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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지감자 May 05. 2022

쌓여가는 논문 산을 바라보며

이거 다 읽으면... 논문 내는 거다?

논문을 읽는 것은 연구실에서 할 수 있는 일 중 제일 좋아하는 일이다. 논문을 많이 읽게 된 이유는 8할이 진행하고 있는 연구 때문이다. 현재 내가 도맡아서 하고 있는 연구 주제는 우리 연구실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분야였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선배가 없다는 말이다. 반쯤 맨 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시작했던 내 연구는 도저히 논문을 읽지 않고는 진행이 불가능했다.

그때부터였을까요? 제가 강박적으로 논문을 다운로드하기 시작했던 건...






논문을 읽을 때는 어떤 방식으로든 현재 하고 있는 연구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고 읽는다.


연구 초기에는 실험 설계를 위해서 논문을 읽되, 주로 method 위주 발췌독을 했다.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에 method만 쏙 빨아먹고 등 뒤로 던져버리곤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때 던져버린 논문들 중에선 아직도 결론이 어떻게 났는지 정확히 모르는 연구들도 많다.

그로부터 꽤 시간이 지난 지금, 실험 방법이 완전히 정착한 이제는 한 논문을 고르면 인트로부터 고찰까지 빠짐없이 정독한다. 어떤 목적으로 연구를 설계했고, 그래서 나온 결론으로부터 어떤 의의를 이끌어냈는지를 더 중요하게 보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연구 결과의 해석이 관건이 되는 현시점에서는 어떻게 다른 사람들은 결과를 분석하고 고찰을 썼는지 눈에 불을 켜고 보고 있다.


그러다 보면 논문의 reference를 타고 가게 된다. 이렇게 고찰을 쓴 근거가 무엇인지, 주석을 타고 타고 가다 보면 한 논문을 다 읽은 뒤에는 추가로 읽어야 할 논문들이 평균 네다섯 개는 더 생기기 마련이다. 이 논문 리스트는 고이 컴퓨터에 다운로드하여 <연구 참고자료> 폴더에 모셔놓는다.


이런 식으로 논문 읽기를 반복하다 보면 <연구 참고자료> 폴더에 모셔둔 읽어야 할 논문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지금 세어 보니까 약 400개 정도 되는 것 같다.) 언젠가는 다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논문 산"이라고 표현한 진정한 이유는 내가 논문은 무조건 프린트해서 읽기 때문이다.

이 고도화된 디지털 사회에 종이 논문이라니!

하지만 연구분야를 떠나면 나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둘 중 아날로그에 더 가까운 인간이고, 공부 스타일도 공부자료를 무조건 프린트하고 써야만 진정한 공부를 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논문도 각 잡고 읽을 시에는 무조건 인쇄해서 펜으로 메모하면서, 형광펜으로 죽죽 그어가면서 읽어야만 한다.


논문은 한번 읽어서 땡이 아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내용이 보이는 게 논문이다! 또, 사람의 기억이 유한하기 때문에 연구하다가 헷갈리는 일이 생기면 예전에 읽었던 논문을 다시 뒤져서 읽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읽었던 논문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프린트했다고 논문을 다 읽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발췌독하는 경우도 있고, 읽다 보면 내 연구와 관련성이 별로 없기도 (이건 abstract 꼼꼼하게 안 읽은 내 잘못이다) 하니까. 그리고 논문이 너무 어렵거나 지루하면 잠깐 놔뒀다가 다시 읽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해서 인쇄해놓은 논문들이 점점 내 책상 위에서 산을 이루고 있다. 아직은 동산 수준이지만 언제 남산만 하게 불어날지 모르는 일이다. 다 읽은 논문은 사물함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그래도 여전히 좀 부담스러운 두께로 쌓여있다. 몇 개 정리해야 하나 해서 들춰봤지만 아무것도 버릴 수 없었다. 다 필요해서 있는 논문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책상을 논문님한테 치여 남들보다 좁게 쓰고 있다.

(동료들이 지나가면서 어째 산이 점점 높아진다면서 픽픽 웃고 간다)



그래도 좋다. 사랑해 논문들아.

나를 부디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줘

그리고 이 논문 산을 다 읽으면... 우리... 논문 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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