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1983) 리뷰
스페인북부에 사는 소녀 에스트레야는 자상한 아버지와 어머니 밑에서 사랑을 받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어느 날 아버지의 쪽지에서 이레느 리오스라는 여자의 이름을 발견하고 아버지에게 여자가 생겼다는 의심을 하게 된다. 그날 이후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고향인 남쪽에 대해 들어보게 되고 그곳에 이레느 리오스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과 신비주의에 가까운 아버지의 과거가 궁금해한 에스트레야는 남쪽으로 향하고 싶은 기이한 노스탤지어를 느낀다.
빅토르 에리세의 두 번째 장편 영화인 남쪽은 장편 데뷔작인 벌집의 정령만큼이나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스페인을 대표하는 감독 중 하나로 불리는 작품이다. 단순히 예술적인 영화가 아닌 스페인 내부에 정치적인 상황과 사회적 이야기들을 영화로 풀어낸 명작이다.
영화에서 제일 먼저 말해야 하는 것은 아버지인 아우구스틴이다. 아우구스틴은 본인 말로는 아버지와 이념적 차이로 인해 의절하다시피 남쪽을 벗어나 현재 스페인 북부지역에 가족들과 거주하고 있다. 그곳에서 의사로 일함과 동시에 수맥을 찾는 신비로운 인물로 묘사된다. 가장 궁금한 것은 아우구스틴이 왜 남쪽으로 온 것인지와 아버지와 왜 싸우게 된 것인지이다. 먼저 1936년부터 1977년까지 스페인은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이끈 내전 이후에 프랑코 체제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당시에 프랑코체제 이후 독재에 성향을 띤 중앙 집권체제와 모든 권한을 프랑코 본인이 집행하는 일원적 정치를 시행했지만 박살 난 경제를 다시 살리고 언어를 통일하는 등으로 당시에 프랑코 정권이 파시즘이 아니라는 사람과 파시즘이라는 사람이 나뉘어 아직까지도 서로 다른 의견을 내세우고 있다. 영화로 돌아오면 아우구스틴은 딸을 위해 딸에 시선에 맞도록 쉽게 설명을 해준다. 단순히 싸웠다고 말하지만 그 주제는 프랑코 체제의 대한 아버지와 아들 이념적 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우구스틴은 프랑코체제의 반대하는 인물이다. 왜냐하면 아내인 훌리아도 프랑코 체제 이후로 교사로 복직을 못한 사실과 아우구스틴이 원래 살던 남쪽이 아닌 북쪽으로 이주한 것은 프랑코 체제의 도망치려 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딸인 에스트렐라는 아버지의 과거이야기를 들을수록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남쪽에 대해 노스탤지어를 느낀다. 아버지가 일부러 말을 안 하는 것도 있지만 남쪽에서 온 아버지의 어머니가 왔을 때 아버지의 과거를 어렴풋이 들으면서 남쪽을 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이런 미지의 노스탤지어는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도 에스트렐라의 시점을 따라가며 남쪽에 모습을 상상하게 되며 궁금증을 자아낸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은 그렇지 않다.
에스트렐라는 추운 북부의 계절로 인해 감기에 걸리고 인연이 있었던 밀라그로스의 도움으로 드디어 남쪽으로 갈 수 있게 된다. 에스트렐라가 짐을 챙기고 카메라를 응시하며 영화는 끝난다. 당혹스럽고 황당하다면 황당하게 끝나는 엔딩은 사실 감독인 빅토르 에리세가 원작소설인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영화와 다르게 남쪽으로 에 이야기가 있었고 감독도 남쪽에 이야기를 각본에 써놓은 채 영화를 만들었지만 제작사에 촬영된 장면이 북쪽에 이야기만을 보고 촬영을 접게 하고 그대로 이야기가 다 못 끝낸 채 개봉을 하게 된 것이다. 빅토르 에리세도 이영화가 미완성작이라고 할 만큼 아쉬운 작품임을 밝혔다. 그럼에도 에스트렐라가 남쪽으로 향하는 순간 영화가 끝나는 엔딩은 마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서 느끼는 노스탤지어를 관객도 느낌으로써 영화 속 주인공들은 닿을 수 있지만 관객들은 닿을 수 없는 기이한 노스탤지어라는 말의 걸맞은 엔딩이라고 생각해 미완성 작품임에도 훌륭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1969년 데뷔한 이래로 장편 영화가 네 편에 불과한 활동량이 적은 감독이지만 나중에 2부로 볼 수 있는 남쪽에 이야기를 영상화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원작소설인 남쪽도 읽고 난 후 감상에 대해 써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