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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바쓰J Feb 08. 2022

말로만 듣던 그 ‘하얀 집’

저, 잠자러 왔어요.

<커버 이미지-국내 한 호텔의 복도. 온통 새하얀 통로가 인상적이어서 사진을 찍어뒀었다.>

살다살다 내가 그 ‘하얀 집’에 가보게 될 줄이야. 어쩐지 공포스러운 곳이라 생각했던 그곳은 무서운 곳이 아니라 안전한 곳이었다. 그리고 그리 하얀 곳도 아니었다.





보호병동 신입환자


가족들의 강력한 설득과 회유가 있긴 했지만, 결국 나는 재활센터 ‘보호병동 (폐쇄병동)’에 내 발로 걸어 들어갔다.


언덕 위도 아니고 그다지 하얀 곳도 아니었지만, 옛날부터 은어처럼 칭하던-말로만 듣던 그 ‘언덕 위의 하얀 집’에 타의 반 자의 반 머무르기로 한 것이다. 그 기간이 얼마나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간호사님이 기본검사를 마친 뒤 담당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몇 가지 문진 후 나는 하루에 4시간 핸드폰 사용이 가능함을 알려주셨다. 덧붙여 혹시 누구와 친해지더라도 환자들 간에 연락처를 나누는 것은 절대 금지라고 당부했다. 추측하건데 아마도 환자들이 입원과 치료 후 완쾌되면 좋겠지만, 아닐 경우 자칫 서로 연락을 하면서 동반자살 등과 같은 다른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을 우려해서가 아닐까 싶었다.


난 대기자였어서 병실을 선택할 수 없이 바로 8인실로 들어가게 됐다. 내 아이 또래 10대 한 명, 20대로 보이는 친구들 두 명, 나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겠다 싶은 중년의 여인들 둘, 그리고 우리 엄마 나이쯤으로 보이는 두 분이 계셨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자 모두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런데 사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더 큰 호기심이 들었다.


‘겉보기에 모든 게 멀쩡한(!) 이 사람들은 대체 왜 여기에 들어와 있을까?’


간호사님이 내 자리로 와서 소지품 검사를 했다. 입고 온 바지, 끈 달린 운동화, 이불을 싸들고 온 보자기, 핸드폰 충전기 등등 뭐든 ‘줄’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는 것들과 비닐봉지, 캔음료도 퇴원 시 돌려준다며 모두 가져갔다. 그리고 심리검사를 위한 갖가지 종류의 검사지를 한 뭉치 잔뜩 주고 돌아섰다.


환자복을 입곤 낯설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몸과 마음을 둘 곳 없어, 침대에 걸터앉아 아직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검사지들만 뒤적였다.


곧 어머님 한 분이 내게 다가오셔서  말을 건네셨다.


“각시는 여기 왜 왔어? 젊은 각시가.”


“아 저… 회사에서 스트레스받아 잠을 못 자고 병이 나서… 잠자러 왔어요.. 어머님은요?”


“이그, 직장이 얼마나 그랬길래..?! 쯧쯧.

나는? 아 한날 갑자기 막 밥을 못 먹겠고, 꼬꾸라질 것 같아서… 사람 죽겄는디 심장 초음파고 MRI고 다 찍어봐도 원인을 못 찾응께 이리로 보내더라고. 멀리 전라도에서 여그까지. 첨엔 나도 정신과가 웬 말이여~ 무섭고 싫다고, 안 가겠다고 혔지. 근디 와서 보니께 하나도 걱정할 것이 아니더라고. 전부 좋은 사람들이고 다덜 아파서 치료받으러 온 거고. 이상하고 무서운 사람들은 없더라고~ 저 옆방 3인실에 아줌마도 전라도 사람인디, 코로나 백신 맞고 갑자기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 같고 밥을 못 먹었댜. 나랑 똑같이 몸에는 이상이 없다고 결국 여기로 들어왔당겨. 처음 며칠은 죽겄더니 이제 다 살아나 사람 꼴이 되았어야. 그랑께 각시도 마음 편히 먹어. 나쁜 생각은 하덜 말고, 의사 선상님이 시키는 대로 무조건 잘 혀고. 어여 나서 밖에 나가서 잘 살아야제. 사람은 다 살게 되어있응께 아무 걱정하덜 말고. 무조건 잘 먹고, 잘 자고!”


신입(!) 환자의 긴장을 풀어주려 먼저 손 내밀어 주신 그분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동생이 사들려 주고 간 간식을 나눠 드렸다.






정신건강의학과 입원실에서의 첫 밤


 9시가 되자 간호사  분과 남자 조무사  분이 조를 이뤄 환자들의 취침  약을 가지고 들어오셨다. 입원을 하니 당장 처방된 약이 늘어났다. 의사 선생님이 입원해서는 맞는 약을 찾는 과정과 함께 약을  강하게 쓰게  거란 말씀을 했던  생각났다.


한 명 한 명 이름을 확인하면서 약을 건네주고 그 둘이 앞에 서서, 약을 정말 삼켰는지까지 확인을 한 후에야 다음 환자에게로 넘어갔다.

아 뭘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을 한 순간, 옆 자리 어머님이 받아 든 약을 휴지통으로 휙 던져버렸다. 간호사는 이러시면 안 된다, 약을 드셔야 한다며 다시 새 약을 가져와 설득했다. 알고 보니 아직 60대로 호호 할머니도 아니신데, 일찍 치매 증상이 나타나 입원하신 거라고 했다. 결국 그분이 약을 드시고 입을 벌려 혀 아래위 다 검사를 받고서야 우리 병실의 불이 꺼졌다.


더 많은 약을 먹고도 낯선 환경과 긴장감 때문인지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이놈의(!) 예민아씨는 귀도 예민해 그마저도 다른 사람들의 코골이와 잠꼬대까지 다 들으며 선잠을 잤다.


다음날 이른 아침식사가 병실을 깨웠지만 여전히 나는 전혀 식욕이 없었다. 밥상을 앞에 두고 그냥 앉아있는 나를 보고, 병실에 모든 어른들이 입을 모아 채근했다. 억지로라도 좀 먹으라고, 밥 먹어야 약도 먹고, 그래야 산다고.


취침 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아침 약을 먹어야 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건네받은 혈압약과 항우울제 한 알을 삼켰다.


전문가의 진단과 권고로 입원을 하긴 했는데, 벌써 답답했다. 이제 겨우 하룻밤 자고 일어났구만.





원래의 나와 낯선 나 사이에 서서


숙제처럼 쌓여있는 심리검사지들을 작성해야 하는데,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한 검사당 십여분 안에 쓱쓱 답을 채울 수 있을 문항들이었다. 평생 익숙했던-‘내가 아는 원래의 나’와 어느 순간 변해버린 ‘낯선 나’ 사이에서 도대체 누구의 모습과 생각을 골라야 할지 몰랐다. 가령,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는 가기 싫다.
파티에서 춤을 추는 것을 좋아한다.
어떤 일을 주어진 시간 안에 하기 어렵다.
나만 불행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나는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되도록 집 밖을 나서지 않으려고 한다.
벌을 받고 있는 것 같다.

.

.

등등과 같은 문항들은 원래의 나라면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예, 아니오를 답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쉬운 문제들을 두고, 간격이 너무 벌어진 스스로에 대한 괴리감으로 한참을 고민했다. 공부를  하나도 안 한 학생이 수능을 치르는 듯, 몇 문항 읽다 답을 못 적고 그만두고 다시 하고를 반복했다. 그게 뭐라고 시간만 흐르고 계속 제자리였다. 기가 막혔다.


밤낮으로 검사지에 매달려서 한숨을 푹푹 쉬니, 옆에 치매 어머님이 걱정스러운 듯 나를 바라보시곤 초코파이를 하나 주셨다.


“아가씨 그러다 병나겠데이~ 이거 묵고, 쉬 가며 하소.”


낼모레 드디어 퇴원한다는 20대 아가씨도 한마디 거들었다.


“언니, 이거 빨리 하셔야 검사 결과 가지고 임상심리사쌤이랑 면담할 수 있어요. 그때 또 다른 많은 검사들을 하게 될 텐데… 빨리 하실수록 퇴원을 빨리 할 수 있다 생각하심 돼요.”


결국 꼬박 일주일이나 걸려 검사지들을 제출했다. 어느 순간 스스로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소프트웨어’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이 느껴졌다. 정말 머릿속 어딘가가 타들어갔나, ‘하드웨어’ 어딘가가 고장 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선생님 면담 때 나의 느낌을 말씀드렸더니, 우울이 깊으면 심한 무기력증 뿐 아니라 실제로 인지나 사고가 느려진다고 설명해 주셨다. 절대로 치료를 조급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도. 그래도 걱정이니 안심할 수 있게 머리 MRI를 찍어보자 했다.



입원한 지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마치 미로 속에 갇혀 오도 가도 못 하는 실험 쥐가 된 것처럼 인생이 캄캄한 느낌은 여전히 변함없었다. 여기서나 저기서나 괴로움은 매 한 가지임에 절망감이 들었다. 그런데도 매일 엄마와 딸내미 그리고 동생과의 통화 땐 한 옥타브 올린 목소리를 냈다.


“응~ 나 잘 있어!”


하지만 내 마음은 쉬지 않고 질문했다.


‘아 나 이거, 진짜 치료가 되기는 하는 걸까?’


하얀 집에서의 내 상태는 아직 온통 시커멓기만 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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