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어데블: 본 어게인" 리뷰
※주관적인 생각이 담긴 글입니다(스포포함)※
어릴 적 사고로 시력을 잃은 맷 머독(찰리 콕스)은 복서 아버지 잭 머독의 도움으로 공부를 하여 변호사가 되지만 아버지가 불법 복싱도박에 연루되어 범죄자들에게 암살을 당한다. 맷은 성공적으로 변호사가 되지만 대형 로펌의 회의감을 느껴 절친 포기 넬슨과 함께 개인 로펌을 차려 약자를 도운다. 그러나 법의 무력함을 깨달은 맷은 어릴 적 스틱이라는 노인에게 배운 무술과 시력을 극복하는 초인적인 오감으로 낮에는 변호사, 밤에는 헬스키친의 악마 데어데블이 되며 크나큰 숙적 킹핀과 여러 악의 조직을 상대하는 운명을 받아들인다.
데어데블은 원작 코믹스에서나 실사화된 드라마에서도 가장 깊고 진한 느낌을 품고 있다. 시각적인 즐거움보다도 영웅으로써의 깊은 고민들, 예를 들어 초인이 아닌 인간인 영웅의 무력감과 절망감속에서 그것을 극복하는 힘을 다루며 데어데블은 특히 두려움을 강조한다.
필자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주인공이 극한까지 몰아가길 바라는 마조히즘적인 생각을 하며 보게 된다. 그 생각을 하는 이유는 주인공이 그것을 극복할 힘이 있으며 그것을 극복했을 때 생기는 쾌감을 바라기 때문이며 또한 주인공이 늘 이기는 지루한 이야기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에 그럴 수 있다. 데어데블이라는 캐릭터는 극한을 바라는 시청자들에 니즈를 정확히 집어준다. 특히 "데어데블 시즌 3"에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시즌 1에서는 그냥 복면남에서 데어데블로 각성을 하는 이야기를 담고 시즌 2에서는 작품성은 약하고 액션이 강해진 오락성 드라마 정도로 말할 수 있지만 시즌 3에서는 (디펜더스 시청요함) 시작 이전보다 더 나약한 채로 다시 태어나 자신의 수적과 싸우는 히어로의 극한을 보여주는 시즌이라고 생각한다. 데어데블은 극복의 아이콘이다. 자신의 연인이 사망했을 때와 자신이 죽어갈 때 숙적의 야망이 점차 다가와 목표를 이루었을 때 모두 데어데블은 그 두려움을 극복하여 다시 한번 데어데블이 된다.
이렇게 말하면 데어데블이 정신력이 무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그의 숙적인 불스아이와 킹핀등 맷을 괴롭히기 위해 계속해서 강도 높은 고통을 선사하며 데어데블을 궁지로 몰아붙인다. 그때마다 맷은 절망하고 내면의 악마와 절망의 죽어가지만 데어데블은 항상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친구와 연인, 도시를 생각하며 다시 한번 극복한다. 인간형 히어로인 데어데블, 퍼니셔, 문나이트, 배트맨등이 코믹스에서나 실사화에서도 인기가 높은 이유에는 현실성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슈퍼맨이나 토르 등 같은 초인은 싸우면서 보이는 극강의 재미를 선사하지만 그 외에 인간적인 고민은 찾기가 힘들어 액션만을 보기 위해 찾아가기에 아쉬운 면이 있다. 그러나 인간형 히어로는 근접전이나 다채로운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격투에서 현실성을 부가시키며 보는 재미를 충족시켜 주고 인간형 히어로들의 우리와 같이 살고 있는 듯한 비슷한 현실 고민등이 어우러지며 관객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고독을 공감시키며 많은 이들이 인간형 히어로를 선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린 모두 인간이며 초인들도 인간에서 시작한다.
이번에 방영한 "데어데블: 본어게인"뿐만 아니라 "데어데블시즌1~3"까지 스트릿 히어로의 다채로운 매력을 원한다면 강추하는 작품이다. "데어데블시즌1~3"과 "데어데블: 본어게인"은 디즈니+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