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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바쓰J Feb 04. 2022

마음 취약계층과 말의 칼

찔리는 건 당신이 예민아저씨, 예민아씨이기 때문일까?

<커버 이미지-한 일러스트 페어에서 구입한 엽서. Copyright-Pringko>

Heart Attack(심장마비)이라는 단어와 칼이 꽂힌 하트 그림을 마음이 아파보고 다시 보니 ‘심장 무차별 공격’ 인것만 같다.

심장에 공격은 칼이 아닌 사랑으로만 하면 좋겠다.






남에게 좋은 말을 해주는 것은 포백(베와 비단)보다 따뜻하고, 남에게 상처 입히는 말은 포격(창으로 찌르는 것)보다도 깊다.
-순자-
좋은 말은 강한 추진력을 지니고,
폭언은 거대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좋은 마음으로 의견을 냈을지라도 관계를 송두리째 망쳐 버리거나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
사람은 늘 상대방이 틀렸다고 전제하며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한다.
자신을 피해자로 여기고 어떻게든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려는 관성이 있다.
- 황투시안, ‘인생의 변화는 말투에서 시작된다’ 중에서 -






한 직장인의 자살사고


지난 2021년 5월경, N사의 한 직원이 직장 내 괴롭힘 끝에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뉴스로 한참 떠들썩했다. 그는 나와 같은 40대 가장이었고, 내 아이보다 더 어린아이의 아버지였다.


이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구나 싶었다. 그즈음 나는 몇 주 동안 단 한 시간도 잠다운 잠을 자지 못 하고 있었다. 새로운 팀장과 1대 1 회의를 일주일 간격으로 두 번 가진 후부터였다.






여우를 피했더니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속담처럼


본사 차원의 조직개편으로 인해 2020년 1월부로 업무 성격이 전혀 다른 A팀과 우리 팀이 합쳐지게 됐다. 워낙 학력이나 나이를 안 따지는 사내 분위기이긴 했지만, 가장 나이가 어린 그쪽 팀장이 나보다도 더 나이가 많은 내 팀장과 나의 새로운 팀장이 된다고 했다. 두 사람은 같은 소속 그룹 내 동료 팀장들로 꽤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다.


그에 앞서 2019년 말 구조조정 신호탄으로 발표된 새 조직도에는 한국 구매부 0 FTE(full time equivalent; 전일 근무 노동자 수), 기타 부서에서도 여러 명이 줄어드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합쳐서 총 4명이 될 새로운 내 팀이름 옆에 3 FTE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있었다.


그 내용이 발표된 후 12월 초 어느 화요일에 (전)팀장 D는 나에게 미팅 요청을 해왔다. 단둘이 회의실에 앉자 곧 그는 우리가 A팀으로 흡수되고, 그쪽 팀장이 새로운 팀장이 될 것이며, 그럼에도 본인의 직급엔 변동이 없을 것이란 말을 했다.

이어서 다짜고짜,


“우리 둘 중에 하나가 회사를 나가야 하는데, 저는 나갈 생각이 없어요. J님 의향은 어떤지 금요일까지 알려주세요.”

 

이 무슨?!?!


나는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잠시 멍하니 할 말을 잃고 있다가 마음을 가다듬고 내 생각을 전했다. 새로운 팀에서 앞으로 어떤 생활이 펼쳐질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데, 당장 금요일까지 퇴사 의사 여부를 알려달라니 이해할 수 없다고. 말 그대로 내 ‘의향’을 묻는 거라면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지금 답하겠다-난 계속 회사를 다니겠다,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내가 단칼에 단호하게 말을 하자 그의 얼굴에선 왠지 실망과 초조함이 엿보였다. 마치 내가 조기퇴직을 원한다 할 것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사람처럼.

나는 ‘ 개의 팀이 합쳐지면서  팀장  하나가 팀장이 되면, 자리가 없어지는 사람은 누구인 거죠?’라는 머릿속 생각을 차마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그 후로 우린 한 번도 다시 대화를 나누지 않은 채 새해를 맞이했다. 예정대로 A팀과 하나가 됐고, 이제 D는 내 옆라인의 팀원이 됐다.

그리고, 인사평가 시스템에 들어가서 D가 상사로서 마지막으로 내게 준 2019년 업무 최종 평가를 확인했다. 점수는 ‘보통’으로 대부분의 직원들이 받는 중간을 받았는데, 맨 끝부분 매니저 종합평가 코멘트가 내 뒤통수를 후려쳤다.


‘You need more care about your main job.’

(‘당신은 당신의 주 업무에 더욱 신경 쓸 필요가 있다.’)


딸랑 이 한 줄이었다.


보통 년 중에 한번 그리고 한 해를 마무리하며 또 한 번, 부하직원과 직속 상사가 공식적으로 업무 평가 면담을 가지며 피드백을 나누게 된다. 함께 확인하고 동의한 내용을 기반으로 각자 평가 시스템에 최종 코멘트를 입력한다. 그것으로 직원의 1년 업무 평가가 완료되고, 수정 불가한 인사 기록으로 쌓이게 된다.


2019년 한 해는 내가 맡고 있던 0.8의 주 업무뿐 아니라 0.2의 업무에서는 본사 프로젝트까지 겹쳐 어떤 해 보다도 더 힘들었었다. 게다가 난 부서를 대표해 활동해야 하는 사내 그룹에 참여 멤버로 당첨(?!)되어, 본업에 과외까지 3년을 뛰던 차였다. 그래서 결국 보상도 받지 못하는 연차마저 다 못 쓰고 마무리했던 해였다. 그랬으니 면담 때는 나누지도 않은 내용이, 어떠한 근거도 없이 나의 1년 업무 종합 평가로 그렇게 요약된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억울했다.


그래서 나는, 내 업무 0.8을 보고 받는 D와 0.2를 보고 받는 그 위의 부서장 둘 다를 수신자로 하여 메일을 보냈다. 연말 종합평가를 그렇게 주신 이유와 근거는 무엇이고, 정말 주 업무를 신경 안 썼다면 어떤 부분 때문인지 물었다. 이해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를 추가로 코멘트해주시던가, 혹은 다른 어느 누가 보아도 납득이 될 수 있도록 내용을 수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틀이 지나도록 둘 다 답이 없었다.

내가 재차 확인을 요청하자, 부서장은 새로운 팀장을 통해 답변을 주겠다고 한 줄 답변을 보냈다. 그리고, D는 따로 추가 답변을 보냈다.


앞으로 회사에 변화가 많을 것이기에 그에 대비하고 더 신경 써야 한다는 의미로 쓴 것인데, J님이 그렇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다니 안타깝네요. 그런 이야기는 얼굴 보고 하면 좋았을 텐데, 그걸 메일로 보낸 것도 유감이네요.


‘연간 업무 평가와 피드백’에 이게 맞는 이야기인가?

그런 D의 답변에 이제 난 억울함을 넘어 화가 났다.


결국 유럽 본사에까지 연락해 알아보는 쌩난리(?!)를 피하고 싶은 그들은 나를 설득시켰다. 그냥 신년 업무 계획 부분에 정정 코멘트를 넣는 것으로 갈음하자고.

내 뭘 더 어쩌겠나. 그냥 ‘알겠습니다.’ 했다.



새 팀에서는 서로의 업무와 동료들을 파악하며 교집합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나는, 내 원래 업무와 동떨어진 또 다른 전사적 프로젝트에 투입되었고 그에 따른 추가 업무를 하게 됐다. 그리고 1년여의 기간으로 예정되어 있던 프로젝트의 팀에서 6개월 정도 일을 했을 때 내부 사정으로 프로젝트 리더가 변경되었다. 그러자 얼마 후 나를 그 프로젝트 팀에서 하차시켰다. 내 주 업무와 관련된 새로운 본사 프로젝트가 또 계획되어 있고, 그걸 내가 리딩(leading) 했으면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모든 것은 늘 그 ‘누군가들’이 먼저 결정을 했고, 나는 그저 통보받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하던 어떤 일에서 성과를 얻지도 못하고 중간에 프로젝트 팀에서 유령처럼 사라지는 사람이 되는 것 같은 허탈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직장인들은  알고 있겠지만, 회사에 충실한 ‘노동자입장에서 대부분의 경우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히 나도 회사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 일을  왔고, 이리 오라면 오고 저리 가라면 가는 세월을 지냈다. 그래서  하나를 공식적으로 0.8 0.2 쪼개어 추가로 떨어진 다른 성격의 업무들을 담당하기도 했다. 언제나 어떤 일이든지, , 알겠습니다. 그럼요, 해야죠!”라고 흔쾌히,  달지 않고 하는 것이 노동자의 미덕이었다.


합쳐진 팀에서 교집합 찾기가 계속되던 중, 새 팀장은 나를 A팀에서 원래 하던 분기별 업무에 들어가 참여해 보라고 지시했다. 전혀 감이 없는 일이라 우선 참관하는 개념으로 원 A팀의 두 친구가 진행하는 일에 함께했다. 작년까지 옆팀 동료이자 20살이나 어린 까마득한 입사 후배가 그 업무에선 선배로서 나를 가르쳤다. 나는 그야말로 신입사원의 자세로 그들이 하는 업무를 파악하려 애썼다.





회사에 필요한 사람


그로부터 열흘 후쯤 팀장은 나에게 미팅 요청을 했고, 그 팀 업무에 직접 참여해 본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업무의 내용이 너무 많이 달라 소화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또 손으로 한 땀 한 땀 뜨는 듯한 단순 매뉴얼 작업이 예상외로 너무 많아서 어떤 부분은 인턴사원 정도에게 맡겨야 적합하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솔직하게 피드백을 했다.


언젠가부터 회사에서는, 내가 ‘어떤 모양의 배터리이고 어디에 쓰도록 최적화되어있는지’는 고려하지 않고, 그냥 ‘얼마짜리 배터리인지-아무 데나 막 끼워서 사용이 가능한지’ 만이 중요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들던 차였다. 명함에 박힌 Specialist(스페셜리스트; 전문가)라는 말이 무색하게 회사는 점점 Generalist(제너럴리스트; 다방면에서 유능한 통섭형 사람)만을 원하나 싶었다. 십수 년간 뭐든 회사가 하라는 대로 다 해왔지만, 또 바뀐 새로운 조직에서 한 번쯤은 앞으로 내가 정말 주 업무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업무를 하게 되면 스스로도 동기부여가 어려울 텐데, 앞으로 나의 JD(Job Description; 직무기술)가 변경되고 그 일을 필수적으로 하게 되는 건지 궁금하다, 고 물었다.


상사의 말에 토 달지 않아야 하는 부하직원의 미덕을 거슬렀기 때문이었을까?

곧바로 그는 첫마디부터 강수를 두었다.


“J님, 그럼 당신이 회사에 필요한 사람인지 정말 많이 생각해 보셔야겠어요. 우리 팀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것 없고, D님(전 팀장) 아직 (조기 퇴직서) 싸인도 안 했어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지금 아무것도 몰라요.

그리고 이렇게 말이 나온 김에 말인데, 제가 J님 회사 생활하는 거 보면, 뭐랄까, 꼭 ‘부잣집 딸내미가 그냥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네 그렇게 보여요. 보상은 많이 받으면서.”


무차별로 날아온 예상치 못한 말들에 난 그저 어안이 벙벙했다. 모욕을 당한 기분이라 뭐라고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아무 말이 안 나왔다. 당황스러운 얼굴로 잠시 침묵하던 나는, 어떤 연유에서든 팀장님이 피드백을 주신 것이니 생각해 보겠노라고 겨우 대답을 했고 회의는 그렇게 끝났다.


자리에 돌아와 앉아 큰 숨을 한 번 내리쉬었는데, 곧 또 그가 메신저를 보냈다.


“J님, 생각 많이 해 보시고요, 또 넓고 크게 보시고 다른 일도 찾아보세요.”


?! 도대체  생각하고 무슨 일을 찾아보라는 건지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아무래도  모르겠는데, 대답을 재촉하는  깜박이는 대화창에 우선 , 알겠습니다.”라고 키보드를 쳤다.



불편함과 불쾌함을 느낀 그 미팅 후 나는 대체 뭘 생각해 보라는 건지- 정말 잘 모르겠는 걸 생각하느라, 그리고 속수무책으로 사회생활 인생 처음으로 막말 수준의 업무 태도 평가를 받은 이유를 찾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팀장은 ‘Meeting’(미팅; 회의)이라는 제목의 초대를 보냈다. 참석자는 나 하나였고, 장소는 우리 팀 자리에서 제일 멀리 떨어진 작은 방이었다.


“지난번 미팅 때 제가 생각해보라고 말씀드렸는데, 그 후로 어떠셨나 해서 다시 뵙자고 했어요. 저는 J님이 생각보다 적극적이지 않고 열정이 없다고 느꼈어요. 저렇게 나이도 어린 K님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일을 열심히 하는데… 언젠가는 새벽 4시에 메일을 보냈더라고요. 저도 과거에 그렇게 열심히 일한 적이 있었나 되돌아보게 되고. 그런데 J님은 그간 저한테 보여주신 게 없어서 잘 모르겠고, 모르니까 앞으로 같이 일을 해야 할 게 걱정돼요. 일을 잘 못 해서 회사에 피해를 주면 안 되잖아요?

전에 어떤 매니저가 부서 회의에서 이런 말씀을 했어요. ‘직원에게도 선택권이 있다.- 그것은 퇴사하는 것’이라고. 부서 사람들 다 모인 전체 회의 때 그래서 되게 충격적이었는데…J님 같이 있었을 텐데 기억 안 나세요? 거 생각해 보면 또 맞는 말이기도 하고.

아 그리고, 저는 J님과 D님 둘 다 불편해요. 개인적으로 D님과 제가 친하긴 하지만 그런 건 전혀 상관없으니 절대 오해는 마시고요. 앞으로 팀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해 J님이 많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대략 이렇게, 내가 뭐라고 항변하기 어려운 ‘생각해 보라’는 주제의 미팅이 한 시간여 계속됐다. 나는 지난번 업무 관련 피드백을 나누는 자리에서 나 개인에 대한 평가를 예상치 못 한 ‘날것’으로 받게 되어 너무 놀랐고, 지난 일주일 그걸 생각하고 소화하느라 힘들었다고 말했다. 업무에 대한 소감을 나누는 자리에서 왜 개인적으로 느낀 그런 말을 들었어야 했는지 잘 모르겠다고도 했다.

그랬더니 “매니저들한테 싫은 소리 들어본 적 없어요?” 라며 나의 근무 태도와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고, 그날의 미팅 역시 명확한 결론과 소득 없이 개운치 않게 마무리되었다.





고장나버린 나


나를 같이 일하기 쉬운 ‘무조건 복종하는 부하직원’으로 조련(!)시키려거나, 혹은 정말 내가 회사를 그만두기 바라거나 둘 중 하나로 답을 정하고 나를 대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밖에는 이해가 안 되었다. 긴 세월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다 한 대가가 고작 이런 건가 싶었다. 내게 무차별로 날아든 그 말의 칼들은 마음에 꽂혀, 불쾌감을 넘어 앞날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번졌다.


그 이후 밤이고 낮이고 내 몸과 정신은 잠들지 못했다.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릿속은 24시간 풀가동이 계속됐고, 아무리 잠을 자고 싶어도 잘 수 없었다. 식욕을 잃어 몸무게는 쭉쭉 빠지고 얼굴도 점점 상해갔다.


그런 상태가 브레이크 고장 난 폭주기관차처럼 계속되는데도 나는 언제 어디에서 멈추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점차 고장 난 시계가 안 맞게 돌아가는 듯한 상태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그 팀장은 내게, 향후 진행될 프로젝트에 대해 먼저 파악하고 팀원들에게 설명하라는 요청을 계속했다. 그때마다 또 1:1로 회의실에 마주 앉아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있고, 그는 “이제 시간이 없다. J님이 빨리 결정을 해주셔야 한다. 우리 팀 인원 정리를 못 하고 있어서 계속 팀 비용이 마이너스 나고 있다.” … 등, 팀 전체 회의도 아니고 도대체 왜 내가 혼자서 따로 불려 가 들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는 이야기들을 계속했다. 문제의 첫 미팅으로부터 석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사무실에서의 마지막 기억은 내가 팀장에게,

    하겠습니다.”

라고 말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메일을 하나 받았다.


안녕하세요 J님,
저는 J님의 회사에 대한 애정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들을 함께 잘할 수 있도록, 어려운 부분이 있으시다면 꼭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
….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이미 고장이 날대로 난 나는 결국 그 메일에 답장은 하지 못 한 채로, 8월의 어느 날 폭주기관차 엔진이 퍼져버린 듯 널브러졌다.

17년 넘은 회사 생활 처음으로 무단결근을 한 꼴이 됐고, 그날로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는 말 몇 마디에 뭘 그러느냐, 그냥 무시하면 되지. 감정은 모두 빼고 니 일만 하라, 고 했다. 회사 안에 그런 사람 하나 있으면 밖엔 백 명 있다고 무조건 버티라고도 했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요즘 같은 세상에 선을 넘어도 너무 넘었다, 녹취는 했느냐 물었다. 처음엔 그런 말들이 내게 날아들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기에 역시 생각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나를 아끼는 사람의 그 한마디에 나는 두 번째 회의를 녹취했다. 그 한 시간 분량의 녹음파일은 공증문서가 되어 나중에 산업재해 승인을 받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주었다.





마음취약계층과 말


누군가 내가 무심코 던진 말의 칼을 맞아 아팠던 사람은 없었을까를 생각한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했고, 말 한마디의 나비효과로 사람이 죽을 지경이 되는 걸 몸소 경험했다. 그렇게 말의 힘이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나 얼마나 강력한지를 다시 한번 깨닫는다.


자나 깨나 입 조심, 말조심을 해야 한다고 또 생각한다. 막 내뱉은 말 한마디가 칼이 되어 누군가의 가슴에 꽂히는 건 결코 듣는이가 예민해서가 아니다. 강한 사람도 어떤 상황에 따라서는 또 어느 문제에 있어서는 한없이 약한 ‘마음 취약계층’이 될 수 있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족들 다음 ‘밥줄’이 가장 중요한 나의 입장에서는, 그 말 몇 마디가 내 생명줄을 흔드는 것 같이 공포스럽게 느껴졌던 것처럼.

그러니 그 누군가의 한 마디 말이 포격과 같이 느껴진다면, 그건 단지 당신이 예민아저씨이고, 예민아씨여서가 아니라고, 나는 말할 수 있다.


얼마만큼의 강도이든 언제나 아픈 건 맞는 놈이지,

때리는 놈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우리, 아프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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