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바쓰J Jan 28. 2022

맘밍아웃

벽장 속에 갇혔던 마음이 걸어 나오는 중입니다.

<커버 이미지-몇 년 전 미술관에서 직접 찍은 Keith Haring(키스 해링)의 작품>

 하트 모양을 아주 좋아한다. 글을 쓰기 시작하며  그림을 보니, 정말 마음이 씩씩하게 걸어나오는  같아 더욱 마음에 든다.






커밍아웃(coming out);
영어 'come out of closet'에서 유래한 용어로, 번역하면 '벽장 속에서 나오다'는 뜻이다. 동성애자나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들이 더 이상 벽장 속에 숨어 있지 않고, 밝은 세상으로 나와 공개적으로 사회에 자신의 성적 지향과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출처; 두산백과)




마음을 다치다


작년 늦봄 나는 '마음이 다치는' 사고를 겪었다. 그런 사고는 처음이라 스스로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 하는 동안 상처는 덧나고 곪아 급기야는 터졌다.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고,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다는 걸 몸소 증명하며 결국 입원까지 했었고, 여전히 치료를 받고 있다.

그땐 빛이 하나도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터널에 매몰된 느낌으로, 매일의 삶이고 일상이던 것들을 하나도 할 수 없게 된 낯선 나의 상태가 언제나 나아질까, 아니 정말 나아는 지는 걸까 싶게 까마득했다.


작은 상처부터 부러진 뼈까지, 또 배를 째거나 가슴을 열고 심지어 머리를 여는 수술을 받고도 언젠가는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는 놀라운 회복력을 가진 것이 인간이라는 걸 우린 알고 있다. 물론 평생 흉터가 남거나 간혹 장애를 안게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사고든 질병이든 아프게 된 사람은 최대한 '원상복구'하기 위해 안에서는 치유 본능이 열일하고, 밖에서는 치료와 재활을 통해 속도를 높이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정신)도 질병이 있거나 상처를 입으며 사고를 당할 수 있고, 당연히 치료하고 재활을 하면서 회복될 수 있단 사실을 대게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는 잘 알지 못한다. 정확하게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므로 자세히 알 필요가 없다. 나도 그랬으니까 말이다.


인간 본연의 신비한 회복력에 타인들의 위대한 힘이 더해져, 그렇게 캄캄하기만 했던 나는 서서히 몸을 일으키고 마음도 일으키고 있다.

2주간의 입원 후 집에 돌아와서도 가족들이 교대로 내 곁을 지켰고, 내일모레 칠순인 엄마는 마치 다시 신생아 육아를 시작하신 듯이 나를 먹이고 재우고 하루에 한 번이라도 데리고 나가 산책하기에 전념하셨다. 10분에서 30분, 한 시간으로 걷는 시간이 점차 늘어나고 어느덧 혼자서도 긴 산책을 다녀오게 됐다. 멈췄던 생리가 다시 돌아오고, 치솟은 혈압을 약이 내려주면서 최근엔 지난 수개월 동안 생각지 못 했던 운동도 다시 시작했다.


워낙 건강하고 사교적이던 나였기에 어느 순간부터 모든 사람들과 연락을 끊고 은둔자처럼 변해버리자, 회사에는 내가 코로나에 걸려 음압 병동에 들어가 있는 거 아니냐는 소문이 돈다고 했다.

언제나 씩씩한 친구이니 처음엔 일이 너무 바쁘고 정신없어 그렇겠지... 하다가, 아무래도 연락이 너무 뜸한데... 무슨 일이 있나, 별 일 아니겠지? 하며 나를 기다리고 기다려 주던 친구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급기야 집으로 쳐들어(!) 온 후부터는 서서히 사람들도 만나기 시작했고 이제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예전처럼 먼저 안부를 묻고 연락도 하게 됐다.  


세상 모든 일이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로 다 이해할 수 없고, 잘 안다고 생각해서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이번에 아프면서 다시 한번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해외로 이사 간 절친한 친구가 유산의 아픔을 겪고 우울증을 앓으며 깊은 해저에서 허우적거리는 것 같다고 했을 때도, 언젠가 한 친구가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숨이 막히는 기분으로 죽을 것 같았다 전화를 했을 때도, 또 다른 친구가 사람 관계에 시달리다 가슴이 터질 듯한 공황발작을 겪었다 했을 때도, 그리고 회사 후배가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실신을 하고 일 년여를 매일 팀장 때문에 괴로워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참다 참다 결국 멀쩡한 대기업을 그만두고 신생회사 계약직을 택해 떠났을 때도, 나는


"아이고 저런, 힘들어서 어쩌니... 마음을 잘 다독거리고 푹 쉬어봐... 네가 그렇게 힘든데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하네.”


라는 정도의 말을 하고, 위로주나 한 잔 사주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제와 보니 그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다시금 깊이 공감되어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울러, 그나마 내게 전화를 하고 얼굴을 마주하는 건 아직(!) 손 쓸 수 없을 만큼 심각한 것은 아닌지라 보다 적극적으로 줄 수 있는 도움을 주고, 필요한 전문적 도움을 받도록 독려했어야 한다는 것 역시 깨닫게 되었다. 더불어 내가 마음건강(정신건강) 문제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했고, 무지했고, 아예 배울 기회조차 없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삶을 위한 응급처치, 그리고 편견


대학시절 나는 경영학인 전공과 관계없이, 호기심에 first aid(응급처치) 강사 자격증과 water lifeguard(수상 인명구조원) 자격증을 취득했었다. 응급처치 교육에서는 쓰러진 사람을 발견했을 때 제일 처음 ‘D’(danger;위험)를 체크하도록 강조하는데, 이는 우선 스스로 어떤 있을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지를 확인하고 구호 대상과 주변인들 모두의 안전을 확보하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수상 인명구조원 훈련 내내 가장 많이 연습한 영법은 입영(제자리에 서 있는 자세의 영법. 일명 해병대 수영)이었는데, 이유는 물에 빠진 사람을 발견했을 때 그 근처로 접근한 뒤 계속 입영을 하면서 주변 상황과 익수자의 상태를 관찰하고 파악해야 옳은 판단을 하고 적절한 액션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비행기에 탑승해서 비상시 대처 안내를 할 때 보면, 산소마스크를 먼저 본인이 쓰고 그다음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씌워주라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우리는 언제나 스스로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고, 필요할 때 남을 도울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런 안전-구호 교육을 받았고, 학생들 심지어 소방관님들에게 까지 강의를 하기도 했던 나는, ‘마음(정신) 건강 웰빙’에 있어서는 나 하나도 스스로 지킬 수 없이 그토록 무지하고 무력했던 것이었다.  



누군가 말했다. “외국인들이 그러는데 한국에는 장애인이 별로 없는 것 같다더라.”라고. 이에 장애인인 어떤 분이 답했단다. - “없는 것이 아니라, 밖에 안 나오고 숨어 있다”라고.


예전보다 많이 달라지고, 나아지고 있다고 해도 유난히 선입견과 편견이 많은 것들을 지배하는 대한민국에서는 소위 ‘소수’인 사람들이 여전히 편안하게 살기 어려워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소수란 장애인, LGBT(성적 소수자), 외국인 만이 아니다. 이혼한 사람, 싱글 부모인 사람, 노처녀 노총각인 사람, 독신이나 비혼 주의인 사람, 국제결혼을 한 커플과 그들의 혼혈자녀까지…그 수가 결코 적지 않다고 하는데도 죄다 딱지를 붙여 ‘마이너’로 분류하고, 용기 내어 당당하게 사실을 드러내는 순간 색안경을 끼고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그래서 그런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자리를 17년이나 차지했다는데도, 주변에 마음이 아파 병원에 가야겠다거나 치료를 받는다는 사람들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막상 병원에 가보니 정신건강의학과 대기실에 환자가 가득하고 입원실에 자리가 없어 열흘 넘게 대기를 했을 만큼, 분명히 많이들 아픈 것 같은데 그저 ‘쉬쉬한다’. 괴로운 일을 혼자 못 견디겠어서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면 혹여 그건 네가 너무 예민한 거라고, 그런 유리 멘털로 어떻게 험한 세상을 살아가겠느냐고 핀잔이나 들을까 봐 망설여진다. 언제나 강해야만 하는 각 가정의 가장들과 혼자인 사람들 그리고 특히 더 씩씩함과 강인함을 강요받는 남자들이면 더욱 그럴 게다. 그렇게 홀로 버티다 정말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시기를 놓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 어쩌면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상태가 되거나 혹은 막을 기회조차 만나지 못해서 영영 돌이킬 수 없는 사고로 이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신건강에 대한 일반 교육의 부재


아찔했던 몇 개월 전 상태가 조금씩 아득해지면서 나는 정신건강(mental health) 관련 교육에 대해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국내외 사이트들의 기사와 정보들을 읽었다. 책과 영상을 찾아보고, 해외 도서를 주문해 읽기도 했다. 우리나라 실정을 살펴보고, 다른 나라들은 어떤지도 기웃거려보았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썼(지만 결국 용기가 나지 않아 널리 알리진 못했)다. 그러고 나서 온라인 매체에 제보 기사를 썼다. 아직 우리나라엔 없는 게 있는 영국의 간호사/협회장이자 내가 사 읽은 책의 저자에게 이메일을 쓰고, 호주에 있는 ‘mental health first aid(정신건강 응급처치)’관련 국제기관의 설립자에게도 이메일을 썼다. 그다음엔 미국 시카고에 있는 한 협회에도 이메일을 써 보냈다. 스스로의 무관심과 무지를 깨치기 위해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다면 작게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한낱 개인에 불과한 내 선에서는 경험과 선례를 나누고 더 많은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렇게 나는, 나의 하늘이 가장 어두웠을 때 비로소 반짝이는 새 별을 하나 보게 되었다.



소중한 한 사람 한 사람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았으면 하는, 작은 불씨 같은 내 소망의 마음을 다시 한번 일으켜 브런치에도 글을 쓰기로 한다.

그리고 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마련될 수 있을 때까지, 나보다 힘이 있는 곳에 계속해서 글을 써 보내어 목소리를 낼 계획이다.


난 이렇게 맘밍아웃(!)을 하기로 했다.

세상이 더 좋은 곳으로 바뀌기를 희망하면서.



It is often in the darkest skies that
we see the brightest stars.
- Richards Evans -
우리가 가장 밝은 별을 보는 것은 종종
가장 어두운 하늘에서 입니다.
- 리처드 에반스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