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존재의 기억

기억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존재를 증명한다.

by 오히려 더 좋다
제주 여행 중
눈이 부시게 푸르른 어느 날,
샌드커피와 새 둥지 모양의 디저트를 접한다.
과거가 현재 속으로 밀려 들어와 같이 자리를 잡는다.

밝은 아침 햇살이 커튼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실내를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포근한 잠자리 덕분인지 밤새 한 번도 깨지 않고 달콤하게 잘 잤다. 오랜만에 경험하는 포근한 이불속, 박차고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쾌적한 온도와 습도 그리고 베개와 침대의 적당한 쿠션이 꿀잠이라는 선물을 안겨준 것 같았다. 이 조합을 통째로 집으로 옮겨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상상해 보았다. 상상이 깨지는데 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런 감각은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몸 어딘가에 조용히 남겨두는 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달콤함 뒤에는 대개 작은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었다.


잠자리에 취해있는 사이, 숙소에서 제공하는 아침 식사 시간을 놓쳐버렸다. 서두르면 간신히 먹을 수도 있었겠지만 허겁지겁 식사하는 모습이 떠올랐고 이내 아침 먹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자동차 가스통에 연료를 채우듯 급히 음식을 입에 밀어 넣고 싶지도 않았고, 서두름 자체는 이미 "멈춤과 쉼"이라는 이번 제주여행의 철학과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숙소 밖 카페에서 커피 한 잔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하기로 했다.


아침 식사를 포기하고 나니 오히려 약간의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잠깐의 시간을 이용하여 머무는 숙소 내 정원을 먼저 둘러보기로 했다.


정오를 막 지나는 시간, 태양 빛은 가장 선명한 농도로 하늘을 채우고 있었다. 하늘은 코발트 빛으로 깊게 물들어 있었고 구름 한 점 없었다. 지난 며칠간 우중충했던 잿빛 하늘과 대비돼서인지 더욱 푸르고 시원해 보였다.


멀리 보이는 한라산 정상은 하늘을 콕 찌르는 형상이었고, 파란 물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릴 것 같다는 엉뚱한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하늘 높이 떠 있는 매 한 마리는 푸른 바다를 유영하는 작은 돌고래처럼 보였다.


놀이기구 위로 바라본 눈이 부시게 푸르른 하늘


자연스레 서정주 시인의 "푸르른 날"이 연상되었고, 어느새 노랫말을 작은 소리로 흥얼거리고 있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내 경우도 아름다운 경치는 종종 어렴풋한 그리움과 추억을 불러들여 내 가슴 한구석을 아릿하고 먹먹하게 만들고는 한다. 과거에 대한 그리움, 추억, 슬픔, 기쁨까지도... 지나간 모든 것들이 가슴을 아련하게 한다.


집사람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서너 걸음 앞서 걸었다.

옅은 흥과 그리움에 취해있는 모습이 겸연쩍기도 했고, 잠깐만이라도 그 감성이 깨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산책을 마치고 한 잔의 커피를 위해 카페를 찾아 나섰다.


코발트 빛 하늘과 파란 바다...

해안 도로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바다로 가야 할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하늘과 바다의 동일한 색감의 감성이 우리를 자연스럽게 바다 쪽으로 향하게 만든 것 같았다.

파란 수평선과 파란 하늘이 만난 경계에 대한 호기심이 잠재의식 속 한 장면을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코발트블루로 둘러싸인 그리스의 에게해와 하늘, 파랑 원형지붕, 그리고 하얀 담벼락의 산토리니 풍경이 마음속에 투영되고 있었다. 시원함(시각적, 감성적 시원함)의 절정을 이루는 파랑, 하얀색의 그 조화...(순전히 개인적인 감성이지만)


들떠있는 분위기를 커피 한 잔으로 완성하고 싶었다.


꽃과 과일 향이 풍부한 컵 노트를 가진 커피 한잔이면 더 바랄 것이 없는 듯했다.

괜찮은 바리스타를 운 좋게라도 만난다면 가능하겠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냥 오늘의 운에 맡기기로 했다.


애월 카페거리, 워낙 유명하기도 하거니와 제주도에 갈 때마다 잠깐씩 들르던 곳이었다.

해안가에 자리 잡고 있기도 하고, 우리의 추억이 겹쳐있는 장소이기에 목적지가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카페거리는 여전히 활기로 가득했다.

젊은 사람들, 공사 차량, 분주한 움직임, 도시를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또 다른 도시 속에 다시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거리의 상황과는 다르게, 이상하게도 답답하거나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원하고 맑은 느낌이었다. 마치 시원한 사이다를 한 잔 들이켤 때 그 기분처럼 말이다.


들어가 보고 싶은 카페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어디를 선택하느냐가 문제였다.

그냥 운에 맡길 수밖에 없는 듯했다.


순간 떠오르는 아이디어, 유명 연예인이 운영한다는 카페가 있다고 했다.

그냥 그곳으로 정했다.


인지도가 있었음인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카페는 세 개의 작은 동으로 구별되어 있었고 그다지 큰 공간은 아니었다. 실내는 독특한 인테리어와 시원하게 탁 트인 분위기, 그리고 직원들의 생기가 더해져 싱그러움으로 가득해 보였다.


집사람이 주문하러 간 사이, 카페의 공간과 분위기를 눈에 담기 시작했다. 언젠가, 분명히 다시 꺼내볼 기억이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커피와 앙증맞은 모습의 디저트가 도착했다.

샌드커피와 새 둥지 모양 위 새알 세 개 디저트

커피는 샌드커피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커피였다.

기대와 달라서,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왠지 모르게 반가움이 앞섰다.


오래전, 샌드커피와의 첫 만남이 떠올랐다.

화창한 어느 봄날, 독일 하이델베르크 칼 테오도르 다리 근처에서였다.

길거리 이동식 커피 수레에서였다. 뜨거운 모래 위에서 천천히 끓여낸 투르키예식 커피는 묵직한 바디감과 깊은 풍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 맛과 향은 잊을 수 없을 정도의 강렬한 인상으로 내 감각에 진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우리나라로 돌아온 후, 내 생활 범위 내에서 샌드커피를 접할 기회는 아예 없었다. 까마득히 잊고 있던 이 커피를 오늘 우연히 만났으니 그 반가움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날도 오늘처럼 하늘이 유난히 푸르고 화창했었다.

독일에서 맑은 날은 흔치 않았다. 사람들은 햇살이 비치는 날이면 온통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지금의 분위기와 과거 독일에서의 분위기가 묘하게 비슷한 감성으로 겹쳐있는 듯했다.

장소도 시간도 다르지만, 느끼는 감정의 결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어 보였다.


샌드커피 한 잔이 시간과 기억을 여는 열쇠로 작용한 듯했다.


디저트는 작은 새 둥지 모양이었다.

둥지 안에 조그만 세 개의 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무 위에서 막 내려온 둥지라 해도 믿을 만큼 정교해 보였다.


어릴 적 집에서 기르던 십자매 한 쌍이 떠올랐다. 어머니께서 사주셨던 작은 새, 알을 낳고, 부화하고, 새끼가 자라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어미 새가 처음 알을 낳던 날, 알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은 지금도 또렷하다.

어린 나는 거의 난리법석을 떨며 기뻐했었다.


지금 내 앞의 디저트가 그 상황과 너무도 닮아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오… 마이 갓…”


이 디저트를 만든 사람은 분명 천재적인 미적 감각을 지녔을 것이 틀림없다.

그 재능에 조용히 찬사를 보낸다.


새를 기르며 설레던 어린 시절의 내가 문득 떠올랐다.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이상하게 그 시절의 감성은 조금도 바래지 않았다.


정교하게 디자인된 디저트 하나가 시간을 넘나들며 어린 나를 내 앞에 데려다 놓았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어느 날,

샌드커피와 새 둥지 모양의 디저트를 접한다.


과거가 현재 속으로 밀려 들어와 같이 자리를 잡는 순간이다.


독일에서 봄날의 나, 그리고 새 둥지를 들고 있는 어린 내가 지금 이 테이블에 나와 함께하고 있다.


샌드 커피 한 잔을 들고 있는 현재의 나,
봄날 하이델베르크 거리에서 샌드커피를 마시던 나,
십자매의 알을 발견하고 놀라워하던 어린 나.


이들은 서로 다른 존재일까?


기억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대문사진: 출처 PIXABAY.COM (무료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