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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바쓰J Feb 10. 2022

깊은 동굴로 들어간 I 형 사교적인 외교관

다시, 맥주 한 잔 시원하게 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커버 이미지-몇년 전 좋아하는 맥주집에서 친구와 건배샷>

지금은 내 작은 소망이 된 시원한 맥주 한 잔. 곧 그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자살사고, 수동적 자살사고


난생처음 MRI 검사를 하려니 그것조차 긴장이 됐다. 뭐든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건 두려움이 앞서기 마련이니까. 쿵쾅대는 가슴을 달래려 심호흡을 했다. 귀마개를 하고 누워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검사가 시작되자 마치 외계에서 보내는 신호 같은 알 수 없는 굉음들이 15분여 내내 반복됐다.

잘 지나갔다. 그래, 막상 해 보면 또 별 거 아니네 싶었다.


꾸역꾸역   밀린 숙제 같던 심리검사 결과를 가지고 드디어 임상심리사 선생님과 마주 앉았다. 언어, 숫자, 공간감각, 감정 반응 등을 확인하기 위한 듯한 인지-지능 검사들을 했다. 그리고 그림 그리기, 카드 고르기  다른 여러 심리검사도 추가로 진행됐다.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역시나, ‘대체 내가  이렇게 헤매고 있을까?’ 싶은 순간들에 자주 부딪혔다. 무슨 침팬지가 지능 테스트를 치르는 것처럼. 그러자니 정말 바보가 되었나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J님, 자살에 대한 생각은 단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다는 것에 한정되지 않아요. 만일 지금 이 건물에 불이 난다면 빨리 대피하고 싶으신가요? (-아니요..) 혹은 교통사고가 나서 차에 치여버리면 좋겠다, 이런 마음은요? (-네..) 이런 생각들은 모두 ‘수동적 자살사고’라고 해서 자살과 다를 바 없이 위험한 마음 상태라고 봐야 해요. 그리고 제가 가장 걱정되는 건, J님이 퇴원 후 혹시 좀 괜찮아진 것 같다고 임의로 약을 중단하실까 봐. 이게 정말 위험하거든요. 입원 전보다 더 안 좋은 상태가 될 수 있으니 절대 그러면 안 된다는 걸 기억해 주시면 좋겠어요.”


MRI 검사 결과 나의 뇌에 기능적인 문제는 없었다. 인지-지능 검사 역시 정상 범주였다. 언어기능은 평균을 웃돌았다. 막막한 스스로의 느낌 때문에 의심했던 ‘하드웨어’ 고장은 아님이 밝혀졌다. 일단은 다행이구나, 안도감이 들었다.


그렇게 또 한 고개를 넘었다.





‘없음’으로 치닫은 내 모든 것


이전에 회사 교육이나 워크숍을 통해 몇 차례 성격유형 검사를 했었다. 나는 매번 DISC 검사 ‘I형(사교형)’, MBTI ‘사교적 외교관’ 형으로 사교적이고 외향적인 색깔이 선명한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언제나 우울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기도 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사십여 년의 삶을 살아오면서, 결코 큰 굴곡과 시련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늘 특유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잘 지나왔다. 혹 넘어지더라도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걷고, 뛰는 훌륭한 회복탄력성을 가졌다고 자신하고 살아왔다.  


짧지만 참 힘겨웠던 결혼생활과 그보다 더 어려웠던 이혼 과정의 진흙탕 속을 뒹굴었지만, 단 한 번도 와르르 다 무너진 적은 없었다. 시련을 만나면 그건 더 행복하기 위해,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그리고 더 강건해지기 위해 필수로 지나야 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이겨냈었다.


우울증에 걸린 기분은 어떤 거야?”

죽고 싶다는 생각이 도대체  들어? 아니 사람이 어떻게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가 있어?”


가끔 우울감으로 너무 힘들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뉴스에서 자살 사고 소식이 들려오면 나는 늘 이와 같은 의문이 들곤 했다. 그리고,


아이고 ,  죽을 용기와 힘으로  것이지!"


라고 말하곤 했었다.  


그런데 상상도 못 하던 상태를 몸소 겪은 바로 내가 느낀 ‘우울’은, 내 몸과 삶의 모든 것들이 ‘있음’에서 ‘없음’의 상태가 되는 급행열차 같았다. 나의 경우 극심한 불면증이 먼저 있었기에 그것이 방아쇠가 되어 우울과 불안이 나타났고, 순식간에 나를 온통 덮쳐버린 듯 했다. 한편, 어떤 이유로든 고민과 어려움을 홀로 오래 안고 있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우울로 전이되는 경우는, 어쩌면 완행열차 같이 느리게 우울증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애를 써도 마음과는 달리 나는 날이 갈수록 점점 변해갔다. 잠이 없음-식욕이 없음-신체 활동이 없음-인간관계 욕구가 없음-그 어떤 것에 대한 의욕도 없음-희로애락의 감정이 없음-삶에 대한 희망이 없음… 그렇게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이 '없음'상태로 치닫고 있었다. 그렇게 되니 일부러 애써 죽음을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몸이 죽음에 가까워지는 듯한 상태를 보였다. 이를테면 살이 빠지고, 생리가 멈추고, 혈압이 오르고, 심장이 두근대고, 호흡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잠들지 못한 안구는 실핏줄이 터지고, 눈 밑은 경련으로 종일 파르르 떨렸다.

마음의 병 때문에 죽을 작정을 하고 죽는 게 아니라, 그런 상태에서 한 순간 삐끗하면 진짜 죽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나타난 그런 모든 징후들이 얼마나 위중한 것인지 미처 몰랐다. 사교적인 걸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이 모든 걸 다 끊은 채 깊고 어두운 동굴로 들어가 틀어박힌 것이, 얼마나 심각한 싸인인지 결국 곁에 있던 사람들도 잘 몰랐다는 거다. 알았어도 나 스스로나 주변 사람들이나 바로 어떤 조치를 취할지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는 게 더 문제였다.





원초적 본능의 중요성


심리검사 중 우울과 불안에 대한 검사에서 반드시 나오는 내용이 있다.


잠을 잘 자는지, 식욕은 어떤지, 성욕에 변화는 있는지…이런 아주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욕구에 대해 여러 가지 자세한 질문을 한다. 산 사람이면 응당 가지고 있고, 필수적으로 해야 하며, 조금 더 추구하기 위해 힘쓰는 기본적인 것들에 대한 욕구가, 바로 우리가 ‘잘 살아있음’의 증거다. 당연하지만 이러한 ‘원초적 본능’들이 삶의 가장 첫 번째이자 중요한 사항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매일 오전 회진 시, 선생님들 마다 하나같이 자기 담당 환자에게 제일 먼저 묻는다.


“잠은 잘 주무셨어요?”


그냥 아침 인사가 아닌 것이다. 식욕은 어떤지, 기분은 어떤지와 같은 기본적인 질문에 더해 간호사님들은 실제로 환자들의 식사량이 얼마나 되는지 매 끼 먹고 난 식판을 들여다 보고 기록한다. 아울러 신생아 때나 확인하던 쉬와 응가를 몇 번이나 했는지도 매일 하루를 마감할 때마다 물어보고 기록한다.


잠을  자서 그렇게 힘들  가까운 의원에서 수면제라도 받고 잠부터  잤다면, 내가 이렇게 까지는  됐을 텐데…’


이게 내가 입원하고 가장 크게 후회한 것이었다.  



누구든 만일 수면, 음식, 성에 대한 자신의 욕구 정도가 너무 급격히 변화한다면, 우선 위험 징후로 여기고 그에 대한 해결부터 하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해드리고 싶다. 일상인 것들의 이상은 정말로 중요한 신호이니 무시하면 안 된다고도.


‘우선 무조건 먹고, 자고부터 해야 한다.’를 진단받았던 나는 입원한 동안 정말로 조금씩 더 자게 됐고, 더 잘 먹게 됐다. 뭘 먹어도 모래알을 씹는 것 같아 병실에 있는 사람들의 좀 먹으라는 잔소리를 한 몸에 받았었는데. 2주가 다 될 무렵엔 어느새 간식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시 나의 본능이 일어나기 시작한 거다.


밥도 못 먹던 그 시간들을 지나 지금은 작은 새 소망(?!)이 하나 생겼다. 바로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즐거운 자리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 들이켜는 것이다.


언제쯤 나는 즐겁고 화려했던(!) 사교의 장으로 돌아가 다시, 맥주 한 잔을 할 수 있게 될까?

그 날이 곧 올까?


<I형 사교적인 외교관의 활발한 외교(?!)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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