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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바쓰J Feb 06. 2022

금지된 기네스 세계 기록 자체 갱신의 결과

잠은 보약이 아니라 산소-물-밥이다.

<커버 이미지-1965년 랜디의 잠 안 자고 버티기 실험 장면. Copyright-Catdumb>

이 친구는 일부러 잠을 자지 않으며 실험을 했으나, 나는 잠을 자고 싶어도 못 자는 원치 않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사람이 잠을 안 자면 저절로 죽을 지경에 이른다는 결론을 내렸다.






1965년 미국의 17세 고등학생 랜디 가드너(Randy Gardner)는 264시간 즉 11일 동안 깨어있었다. 잠을 자지 않고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한 것이었다.
둘째 날 가드너의 눈은 초점을 맞출 수 없었다. 그리고, 촉각으로 사물을 구별하는 능력을 상실했다. 셋째 날 그는 변덕스러워지고 둔해졌다. 실험이 끝나갈 무렵엔 집중하기 힘들게 됐고, 단기 기억에도 문제가 생겼으며, 편집증적 증세와 환각상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드너는 장기적으로 심리적 육체적 손상을 입지 않고 회복했지만, 사람들에게 수면 부족은 호르몬 불균형 및 질병을 일으키고, 심각한 경우 사망에 이르게 한다.

- 클라우디아 아기레, ‘잠을 안 자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Claudia Aguirre, ‘What would happen if you didn’t sleep?’) 테드(TED) 애니메이션 중에서 -





불면의 무서운 결과


무단결근을 하게 된 그날 아침, 따로 살고 있는 동생이 엄마의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왔다. 당장 병원에 가자는데 나는 여전히 노트북을 켜 놓고 책상에 매달려 있었다.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아니, 하지 못 하고 있으면서.


 지금 재택근무 중인데 무슨 병원엘 ? - 가기 싫어!”


지금 되돌아보니 그렇게 고집을 부리던 나는 이미 많이 고장 난 상태였다. 스스로 알았으면서도 또 알지 못했다.

원래의 모습이 온데간데 사라진 낯선 딸, 누이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애타는 눈빛이 역력했다.


“누나, 진짜 왜 이래? 지금 상태로 일 못 해, 못 한다고! 계속 집에서 이러고 있다가 엄마랑 애까지 충격받고 문제 생기게 하고 싶어?! 응?!”


병원 안 가겠다 버티는 내게 동생은 호통을 치고, 회사 노트북을 빼앗아 치워 버렸다. 난생처음 만난 상황이 당황스럽고, 누이가 그런 지경이 된 것에 안타까운 마음이 컸을 테지. 또 한편 두렵기도 하지 않았을까.


꿈쩍 않는 나를 달래기도 하고 다그치기도 하다가 동생은 내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이거 보라고, 그날 구글 메인에 뜬 기사에 나온 내용을 보여줬다.


“학교 숙제로 '잠 안 자고' 버티는 과학 실험한 17살 소년에게 생긴 충격적인 신체 변화”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https://m.insight.co.kr/amp/news/352921)


랜디의 불면 시간 최장 기록은 50년 이상 깨지지 않고 있지만 기네스 세계기록위원회는 건강상의 위험을 이유로 연속 불면 시간 세계기록 도전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는 내용으로 기사는 마무리되어 있었다.


그런데, 고작(?!) 11일인 그 친구의 기록을 나는 이미 넘을 대로 넘겨 석 달이 지나도록 하루에 채 한 시간도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신기록을 자체 달성중이었다.


불면은 식욕을 싹 사라지게 했고 몸무게가 10킬로 가까이 줄었다. 거의 매일 하던 운동도, 가까운 친구들과의 연락도, 사무실 친한 동료들과 어울리던 것도… 그 어떤 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새벽 5시 30분에 몸을 일으켜 샤워를 하고, 이른 출근을 했다. 거의 매일 저녁식사 시간 전에 집에 돌아오던 퇴근은 점점 늦어졌다. 난 어둠이 내린 후에도 한참 사무실에 앉아있다, 가족들이 어디냐고 전화가 오는 오밤중이 되어서야 노트북을 접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에 앉아 눈을 감고 잠깐 졸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아무래 애써봐도 그러지를 못했다.    



당장 해야 하는 회사일에 매달려 있긴 했으나 점점 능률은 떨어졌다.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나의 괴로움을 감추려 했지만, 점차 생기와 미소를 잃고 말도 잃은 내 얼굴에는 깊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엄마는 처음엔 그냥 회사 일이 너무 바빠져서 그런가 보다고만 생각하셨단다. 그러다 점점 상해 가는 내 꼴을 보다 못해, 우선 가정의학과나 내과라도 가서 수면제를 받아 잠을 좀 자 보라고 성화를 대셨다. 아주 오래전이지만 엄마는 결혼 전에 간호사를 하셨고, 청소년 상담 봉사도 하셨던 터라 결국 내 변화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채셨던 거다. 그런 엄마 말을 얼른 안 듣고 나는 하루 이틀 사흘... 또 며칠을 까먹었다. 그 끝에 어느 날 나는 업무와 일상에서 거의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는-처음 보는 나를 마주했다.

불면증을 뭉개고 뭉갠 어느새 그렇게 모습과 마음 모두 스스로에게 조차 생경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문제의 심각함을 자각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괴로움에 잠식된 마음은 언젠가부터 불쑥불쑥 ‘죽음’을 생각했다. 나의 몸과 마음 상태 모두 그 자체로 괴로움이었다. 그래서 다 싫고 다 됐고, 단지 이 괴로움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러자 안방 욕실 옆 파우더룸을 지날 때마다 불현듯 헤어드라이어 줄에 눈이 갔다. 그러다 욕실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욕조 쪽 덧문 쇠기둥에 그 줄을 매는 상상으로 이어졌다. 욕실에 들어가서는, 수년 전 욕조에 빠져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던 90년대 팝의 여왕 '휘트니 휴스턴'의 사망 기사가 떠오르기도 했다.


', 도대체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싶으면서도, 나는 모두에게  상태를 너무 오래 (?!) 숨겼던 것이었다. 식구들과 거실에서, 식탁에서 태연하게 둘러앉아 있다가도 혼자 아무도 없는데서는 밀려드는 불안감으로 눕지도 앉지도 못하고 계속  귀퉁이에 서서 있었다.  


늘 바라보기도 아깝고 고마운 나의 엄마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새끼를 앞에 두고도, 갑자기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순간들이 생겼다. 그만큼 내 마음속 혼자만의 고통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고 있었던 것 같다. 최선을 다해 괜찮은 척을 했을 뿐.  





생애 첫 정신건강의학과 방문


더는 볼 수 없어 엄마와 동생이 작정을 한 그날, 결국 나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의사 선생님은 무엇을 계기로 언제부터 잠을 못 잤는지, 생활은 어떤지, 스스로 느끼는 상태는 어떤지 문진을 했다. 진료실까지 따라 들어온 엄마와 동생은 옆에서 본 나의 상태를 일렀다. 평소에 얼마나 건강하고 규칙적으로 운동도 하며 지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일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운동 아뇨, J님은 지금 아무것도 필요 없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일단 ‘먹고, 자고’ 이거부터 해야 돼요!”


선생님은 입원을 권유했다. 그러는데도 난 수면제니 안정제니 하는 약들은 먹기 꺼려진다 말했다. 그런 나에게 선생님은 당장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라며, 시간 맞춰 약을 꼭 먹을 것을 당부했다. 어쩌면 정말 아이의 '엄마'라서 그 정신력으로 이제까지 이만큼 버텼지 않았겠냐 했다.


그날은 입원실에 자리가 없어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약을 먹고 3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몇 시간 쭉 잠이라는 걸 잤다. 괴로운 마음은 변함없었지만 쏟아져 나올 것 같던 눈의 피로는 조금씩 가셨다.


동생은 나 대신 회사에 가서 병가를 요청했다. 그리고 2주 후가 되어서야 병원에서 입원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막상 병원에 가려니 난 그깟 잠 못 자는 문제로 입원하기 싫다는 생각에 어린아이처럼 안 가겠다 고집을 부렸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냥 잠시 회사도 집도 다 잊고 편하게 푹 쉬고 온다 생각하라며 나를 설득하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비공식 기네스 기록을 세운 후


나는 그렇게 난생처음 마음의 병으로 입원을 했다.

 

입원 수속 첫 단계로 체온, 혈압을 잰 간호사 선생님이 깜짝 놀라더니 급히 약부터 한 알 내밀었다. 이미 170 넘는 혈압에, 정말 어디가 터져서 실려 오셨음 어쩔 뻔했냐고 탄식을 했다. 진짜 다행이라고.

나는 마음뿐 아니라 몸도 큰일 날 뻔한 상태였던 거다.


나도 모르게, '금지된 기네스 세계기록을 자체 달성하고 갱신한 결과'는 그토록 무서웠다.

알고 보니 잠은 보약이 아니고, 산소고 물이고 밥이었다. 안 자면 대형사고가 나는 거였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진정 챔피언이라고 했던가? -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그대가 강할지라도 절대 자신과 싸우지 말아야 할 아니, 싸우려 들어서는 안 되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미련하게 견디다가 적시를 놓쳐버린 이 사람이 말한다.


"잠 좀 못 잔다고 죽겠어?" 

“응, 죽을 수 있다."


"죽도록 일하면?"

“정말, 죽기도 한다."   




*그대여, 힘들고 아프면 제발 주변에 광고를 부탁한다. 씩씩하게(!) 혼자 참지 말고 꼭 도움을 요청하자.


https://youtu.be/dqONk48l5vY

<TED Ed -  수면 박탈(부족)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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