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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지감자 Jul 06. 2023

대학원생 인터뷰 #8

대학원 생활이란 연구실과 결혼하는 것

보통 사람을 훌쩍 뛰어넘게 호기심이 많고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매우 많은 친구와 만났다. 그는 누가 봐도 학자의 길을 걸을 거라고 생각했던 인물이었다. 다른 대학원에 진학하여 자주 보기 어려운 그와 아주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돈이 없어 학식을 먹은 뒤 학교 어딘가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감자: 가명을 뭐로 하시겠어요?

???: 스타티스요.

감자: 무슨 뜻인가요?

스타티스: 제가 전연인에게 준 꽃입니다. 꽃말은 영원한 사랑...

감자: 정말 염병을 하는구나.


감자: 현재 직업이 어떻게 되세요?

스타티스: 저는 석박통합 3학기 째입니다. 대학원생이면서 과외도 하고, 학원 문제 검토도 하고, 고등학교나 대학교 강연도 뛰고, 사람들 질문 답변하면서 돈도 벌어먹고 삽니다.


감자: 대학원 전공은 무엇인가요? 간단한 소개 부탁드려요!

스타티스: 전공 이름은 의과학과고요, 영어로는 biomedical science입니다. 소속은 의과대학이고 기초연구를 보통 합니다. 의사가 되는 전공이 아닌데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합니다.


감자: 전공을 선택한 계기가 있나요?

스타티스: 원래 피트(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와 미트(의학교육입문검사) 준비를 했는데 떨어지고 대학원으로 도망갔어요. 사실 피트, 미트는 다른 사람 권유로 했고 저는 처음부터 과학자가 꿈이었어요. 지금까지 4번의 학부연구생을 했는데 그중 마지막 연구실로 갔습니다. 저는 처음에 돈이 많다고 추천을 받아 들어왔습니다. 와보니 랩 규모가 컸어요. 자대에서 인턴 했을 때는 연구실이 좁아서 되게 갑갑했는데 여기는 한 층 전체가 연구실이라 갑갑하지 않고 뷰도 탁 트여있어서 좋았습니다. 교수님께서도 화내시는 일이 없고, 학생들에게 말도 조심히 하시고, 인신공격도 없으세요. 발표를 제대로 준비해오지 않는 일이 있어도 문제점만 지적해 주시거나 다른 사람들은 이럴 때 어떻게 대응하시는지 알려주셨어요. 그래서 돈 많고, 뷰 좋고, 위치 좋고, 교수님 좋은 이곳을 선택했습니다.

감자: 뭐 거의 집 구하시는 거 같네요?

스타티스: 대학원 생활이 랩과 결혼한다는 생각으로 다니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점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막상 분야도 나름 괜찮았어요. 지금 굉장히 활발하게 연구 중인 분야라서요. 저는 분야는 나중에 정이 들면 될 거라 생각해서 후순위에 두었습니다. 제일 중요하게 봤던 게 돈이었어요. 왜냐면 그전에 되게 궁핍한 연구실에서 인턴을 했기 때문에... 그러면 행복하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행복한 곳으로 왔습니다.


감자: 구체적으로 어떤 연구를 진행하고 있나요?

스타티스: 우리가 당뇨병을 해결하기 위해서 인슐린을 동물에게서 추출했잖아요. 그러면 비용도 많이 들고 생산량도 적단 말이죠. 그래서 인슐린 유전자를 재조합해서 박테리아에서 대량생산해서 비용을 줄였습니다. 저는 표적항암치료제도 이렇게 대장균에게서 발현시켜서 대량생산하고 정제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감자: 와우. 돈 되는 연구를 하고 있네요?

스타티스: 그렇죠. 그래서 교수님께서는 나중에 회사를 차리라고 말씀하셨어요. 원래는 학계에 남아있는 게 꿈이었는데...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제가 개발한 항체가 두 개 있는데 나중에 특허 내려고요.

감자: 순수학문을 엄청 좋아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공학의 길로 가버리셨네요.

스타티스: 그래서 저도 정체성에 혼란이 왔었는데요. 제 순수학문에 대한 사랑은 그래서 다른 곳으로 풀고 있습니다. 과외나 강연, 질의응답, 오류 없는 올바른 과학 지식을 사람들에게 알린다던지. 그게 순수학문으로 돈 벌어먹고 사는 거죠.

감자: 사람 일은 알 수가 없군요.

스타티스: 지금 생각하면 순수학문으로 갔으면 힘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차라리 인더스트리로 가서 돈을 잘 버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어요.


감자: 학위과정 중 가장 좋았던 일은 무엇인가요?

스타티스: 제일 좋았던 일이 하나 있었다기보다는 어느 정도 좋았던 일이 여러 개 있었습니다. 저희는 매년 겨울에 스키장으로 학회를 갔는데 3일 내내 스키만 탔어요. 또 제가 합성한 항체가 잘 작동한다는 데이터를 얻었을 때! 저는 한 번에 그런 결과를 얻었는데, 보통 한 번에 잘 얻어지지 않거든요. 실패하면 3-6개월씩 돌아가야 하는데 저는 지금까지 잘 되고 있어서 그 사실이 행복하고요. 한 번에 한 항원에 잘 붙는 항체를 여러 개 찾아서도 행복했고요. 하나도 못 찾을 수도 있는데 말이죠. 그리고 기숙사에서 혼자 살았던 적이 있는데, 거기 외부인 출입이 허용되어서 친구들 데리고 와서 놀면 재밌죠. 또 연애할 때도 행복했어요.

감자: 소소하네요.


감자: 학위과정 중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스타티스: 저는 초반에 연구실 생활을 하면서 책 번역도 해야 했어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다 보니까 정신이 피폐해졌고, 퇴근하고 새벽 2시까지 번역하다가 조금 자고 출근하는 일이 반복되었어요. 그 와중에 사수가 저랑 안 맞는 사람이었어요. 일은 잘 가르쳐주지만 사적인 대화에서는 속상한 일이 많았습니다. 엄마 보고 싶다, 살기 싫다 생각하고 그랬는데 한 학기 정도 지난 다음에 인간관계에 변동이 있었고 그 뒤로는 회복되었습니다. 나머지는 괜찮았습니다. 다른 금전, 연애, 가족문제가 없어서 저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감자: 대학원생이 가장 중요하게 갖추어야 할 자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스타티스: 이거는 어렵네요. (고민) 끈기와 열정 같아요. 어제도 실험을 하다 보면 10에 9는 실패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연구자는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끈기를 가지고 계속 파헤쳐나가는 그런 자질을 갖추고 있어야 해요. 그런 자질이 없다고 생각하면 안 가는 게 낫습니다.


스타티스: 우리 지도교수님의 모토는 학생들을 최대한 빨리 졸업시켜서 미국으로 보내는 거라고 하셨어요. 그걸 듣고 저는 교수님 운이 정말 좋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1년에 한 번씩 절반 정도의 학생들을 미국 학회에 데려가면서 그곳이 미래에 살아가기 적합한 곳인지 봐두라고 하셨습니다.

감자: 이번에 학회 가시나요?

스타티스: 잘 모르겠네요. 열심히 해야 하는데, 이번에 유럽여행을 가서요.

감자: 연구실 생활 하고 있으신데 유럽여행 갈 시간이 있나요?

스타티스: 저 3주 여행 갑니다. 휴일이랑 연차를 끌어 썼어요. 교수님께도 허락받았습니다.

감자: 대학원 다니면서 그렇게까지 여행 가는 사람 처음 봐요.

스타티스: 교수님께서 굉장히 오픈마인드세요.


감자: 대학원 연구실 선택할 때 제일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나요?

스타티스: 이거 정말 어렵다. 이게 진짜 어렵다. 하나를 골라야 한다고? (고민) 하나를 고르되, 다른 것들을 다 포괄하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교수님입니다. 교수님을 잘 골라야 한다는 건 그 안에 분야, 복지, 급여 다 포함하는 거니까요. 교수님이 대학원의 CEO 시니까 중요합니다. 사실 저는 전체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분야, 복지, 향후진로, 졸업까지 걸리는 시간, 과제나 돈도 중요하고. 다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타티스: 원래는 석사 후에 군대 다녀왔다가 유학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복지 좋은 곳에 있다 보니까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유학 갈 생각이 사라졌어요.

감자: 열정은 아직 남아있는지?

스타티스: 연구에 대한 열정은 있죠. 학업에 대한 열정은 잘 모르겠네? 저는 이미 쌓아온 지식을 다듬고 있어요. 그런데 막 새로운 지식을 밝혀내겠다, 이런 건 없어졌어요. 지금 하고 있는 시스템과 업무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탐구해야겠다는 생각은 좀 사라졌어요.

감자: 2년 전이면 이런 말 안 했을 것 같은데요. 많이 변했네요.

스타티스: 노벨상은 포기했습니다.


감자: 대학원 과정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조언하고 싶다면?

스타티스: 대학원 오면 공부할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학부때 할 수 있는 건 학부때 하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전공서를 읽는 것 같은 거. ppt만 읽지 말고 전공서를 영어로 정독하면 좋은 것 같습니다. 대학원 오면 실험해야 하고, 논문 읽어야 하고 그러니까 공부할 시간이 없더라고요. 그리고 코딩 같은 것도 미리 배워놓으면 좋은 것 같습니다.


감자: 긴가민가 하는 사람은요?

스타티스: 그런 사람들은 내가 정말 대학원에 오고 싶은지 판단을 잘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학원생이 갖춰야 하는 성격과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부터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끈기, 열정, 성실함이 필요합니다. 방임주의적인 교수님을 만나면 나태해지기 쉽기 때문에 스케줄링을 잘하면서 잘 끌어가는 게 필요합니다.

감자: 님은 나태해졌잖아요.

스타티스: 그렇죠. 그래도 잘 살고 있어요. 아 랩노트... 언제 쓰지. 1년 밀렸어. 그런 일기를 매일 성실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자: 사실 저도 밀렸어요... (하하)

스타티스: 그리고 대학원을 가기 전에 그 대학원을 파악하는 능력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을 잘못 만나면 10년 동안 졸업 못할 수도 있는데, 좋은 곳을 가는 게 중요하니까 많은 걸 따져보고 들어가야 하는 것 같아요.


감자: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대학원 진학을 하실 건가요?

스타티스: 저는 초등학생 때부터 꿈이 과학자였기 때문에 어린 나의 꿈을 이루어주려고 대학원에 갔겠죠.


감자: 10년 후 당신의 모습은 어떨 것 같으세요?

스타티스: 졸업은 6년 내로 했으면 좋겠고. 그러니까 지금부터 4-5년 후에 했으면 좋겠고. 1년은 군대 가고. 만약 대학원에 다니면서 창업을 하지 않으면 미국으로 포닥을 가고 싶어요. 근데 연애를 해서 안정적인 관계가 형성이 되면 결혼할 수도 있고. 포닥을 한 3년 하고 교수가 되고 CEO가 되면 좋겠네요. 일단 지금은 사원이 되기는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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