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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히려 더 좋다 Jul 25. 2023

독일 차량: 수동변속기에 대한 회상

독일에 수동변속기 차량이 참 많네...

독일에 도착한 뒤 아주 흥미로운 것 중 하나가 수동변속기 차량이 아주 많다는 것이었다.


자동차 나라답게 다양한 모델의 차량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그 숫자에 비례한 듯 수동변속기 차량도 도처에 널려 있었다. 수동변속기 차량을  보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우리나라와는 상황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수동 변속기 차량이 엄청 많네..."

아내도 신기한 듯 낮은 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


우리나라에서 거의 멸종(?)되다시피 한 수동변속기가 경제부국 독일에서 이토록 넘쳐 나는 상황이 신기했다. 수동변속기 차량은 낮은 선택사항에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싸구려) 차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기에 더욱 이해하기 곤란했다. 잘 사는 나라에 저렴한 차량이 이렇게나 많이 돌아다닌다고....


멸종된 지 꽤 오래된 고생물이 다시 살아서 돌아다니는 것을 목격한 듯한 느낌 비슷한 것이었다.

어쩌다 눈에 띄는 한두 마리가 아니라... 떼로 몰려다니면서 여기저기 쉽게 목격되는 그런 일상적인 상황이었다. 이 흥미로운 상황은 아련했던 수동변속기 관련 옛 추억과 그 이유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수동변속기 차량 운전을 배울 때 가장 힘들었던 기술이 있었다. 오르막 경사로에서 일시 정지했다 출발하는 것이었다. 언덕의 경사로가 급할수록 차량의 시동을 쉽게 꺼뜨리고... 차가 뒤로 밀리는 현상을 피할 수가 없었다. 뒤로 밀린다는 것은 뒤차와 충돌을 의미하므로 실제 도로 운행에서 등에 땀이 흐르게 할 정도로 긴장감을 유발하고는 했다.


운전면허를 막 취득한 초보자에게 오르막 언덕길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이야기 속 호랑이와 같은 공포 대상이었다. 이 기술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기기 전까지 가급적 호랑이를 피해 먼 평지 길로 우회하고는 했다. 오르막 경사로 정지와 출발을 능숙하게 해야만 비로소 운전을 잘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더불어, 초보 운전자 딱지를 떼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할 마지막 관문이기도 했다.


처음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은 때는 삼십 년도 훌쩍 넘은 87년도 여름이었다.

여름 방학을 맞아 그냥 운전면허증이나 따 놓자는 생각에 학원 등록을 했다.


등록 첫날 강사는 일단이나 이단 기어 변속 연습과 운동장을 몇 바퀴 돌면서 운전대와 친해지는 시간을 가지라고 했다. 푹푹 찌는 땡볕의 운동장에서... 잔뜩 긴장된 모습으로... 강사가 다시 불러 세울 때까지 1.5톤 트럭과 가다 서다 신경전을 펼치며 나름의 전우애를 나누기 시작했다.


차량과 전우애를 나누며 친해지기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날 무렵... 이어서 T자와 S자 주행연습을 시작했다.


T자, S자 주행과 경사로 출발 등 시험을 위한 강사의 간단하고 완벽한 공식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그냥 시키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시험을 통과하는데 아무 무리가 없어 보였다. 면허 취득 후 실전이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시험 통과 자체를 위한 공식은 너무도 쉽고 간단했다.


"클러치와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으시고..."


"기어를 일단에 넣으시고..."


"하나.. 둘.. 셋... 에서  클러치와 브레이크의 두발을 동시에 떼. 면. 서. 액셀을 밟으세요."


"그러면 차량 시동이 꺼지지 않을 거예요."


"쉽지요.... 별거 아녜요.."

언덕길 경사로에서 섰다가 출발할 때  시동을 꺼뜨리지 않고 출발하는 요령이다.


강사의 기대와는 달리...  시동을 꺼먹기 일쑤였다.


"자... 다시 시작해 볼게요."


"하나.. 둘... 셋... 이동...."


지시에 따라 잽싸게 발의 위치를 바꾸며 액셀을 밟아댔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어렵사리 박자감을 익힐 수 있었다.


"하나... 두울... 셋..."

클러치와 브레이크를 밟고 있던 발을 떼면서 오른발은 잽싸게 액셀을 힘차게(?) 밟았다.


성공... 또 성공...


"별거 아니네.... 하나.. 두울.. 셋.. 잽싸게... 액셀..."

시동을 꺼먹지 않고 출발을 부드럽게 할 수 있는 노하우와 박자감에 서서히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자신감도 따라서 점차로 높아가고 트럭과 전우애도 더욱 돈독해지기 시작했다.


면허 취득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이대로만 할 수 있다면 면허증은 따 놓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강사의 탁월한 교육(?)과 공식 덕분에 비교적 손쉽게 1종 보통 면허를 취득할 수 있었다.


불행하게도 시험을 위한 공식과 노하우는 실전에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고 실전을 위한 기술을 다시 배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도로주행 테스트가 없었다. 실전 주행은 각자가 알아서 기술을 터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실전 주행은 당연(?)하게도 전우애를 다졌던 1.5톤 디젤 트럭이 아니었고 일반 승용차였다.

1종 보통 면허를 취득한 가장 큰 이유가 디젤 트럭은 오르막길 출발 시 시동이 잘 꺼지지 않은 유리한 점 때문이었다. 2종 면허는 승용차로 시험을 보는데 오르막길에서 시동이 자주 꺼지고 뒤로 밀리는 현상 때문에 면허 자체를 따기가 더 어려웠다.


시험은 디젤 트럭으로 비교적 쉽게 취득했으나... 실전에서는 오르막길 출발 기술 난이도가 훨씬 높은 승용차를 몰아야 하는 이상한 형국이 되어 버렸다. 초보자에게 차량이 바뀌는 것은 모든 것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했다.


승용차에 맞게 다시 기술과 공식을 전수받아야만 했다. 


고약한 기술... 언덕길 경사로 출발...


승용차로 오르막 경사로에서 멈추었다가 다시 출발하는 것은 면허를 막 취득한 사람에게 있어  난코스임이 분명했다. 강사에게서 배운 하나. 둘. 셋. 공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공식이 잘못되었다기보다는 초보자로서 미숙한 조작 탓이 더 컸을 것이다.

승용차는 디젤 트럭에 비해서 박자감에 아주 민감했다. 적절한 타이밍을 찾기가 더 어렵다는 것을 의미했다.


강사의 공식을 변형한... 실전의 기술로 반클러치 조작을 배워야만 했다.

경사로 오르막에서 시동을 꺼먹지 않고 액셀과 클러치로만 정지하고 출발하는 고차원(?) 기술이었다.

브레이크를 떼면서 차가 밀리기 전에 반클러치기술로 넘어가는 감을 익혀야만 했다.

엔진 소리를 들어가면서 차량이 정지하는 클러치와 액셀의 상대적 위치에 대한 적절한 감을 익혀야만 했다.

말로야 쉽지 초보자에게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다. 엄청난 난코스였다.


연이은 시동 꺼짐과 박자감 부족으로 인한 엔진의 굉음이 이어졌다.


"차를... 아. 예. 부셔라... 부셔..."


"이러다가 기어 다 망가지겠다..."


"그 간. 단. 한. 것도 못하냐..."

가르쳐 주는 형님의 참다못한 짜증 섞인... 불평이 쏟아져 나온다.


"..........."

"누구는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닌데... 너무 면박 주지 마..."

가뜩이나 움츠린 마음에... 속으로는 열불이 나지만... 자그마한 목소리로 항변이라도 해본다.


정말... 이러다가 차가 다 부서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가슴이 조마조마하기도 했었다.

그 간단한(?) 것도 못하는 자괴감이 얼마나 큰데 가슴에 못을 박나... 확 때려치울까 보다...

체면과 자존심은 구겨질 대로 구겨져 바닥에 처박히고...


운전은 절대 친한 사이끼리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이 불문율은 자동차 역사의 시작과 함께 했다고 굳게 믿는다. 부부끼리는 가급적 운전을 배우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아야 한다... 운전 때문에 헤어질 수도 있다.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한 번 시도해 보시라.. 결과는 책임지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핀잔을 먹으며 터득한 운전 실력은 나날이 향상되기 시작했다.


실력은 향상되었다지만... 어디까지나 초보자는 초보자티가 났다. 언덕길에서 가끔씩 시동을 꺼먹고 차가 뒤로 밀리는 상황을 발생시키고는 했다. 그때마다 당황스러움과 쪽팔림(다른 마땅한 표현이 없어 사용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등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였다.

운전 중 오르막 언덕길은 항상 노이로제 증상을 유발했다.


"경사로 중간에 서면 안 되는 데......"


경사로 중간에 서지 않기 위해 앞차와의 간격과 속도로 최적의 시뮬레이션(simulation)을 하느라... 머리는 항상 바쁘게 돌아가고는 했다. 가끔씩, 갑자기 끼어들어 오는 차 때문에 계산의 결과가 와장창 무너지고... 오르막길 경사로 중간에 떡하니 불안한 정차를 할 때가 있다.

앞차를 향한 시선에는... 실망감과 함께 약간(아주 약간)의 살기(?) 섞인 불쾌감이 내포되어 있고는 했다.


"이런..... 친절하신 양반 어른 같으니라고" (반대로 해석해 주시기 바란다)


뒤로 밀리지 않고... 부드럽게 출발해야 한다는... 긴장감... 또 다른 계산으로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수동기어 차량을 운전할 일이 거의 없지만, 수동기어 차량으로 오르막 언덕길을 만나면  여전히 머리가 복잡해진다.




주변의 독일인들에게 수동변속기 차량을 운전하는 이유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이들은 대부분이 이미 수동 변속기 운전에 능숙한 사람들이었다.


자동차가 여러 대 있는 친구는 재미를 위한 fun car로 수동변속기를 선호한다고 했다. Fun car의 경우 연식이 오래된 모델을 좋아하다 보니 수동 모델 밖에 없었다고 했다. 운전하는 재미 자체에 있어서 자동변속기는 고려 대상이 아예 아니라고 했다.  비용 문제가 아니라 완전히 운전 재미가 제일 큰 이유였다. 자동변속기 모델은 장거리 안전 운행 필요시 사용한다고 했다.


우리에게 유명한 아우토반을 달릴 때 재미를 위할 경우는 수동변속기 차량을 주로 이용한다고 했다.


자동차가 한대 있는 친구들은 수동변속기를 선택한 이유로 처음 구입비가 싸고 유지비가 적은 것을 들었다. 더불어, 운전하는 재미도 따라오니 구태여 비싼 자동 변속기를 선택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비용과 재미를 제외한 다른 이유가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를 물었다.

독일인들은 상황을 주도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높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추측을 제시했다. 자동변속기와 수동변속기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선택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규 자동차 구입 시 모든 옵션을 하나씩 차례차례 소비자가 선택해서 최종 결정을 하고 그에 맞는 비용이 결정된다.

독일인들  대부분이 이미 수동변속기에 익숙한 상태라고 했다. 그만큼 수동 변속기 차량을 운영하는데 거부감이 덜하다고 했다.


요약해 보면 수동변속기를 선택하는 이유로 비용이라는 실용성에 운전이라는 재미가 더해진 것을 들 수 있겠다. 구입비와 유지비가 싸고... 운전하는 재미까지 더해진다면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물론, 개인의 취향에 따라 안전성과 편리성을 추구한다면 당연히 자동 기어 차량이 우세할 것이다.

독일의 현재 추세도 편리성을 추구하는 자동변속기 비율이 점점 늘어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수동 기어 차량을 판매하는지 여부는 모르겠다. 생산조차 하는지도 모르겠다.

99.8%가 자동변속기 차량 선택이라고 하니 수동기어 차량 생산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소수인 애호가만이 찾는다면 그 가치가 떨어져 생산하는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다.


수동기어 차량 선호도를 논하는 것에 더해서,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주어진 독일 사회 시스템이 부럽다.

선택을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과 선택을 아예 할 수 없는 것은 의미가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자동변속기 운전 세대는 오르막길 정차와 출발이 주는 공포(?)가 어떤지 상상하기 어려울 것 같다.

자동변속기가 이 공포감을 완전히 지워준 지 오래지만 또 다른 긴장감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듯하다.


앞차의 뒤 유리창에 표현이 익살스럽다.


두 시간째 직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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