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 정목 스님
결혼 전 이해인 스님의 에세이를 읽었던 기억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 책이다. 두 책 모두 조용하지만 선명한 선이 느껴지는 책들이다. 종교를 생의 배경으로 살아가는 삶을 통해 깨달은 진리들을 책에 아름다운 수를 놓듯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놓으셨다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번뇌 속에서 공기와 물처럼 당연히 주어지는 안락한 생활에 길들여진 우리는 아주 작고 사소한 불편함이나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작은 갈등으로 쉽게 흔들린다. 누군가 이야기한 것처럼 돌아갈 집이 있고 못 먹을 걱정이 없으며 지갑에 만원만 있어도 당신의 삶은 세계 상위 30% 이내에 드는 삶을 누리고 있단다.
행복이라는 개념은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인 것 같다. 뭐가 하나 더 있으면 행복한 게 아니라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 하나만 빼도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헬렌 켈러가 말하는 것처럼 눈이 있어도 제대로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내 눈으로 세상을 보고 책을 볼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인 것이다.
정목 스님의 책은 따듯하다. 아마 마음이 심난할 때 아무 페이지든 훌쩍 열어서 읽어도 좋을 듯한 책이다. 생각이라는 공간 속에 수많은 근심과 걱정들 때로는 주위의 환경으로 불붙듯이 생기는 감정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라고 한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마음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울타리 밖에서 마음을 지켜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일어나는 감정을 억누르기보다는 그 감정에 이름을 붙여 준다면 바다가의 파도처럼 자연스럽게 왔다가 자연스럽게 소멸한다고 한다.
생각이라는 공간을 잘 관리해야 한다. 생각이라는 공간에서 말이 만들어져 나오기에 가끔씩 쏟아내고 난 말 때문에 후회할 일이 적어지기 때문이리라. 속도에 길들여진 우리 일상에 느린 달팽이의 삶도 우주의 시계에서는 결코 늦지 않다는 말을 되새겨 보게 된다. 강물이 느리다고 등 떠밀지 말 것이며 해마다 피어나는 꽃들에게서도 배운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보살펴 주지 않아도 저 자체로 아름답게 피었다가 소리 없이 지는 꽃들에게서 겸손과 침묵의 아름 다움을 배우게 된다'라는 글이 아름답다.
주의의 모든 것들에게 그 존재를 아끼고 사랑해줄 때 우리는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고 한다.
'당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을 붓다로 여기며 상대해 보세요. 그들은 정말 붓다가 되어 당신을 돕게 될 것입니다. 행복한 그 상황을 음미해 보세요'라는 말이 인상 깊다. 여기서 붓다란 부처님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서의 붓다가 아닌 완전한 존재라는 의미인 보통 명사로서의 붓다를 이야기한다. 우리 모두는 이미 완전한 존재라는 것이다. 타인 또한 나처럼 삶을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준다면 인간관계에서 배려와 자비가 자연스럽게 생긴다고 하신다.
잠들기 전 자신의 행동과 말의 태도가 어땠는지 점검해 보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하신다. 슈 페르트는 잠들기 전에 안경을 끼고 자다가 악상이 떠오르면 자다가도 일어나 곡을 썼다고 한다. 그만큼 잠들기 전 의식이 무의식의 세계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정목 스님의 글 중 인생에 대해 심도 있게 생각해 볼 질문을 만났다.
'편하게 살고 싶은 사람과 인생을 완전하게 살고 싶은 사람'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당연히 완전한 인생을 살고 싶다. 완전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나만의 완전성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스님의 책 속에서는 먼저 자기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에 해답을 찾아야 하는 삶이라고 한다. 삶의 완전성에 대해서는 달팽이처럼 빠르지 않게 생각해야겠다. 깊은 물의 소리 내지 않고 흐를 수 있는 깊이와 겸손을 배워야 할 것이며, 존재 자체로 타인에게 기쁨을 주는 꽃을 닮고 싶다. 완전한 삶에 대한 스스로의 답을 찾아가야 하는 숙제를 받은 기분이다.
어느 누구도 말해 주지 않는다. 인생이라는 학교에서 필수 과목은 학교에서 처럼 정해진 과목을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내는 것이 아니다. 과목도 자신이 정하고 배우는 과정도 스스로 정해야 한다. 심지어 아무것도 배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완전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배움은 반드시 일상이 되어야 한다. 지나고 나서 후회하는 삶을 살아가지 않기 위해서는 늘 깨어 있어야 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