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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바쓰J Jan 30. 2022

애사심 (愛社心)

어쩌면, 언제 어떻게 차일 지 모르는 당신만의 외사랑

<커버 이미지-근속 10년을 맞았을 때 회사가 내게 준 축하 레터>

받았을 당시 읽었을 때의 느낌과 지금 다시 읽는 느낌이 전혀 다른 것은 단지 세월 때문만이 아니었다.






애사심 (愛社心);
몸담고 있는 회사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근속 10주년의 추억


외국계 특히 유럽 회사들은 미국 회사들에 비해 비교적 조직문화와 구성원들이 유하고 가족적(?!)이어서 업계에서도 편안하게 근무할 수 있는 곳으로 회자되어 왔다.


나의 회사도 그랬다. 연봉은 좀 짜도 워라밸 최상이라는 소문이 더해져, ‘그 회사는 공무원 조직 같다’거나 심지어 ‘사람이 죽어야 나간다더라’라는 말들을 듣곤 했었으니까.

그래서였는지 나는 부서 사람들이 모두 모인 내 근속 10년 축하자리에서,


오늘까지   번도 아침에 눈을 떠서 회사에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저는 정말 행운아이고, 모두 여러분-좋은 동료분들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라고 말했었다.



그날 퇴근길에, 매일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 DJ 배철수 아저씨께 사연을 보냈다. 어릴 때부터 좋아한 Lenny Kravitz(레니 크라비츠)의 ‘It ain’t over till it’s over(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노래를 신청하고 기다리며 소녀처럼 설렌 기억이 생생하다.


철수 아저씨, 안녕하세요. 조금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십 년 전 새해를 시작하며 첫 출근을 했던 떨림과 희망이 요 며칠 자꾸 생각납니다.
한 회사에 십 년을 다니면서도, 한 번도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일 하기 싫다... 가기 싫다... 이러지 않았으니, 저 꽤나 행운아고, 성공인 거죠? 기특하기도 한 거 맞죠? *^^*
이렇게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자축을 하다가 오늘 퇴근길엔 아저씨께까지 축하해 달라 땡깡(!)을 부려봅니다.
어느덧 여섯 살이 된 아이의 엄마 역할까지... 치열한 워킹맘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힘을 내어 앞으로의 십 년 이십 년을 더 달려갈 것을 희망해 봅니다.


아저씨도 새해에 힘차게!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퇴근길 10주년에, J 드림 -




곧 나는 버스 안에서 기쁨에 소리를 지를 뻔했다.


"아 정말? 십 년 동안 한 번도?! - 대단하네요.

J 씨, 축하합니다!

그래도 너무 앞만 보고 달리지만 말고,

가끔 옆도 둘러보며 걸어가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철수 아저씨가 불러준 내 이름을 듣고 축하와 함께 띄워주신 신청곡을 들으며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날개를 꺾고 주저앉은 새


그래도 여기나 저기나 다 비슷한 게 회사고, 역시나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인 인간세상인데 무조건 좋기만 했으랴. 바쁠 땐 화장실 가는 것조차 잊고 또 참고 주말도 없이 일을 해대고, 보따리상처럼 전국을 누비며 밥먹듯이 출장을 다녔다. 업무뿐 아니라 인생을 가르쳐 주신 존경스러운 사수를 만난 복이 있었는가 하면, 후배들이 못 견디고 울며 떠나게 만든 환장할(!) 상사와 꼭 붙어 수년을 지내야 하는 괴로움도 있었다.


홍보부 막내로 입사해 일을 배운 후 주 업무를 배정받고 10년을 일했는데, 본사의 조직 변경에 따라 갑자기 구매부로 (강제로) 배치받게 됐을 땐 아예 DNA를 바꿔야 할 만큼의 변화를 겪기도 했다. 제대로 가르쳐 주는 이 하나 없이 까막눈으로 처음 보는 구매 시스템을 더듬거리며 익히고, 추가로 떨어진 구매 관련 업무를 해야 했다. 전 부서에선 돈을 잘 쓰며 일을 하는 것을 평가받던 사람이, 똑같은 일을 하면서 돈을 얼마나 많이 아끼며 일을 하는지- 즉 얼마의 회삿돈을 saving(절약) 해냈는지-를 보고하며 새로운 부서가 요구하는 정반대의 기준으로 업무 평가를 받아야 했다.


그뿐 아니라, 회사원으로 성장하며 한 계단 뛰어올라야 할 시점엔 조직 내 세력다툼을 위한 상사의 정치적 야욕으로 갑자기 외부에서 영입된 사람에게 팀장 자리를 내어주기도 했다.

내 인생의 사수가 회사를 떠나시고, 그 자리에 새로 온 팀장과 인사를 나누는데… 아무래도 이름과 얼굴이 낯익었다. 수백 장 꽂힌 명함첩을 뒤적여 보다가, 그 사람이 언젠가 우리 팀이 맡은 일에 협업할 대행사 선정 입찰에 참여한 업체 직원 중의 하나였다는 걸 기억해 냈다. 그리곤 나 홀로 왠지 모를 패배감과 좌절감에 빠지기도 했다. 속세가 규정한 ‘갑’과 ‘을’의 관계를 두 단계나 뛰어넘어 내 위로 와 앉은 사람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늙은 호랑이가 떡하니 앉아있는 굴로 들어온 것 같았을 게고, 모두 회사에 훨씬 먼저 오랫동안 자리 잡은 팀원들과 사이가 편할리 만무했다.


그때 힘들어하는 내게 옆 팀 선배는, 부서 여러 사람이 함께 “그 인사는 아닌 것 같다, J를 팀장으로 올려줄 때가 됐다”라고, 건의하고 말려봤지만 그 부서장의 고집 앞에 아무 소용없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곤 뼈 때리는 말을 덧붙였다.


“J님, 사회에서는 결국 운도 실력이에요!”


아아, 그렇구나!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상황을 만든 상사는 마음이 편치 않았는지 자기 방으로 날 따로 불러 본인 입장을 설명(변명)하곤,


“J님, 지금은 다른 생각 하지 말아 줘. 나도 회사도 아직 네가 필요하다.”


라며 내게 묶어둔 고삐를 단단히 조였다.

(그때, ‘아직’이라는 단어에 주목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즈음 딱 한 번 헤드헌터의 제안으로 이직을 생각했다. 더 큰 글로벌 기업의 더 높은 자리에 지원해 면접까지 치렀다. 헤드헌터는 최종 면접까지 긍정적인 분위기였음을 전해 들었다며 결과가 좋을 거라 들떴다. 하지만 나는 '계약서에 사인을 하기 전까지는 절대 안심해선 안 된다'라는 월급쟁이들 사이에 ‘이직의 전설’을 굳게 믿고, 입을 굳게 닫고 있었다.


20대 아가씨 때 입사해서 사보에 결혼-출산소식까지 알리며 나의 어른 인생 반 이상을 함께한 곳이고, 몇 안 되지만 정말 인생의 친구가 됐다 믿은 절친한 동료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회사에 대한 나의 애정과 아쉬움은 그 하나의 사건보다 훨씬 더 컸다. 게다가 그즈음 난 결혼 2년여 만에 싱글맘이 된 후, 1년 넘게 이어지는 이혼소송으로 오전엔 너덜너덜한 마음을 안고 법원에 출석했다가 오후엔 웃으며 출근해야 하는 상황에 있었다. 그렇게 힘겨운 개인생활을 짊어지고 가는 동시에 밥벌이와 사회생활까지 미지의 판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적잖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런 저런 이유로 승진 하나를 포기해도 다른 모든 것은 놓을 이유가 전혀 없을 만큼 나는 우리 회사에 안정을 느끼고 내가 하는 일에 만족하고 있었다.


결국 면접을 봤던 회사는 미국 본사에서 갑자기 새로운 자리에 대한 유보 결정을 내렸다며 난색을 표했고, 헤드헌터는 예상치 못한 급 상황 전환에 대해 아쉬움과 사과를 전했다. 그리고 몇 달 후, 그런 판을 벌려(?!) 놓고 나를 붙잡았던 상사는 자기가 먼저 조기퇴직에 손을 들고 회사를 나가는 반전 드라마를 연출했다.

오랫동안 직장인들로부터 구전된 사회생활 반전과 배신의 전설은 역시 실화였다.


그냥 그대로 있으라는 운명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나는 날개를 꺾었고,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곤 회사에 눌러앉았다.


그렇게 수년의 시간이 더 쌓여 어느덧 2021년,

아이는 13살이 되고 나는 근속 17년을 맞았다.





애사심이라는 그 말


이만하면 참 ‘행운아’ 임을 확신했던 시간들이 지나고, ‘과연 나는 행운아일까?’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애사심은 어쩌면, 언제 어떻게 차일지 모르는 나만의 외사랑 인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난 어찌 그리 지고지순 하나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순정을 지켰는지... 사랑에 눈이 멀어 그가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여겼던 내가 지금은 참으로 어리석게 느껴진다. 후회스럽기도 하다.


그러다 며칠 전 우연히 회사가 준 10년 근속 축하 레터를 다시 보게 됐다. 아무리 봐도 분명히 회사는 나를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오직,


"당신의 서비스에 감사하고, 우리의 'mutual benefit'(상호 이익)을 위해 'fruitful cooperation'(생산적인 협조)를 계속해서 기대하겠다"


라고만 했다.

‘LOVE 사랑’이라는 단어는 어디에도 없었다.

아아, 참 너무 늦게 알았다.


한 눈 한 번 팔지 않고(실은 딱 한 번 팔고) 미친 듯이 사랑했는데, 같이 사랑한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독한 외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쓰러졌다. 그렇게 17.7년 지점에서 멈춰 섰고, 지금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회사원’ 신분으로 지내고 있다. 그 회사의 직원으로서 앞날이 어떻게 펼쳐질지 모른 채로 말이다.


아직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지, 그럼 그땐 나 자신과 그곳이 여전할지… 그게 아니면 나는 어디로 향해 어떻게 다시 걷고 달려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은 정말, 잘 모르겠다.

어쩌다 외사랑에 상처받고 사십춘기가 너무 깊게 찾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나의 회사가 좋은 회사라고 생각한다. 그 덕분에 내가 혼자 아이를 이만큼 키우며 살 수 있었고, 대부분의 시간을 즐겁고 행복하게 일했기에 늘 감사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과 좋은 추억들이 나쁜 기억보다 훨씬 더 많았다.



그래도 어느 누군가가 나처럼 ‘미련한 외사랑’을 하고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8년 전 배철수 아저씨가 내게 해 준 말처럼 가끔 옆도 둘러보길 바란다. 그리고 종종 다른데 한눈도 팔았으면 한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모두 담거나, 오직 하나밖에 모르고 올인을 하면 언젠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 회사와의 관계에서도 예외가 아닐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도 분명한 건, 회사는 당신을 좋아할 순 있지만 결코 사랑까지 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애사심’이란 말은 있어도, ‘애직원심’(?!)이라는 말은 없는 것처럼.




*당신의 삶도, 나의 삶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https://youtu.be/TmENMZFUU_0

<‘It ain’t over till it’s over.’ 공식 뮤직 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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