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 남은 달력이 마지막 입새처럼 외로이 걸려있고 아쉬움을 위로하듯 거실에 걸어 놓은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 전구가 마지막 달임을 확인시켜 주는 지금, 지난 세월 크리스마스 광경이 아른거린다.
한때는 이 때쯤이면 몇 걸음 안가 세워놓은 크리스마스트리가 온 세상을 밝혀주듯 반짝이고 있었고 거리에 울려 퍼지는 캐럴송과 거리로 쏟아져 나온 많은 연인들의 술렁거림이 연말분위기를 더해주었다.
명동성당 앞의 구세군의 자선냄비 앞을 지나는 사람들, 남산고가도로, 그리고 3.1빌딩 주변이 아른거린다.
하얀 눈이 흩날리던 거리에 "무작정 당신이 좋아요. 누군가 곁에 있어주세요~"로 시작되는 임수정의 '연인들의 이야기'란 음악이 겨울 냄새와 함께 거리를 물들였던 시절.
이맘때쯤이 되면 당시 청량리 맘모스백화점(현재 롯데백화점) 앞 거리가 떠오르는 건 어쩔수 없다.
아쉽지만 지금은 저작권 문제로 이러한 광경들은 시간과 함께 소멸 된지 오래이다.
그저 나이와 함께 조용한 연말을 마주하는 게 보통의 일상이 되어있다.
그렇다고 그때가 그립고 그리워 다시 돌아가고자 발버둥치고 싶은 생각은 추오도 없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단지 젊은 세월을 보내온 이 자리에 서서 현실을 직시하며 잠시 삶의 필름을 되돌려 볼 뿐, 저 멀리 밀어놓았던 과거의 시간들을 편안한 마음으로 떠올릴 뿐이다.
오늘 나 역시도 한해를 정리하는 차원의 작은 일상이 갈무리된 날이다.
(한학기를 마치며)
내가 맡고 있는 몇 군데 강의들은 12월이 되면서 하나씩 종강에 들어갔고, 오늘까지 남아있던 한 곳은 오전과 오후 연 강의로 한 학기 마지막 수업을 마친 날이다.
인생 전편을 잘 마무리한 사람들이 후편의 삶을 펼치기 위해 모인 이곳은 한 학기 동안 참으로 활기에 넘쳤고 서로를 배려하며 배우고 공부하는 의미있는 장소가 되어, 서로는 단어 하나라도 잊혔던 것들을 기억해내며 웃음꽃을 피워내곤 했다.
참으로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젠가 수업도중 한 말이 떠오른다.
"이 정도로 살다보니,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길인가에 대한 자문자답을 자주 하곤 합니다. 노래 가사처럼 지도조차 없는 인생길 이젠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맡기듯 세월에 나를 맡겨도 좋지 않을까요 인생 전반기를 열심히 살아오신 것만으로 충분하답니다.
특별한 삶이 따로 있을까요. 진정한 특별함은 어딘가에 숨겨진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좋고 나쁜 것을 넘어선다고 믿습니다. 삶의 본질적 가치는 '대나무의 마디'와 같습니다. 각각의 마디가 성장하며 튼튼한 나무를 이루듯, 우리의 삶의 각 순간도 의미 있는 시간들로 채워집니다. 이렇게 하나씩 쌓인 순간들이 모여, 우리의 마지막 여정이 덜 후회스러운 아름다운 여정으로 완성되지 않을까요."
여기에 MSG를 살짝 쳐주었던 기억도 난다.
그러니 "일단은 현재 내 앞에 주어진 우리의 시간(일본어)을 즐겨주세요"라고 말이다.
이쯤되면 거의 협박범 수준 같은 발언이지만 그 누구도 나를 탓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두가 선생인 나보다 아주 자애로우시고, 연배도 많은, 세월을 달관하신 분들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만의 주관적 견해가 백프로 '만땅(満タン,탱크로리에 가득 찬 기름)' 인 말이라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말밖에 없는 듯 했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우리는 마지막 수업을 마치며 아쉬움과 내년의 만남을 기약하는 뜻으로 식사와 따뜻한 차를 마시며 즐거운 대화를 이어갔다.
학습자들의 감사 문자가 쇄도하는 시간!!.
지금 학습자들에게 오늘의 마지막 수업자료를 보내면서 언젠가 했던 말처럼 알찬 ‘대나무 한마디’가 완성된 것처럼 무사히 끝낸 한 학기를 자축하며 모두에게 감사의 글을 남긴다.
학습자 여러분, 그동안 고생 많으셨지요 앞으로도 파이팅입니다!!
"お陰様で、今年は楽しい思い出を作れました。
有難うございました。
来年もすばらしい年になります様に! "
(덕분에 올 한해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년도 멋진 한해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