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바쓰J Jan 29. 2022

X2015, Y2022 프로젝트

다국적 기업에서 ‘프로젝트’ 계획이 발표되면 일어나는 일

<커버 이미지-D백과 어학사전 캡처>

어쩐지 멋지게만 들렸던 이 단어의 뜻을 찾아보고 나니, 회사의 ‘특정 목적’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하며 갑자기 정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프로젝트(Project);
어떤 특정 목적으로 실시되는 프로그램 설계나 연구, 개발 등 한 번에 그치는 성격을 갖는 일이나 사업.
(출처; D백과 어학사전)
 





프로젝트-당신은 이 단어가 멋지게 들리는가?

 

유럽에 있는 본사로부터 내려온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직원들이 노력과 수고를 쏟아부어 기한에 맞춰 무사히 훌륭하게 일을 마쳤을 때, 모든 직원들은 그 결과에 기뻐하고 보람을 느낄까? - 일부는 맞을 수 있고, 일부는 절대 아니다. 적어도 내가 겪은 바로는 그렇다.

 




다국적기업의 프로젝트에 대하여


몇 년 전부터 회사가 lean(마른)과 fast(빠른)이라는 단어를 즐겨 쓰기 시작하더니 세계적으로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그 몸부림은 바로 ‘프로젝트’라는 탈을 쓰고 행해졌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본사는 X2015 프로젝트를 발표한 후 각 대륙별로 거점(주로 노동력이 싼 나라)을 정해 ‘공유 서비스 센터’를 만들었다. 그 프로젝트의 결과로 2015년까지 열댓 명이 넘던 우리 경리부는 4명이 남았다. 대신 동남아 어느 나라에 전문 회계사이면서 영어와 서투른 한국어를 구사하는(+ 임금은 한국 사람 대비 1/5 정도나 받을까 추측되는) ‘한국 담당자’가 생겼고 그와 업무를 하게 됐다. 어제까지 ‘철수’님 ‘영희’님과 얼굴 보고 논의하며 해결하던 문제들을 오늘부턴 메신저 창 안과 전화기 너머에 ‘피터’님, ‘제인’님과 이야기 나누고 처리하게 됐다.

소통의 답답함과 업무 비효율은 회사 다이어트의 부작용이었다. 분명 사람은 줄었는데 일은 줄지 않는 우리네 일터의 영원 불가사의한(!) 고통은 고스란히 남은 직원들이 분담하게 되었다.


더 앞서 진행된 A 프로젝트로는 한 사업부 전체가 회사에서 떨어져 나가 새로운 이름의 회사가 됐다. 같은 층을 쓰던 사무실에는 벽을 치고 철문을 달고, 반대편에 새로 만든 출입구엔 낯선 현판이 달렸다. B 프로젝트로는 또 다른 사업부를 다른 회사에 팔았고, C 프로젝트로는 업계의 다른 회사를 인수해 전에 없던 사업부들이 더 생겨났다. 그리고, D 프로젝트로는 우리 공장을 다른 회사에 넘겨주었다.


그렇게 경리/회계처럼 아무나 할 수 없는 전문적인 업무를 하면서 평생직장이라 믿고 근무하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회사에 더 이상 필요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글로벌 대기업이란 든든한 이름표를 달고 있다 속수무책으로 떼이는 것이, 외국계 기업으로 입사했는데 국내사 직원이 되는 것이, 다른 동네 경쟁사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대거 우리 회사로 출근하는 것이-그래서 두 회사의 겹치는 직무, 직급의 한정된 의자에 누가 앉을까를 새로 경합해야 하는 것이, - 이 모든 일들이 다국적 기업에서는 상당히 자주 또 쉽게(?!) 가능함을 목격했다.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더 발전하면 할수록 그 가능성이 더 넓은 영역으로 확대된다는 것도.


직원들이 답답하고 불편해도 어쨌든 일이 돌아간다. 회사 운영 비용 중 아마도 가장 부담스러울 인력비가 덜어지니 한참 부르짖던 대로 조직이 좀 날씬해져 상당히 만족스럽다. 그렇다고 그다지 빨라진 건 아닌 것 같지만 그건 니(직원들) 사정이고. - 회사는 하나의 프로젝트 결과를 통해 이러한 교훈과 효과들을 얻고, 한껏 더 말려볼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또 새로운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그럴싸한 이름을 붙여 전 세계 지사에 진행 타임라인 및 완료 목표 일자와 함께 발표한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는 성공적으로 완료되었다는 결과를 공유하며 자축하고, 그간 직원들의 노고와 협조에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전보다 한층 마른 몸으로 분위기 쇄신을 하며 또다시 새로운 시작을 다짐한다.


돌아보니 회사는 참 끊임없이 프로젝트, 아니 서바이벌 게임을 진행해 왔다.





내 목 가까이 조여든 프로젝트


Y2022 프로젝트.

3년 전쯤 회사는 2022년까지 전 세계 운영관리 그룹에서 40% 인원을 덜어내겠다는 새로운 계획을 내놓았다. 회사도 고통스럽다고, 어려운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욱 날씬해지고 더 빨리 뛰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프로젝트가 발표되기 몇 달 전, 구매부에서 수년을 일한 내 팀장과 나는 새롭게 구성된 조직으로 또다시 소속이 (강제)변경됐다. 그리고 얼마 후 공개된 프로젝트 차트에는 각 부서의 일부 인원들을 비롯해 특히, 구매부 전체가 한국에서 사라지는 충격적인 그림이 그러져 있었다.

나는 마치 드라마 ‘오징어 게임’ 속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에서 가까스로 결승선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회의실에 모인 우리들에게 부서장은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마치고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건 마치 ‘내가 내 무덤을 이렇게 파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나의 상사였던 그와 여러 동료들이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처럼 나갈 날짜를 정하고, 인수인계를 하며 카운트 다운을 시작했다.

이번엔 인도와 중국에 센터를 만들고, 본사 차원에서 관리가 가능한 통합 시스템을 구축했다. 코로나 시국이라 그 흔한 송별회 자리도 없이 동료들이 하나 둘 조용히 회사에서 사라지는 동안 그곳에는 새로운 입사자들이 늘어났다. 역시 영어만 할 줄 알거나 중국어가 모국어인 어색한 억양의 한국어를 구사하는 한국 담당자가 생겼다.

 

한 때 ‘사람이 죽어야 나간다’ 소리 듣던 우리 회사의 프로젝트들은 대체로 그런 것이었다. 누가 계속 살고 누가 죽을 것인지 정하고, 어떤 모양으로 회사가 새로 갈 길이자 조.퇴.자의 무덤을 팔지 설계자로부터 내려받은 설계도대로 스스로 삽질과 작업을 한 후에, 내가 영영 없어져도 어떻게 해서든 일이 돌아가게 만들어 놓는 것.

회사에 남는 그 누군가에게는 프로젝트의 완성이고 성공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서바이벌 게임 강제 아웃이고 어떻게 해서든 다른 먹고살 길을 찾아가야만 하는 것.


물론 간혹 조기퇴직 프로그램이 진행될 시기에 딱 맞추어 몇 년 전에 신청해 둔 이민 비자가 승인 나거나, 때마침 이 회사를 그만두려 했다거나 혹은 개인 사업을 구상하고 있어 오히려 좋은 목돈마련의 기회가 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우는 사람들 등 뒤에서 웃을 수 있는 그들은,


 “OO님, 정말 전생에 나라를 구하셨나 봐요!”


라는 부러움 섞인 ‘퇴사 축하’ 인사를 받기도 한다.

분명 로또 1등에 당첨될 만큼 천운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쯤 되니 회사를 조기퇴직 프로그램 없이 언제고 그냥 나가는 사람은 손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조차 든다.


그런데 그런 프로젝트들의 성공에 과연 축하의 박수만을 보낼 수 있는 것일까?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고 특히 요즘은 너나 할 것 없이 예측 불허한 세상을 살고 있다지만, 혹시라도 외국계/다국적/글로벌 기업으로 입사나 이직을 희망하고 준비하시는 분들 중에 아직 잘 모르셨던 분들이 있다면, 그곳에선 위에 나열한 모든 일들이 국내 기업보다 훨씬 더 높은 가능성과 빈도로 발생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면 좋겠다.





프로젝트부작용이  


참, 예상치 못 했던 프로젝트의 부작용은 또 있었다.

바로 나처럼, ‘생존자’도 ‘탈락자’도 아닌 ‘부상자’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쩌다 내가 회사의 ‘뜨거운 감자’님이 되고서야 비로소 먼저 떠난 사람들의 고충이 이해가 된다. 혹시 말하지 못한 사연들은 없었을까, 홀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은 없었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 역시 전엔 그저 남의 일이었고, 난 진심으로 알지 못했다. 경험하지 않으면 절대로 모두 다 알 수 없다는 것은 진정 진리이다.  



패자부활전 같은 이 시간들이 지나가면, 나는 그 서바이벌 게임에 ‘깍두기’로 라도 다시 참가할 수 있게 될까? 아니, 내가 여전히 다시 게임에 참가하고 싶을까?



당신은 이런 연속 프로젝트 게임에
참가하시겠습니까?




*본 글에 언급된 프로젝트들의 이름은 모두 임의로 표기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작가의 이전글 맘밍아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