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권 독서

[자전거 여행]- 김훈

by 조윤효

책 제목으로 유추하자면 자전거로 전국을 누비며 느낀 자신의 감상을 쓴 여행기로 오해하기 쉽다. 김훈의 책은 여행기가 아니라 시집 같다. 책은 꽃의 이야기, 흙의 이야기, 숲의 이야기, 차 이야기, 나무의 이야기, 강 이야기, 그리고 소금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다.


여행 중 만나는 자연을 시인의 눈으로 정독한 듯한 글들이다. 도입부의 '신비라는 말은 머뭇거려지지만, 지지한 삶 속에도 신비는 있다'라는 그의 말처럼 매일 보는 우리 땅의 생명의 신비를 찾아내는 작가의 힘이 경이롭다.


꽃의 묘사는 단연 으뜸이다. 동백, 매화, 산수유, 목련꽃에 대한 그의 묘사는 그 꽃들의 존재 위치를 한층 올려 준다. '봄의 꽃은 바람이 데려가거나 흙이 데려간다'라는 표현 또한 꽃의 사멸을 멋지게 표현했다. 인간의 죽음 또한 바람이 데려가거나 흙이 데려간다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자연 앞에 우리는 결국 고개 숙일 수밖에 없는 작은 생명체 일 뿐이다. 수 만년을 한 곳에서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지켜봐 온 산과 강들에게 겸손해야 한다.


시골 마을에 대한 표현은 쓸쓸하다. 도시로 떠나버린 사람들로 인해 저녁 마을의 모습을 '떠나지 않은 사람들의 흐릿한 등불 몇 개가 피어났다.'라는 글귀는 보지 않아도 마을의 정경을 느낄 수 있다. 전교생이 17명인 시골 분교 이야기는 정겹다. 자연만을 관찰한 여행이 아니라 시골 속에서 자신들의 인생을 꽃피우는 사람 여행이기도 하다. 자신의 고향을 떠나지 못하는 맹인과 그의 마을 친구 이야기, IMF로 실패하고 다시 고향에서 일어서기 위해 몸부림치는 삶의 고단함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 등은 애잔하다.


그의 책 속 서울의 이야기는 왠지 모르게 낯설다. 마치 잘 차려입은 옷에 어울리지 않는 가방이나 신발이라고 나 할까? 하지만 그 자체로 신선할 수도 있다. 양복에 운동화를 신은 사람들도 이제는 편안하게 개성이라 부를 수 있는 언어적 도구가 있으니 말이다.


차의 표현은 마음속 그늘에 비치는 햇살 같다. '시는 인공의 낙원이고, 숲은 자연의 낙원이고, 청학동은 관념의 낙원이지만, 한 모금의 차는 그 모든 낙원을 다 합친 낙원이다.' 몇 해 전 지리산 수도사에서 스님이 손수 재배하신 차 맛이 바로 그 맛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수년을 스승과 함께 돌을 날라다가 길을 만들고 연못이라고 하기엔 너무 큰 호수 같은 물을 받아 절 뒤켠 지리산 큰 숲 자락에 숨겨 두셨다. 떠나신 스승과 그 사리를 절에 간직하고 찾아오지 않는 사람들의 고적함을 자랑하는 수도사의 차맛을 묘사할 수 있는 단어를 찾았다.


'숲'이라는 단어로 글을 써낸 작가의 관찰은 멋지다. '숲이라는 단어는 어감이 깊고 서늘하다. 서늘함 속에는 향기와 습기가 번져 있다.' '숲의 시간은 헐겁고 느슨하다.'


나무 이야기 또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나무의 늙음은 낡음이나 쇠퇴가 아니라 완성이다.' '세상에 늙은 나무는 없다'라는 표현에서 인간이 지양해야 할 삶의 목적을 보여주는 듯하다.


글 중 가장 인상 깊은 표현은 저자가 수련꽃과의 만남을 묘사한 부분이다. "수련꽃 핀 여름 연못가에 주저앉은 자와 물 위의 핀 꽃 사이의 거리는 멀고, 이 거리를 건너가는 방편은 다만, '보인다'라는 한 개의 자동사 이외에는 없지만, 이 의심할 수 없이 확실한 빈곤이 살아 있는 동안의 기쁨이다."


'강은 인간의 것이 아니어서 흘러가면 돌아올 수 없지만, 길은 인간의 것이므로 마을에서 마을로 되돌아올 수 있다.' '겨울의 강은 흐름이 아니라 이음이었다. 강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인간의 표정으로 깊이 가라앉아 있었고 물은 속으로만 깊게 흘렀다.'라는 표현들은 헬렌 켈러를 연상시킨다. 눈이 있어도 제대로 관찰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제대로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그녀의 말에 공감을 느끼게 한다. 김훈 작가의 책들은 제대로 보지 못하는 나를 일깨워 주는 글들로 가득 차다.


한 알의 소금을 보고 '짠맛은 바다의 것이고, 향기는 햇볕의 것이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그의 시선이 부러울 따름이다. 그의 글들은 은유로 가득하지만 요란하지 않다. 여름 속의 햇살이 아니라 한겨울의 햇살이다. 유리창을 통해 따뜻함을 전해주는 겨울 햇살은 김훈이라는 유리창을 통해 자연을 만나 아늑하고 따스해서 스르르 눈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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