몸이 닿고 나서 시작되는 것이 에로스가 아닌 숨결이 닿게 되었을 때가 에로스인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