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권 독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by 조윤효

책의 제목은 또 하나의 유혹이 된다. 존재의 가벼움을 벗어던지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책 제목이 주는 마력 때문에 의식의 한편에 꽂아둔 책 중 하나다. 대학 때 읽으려다 잃지 못한 책이다. 마음을 내려놓고 읽기 시작하니 두께감의 부담은 어느새 사라지고 서서히 책 속을 산책하듯 주인공들을 만나 보았다.


주인공이 시간의 흐름을 또는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는 소설에 익숙하다. 하지만, 이 책은 마치 냉동실에 넣어둔 얼음 조각들의 배치 방식 같다. 한 공간에 있지만 각기 자신만의 영역에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개개인의 얼음 조각들.

각각의 공간에서 개개인의 속 마음을 작가가 설명해 주는 듯하다. 개인의 사랑 이야기인 듯 하지만 소설 후반부터는 소련 침공으로 인해 공산주의가 물감 번지듯 체코의 일상적인 사람들과 지식인들의 삶이 서서히 번지듯 변해간다. 베토벤의 '그래야만 하는가?'라는 말이 소설 속 토마스에 의해 간간히 떠오른다. 후반부는 마치 철학책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소설의 저자가 자신의 의견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나'라는 표현이 과감하게 느껴진다. 마치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집에 손님이 오시면 보이지 않는 부엌 쪽에서 손님을 위한 음식을 대접하고 자신의 존재를 감추었다면 요즘의 어머니들은 손님과 음식을 맞대 놓고 자신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듯한 느낌이랄까?


남녀 간의 사랑 방식과 시대는 소설의 배경이 되어 두 커플의 존재 방식을 보여 준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우리 모두는 자신을 도와주는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우리가 어떤 시선을 받으며 살고 싶어 하는지에 따라 네 가지로 분류했다. 익명의 무수한 시선을 받으며 살고자 하는 사람들, 다수의 친한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 속에서 살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부재하는 사람들의 상징적 시선 속에서 살고자 하는 몽상가 같은 사람들로 분류했다. 그리고 실재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의 방식을 이 정해진 틀에서 보여주는 듯하다.


의사인 토마스와 그 한 사람만을 보고 시골에서 올라온 테레자 커플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토마스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다음으로 사비나와 프란츠 커플의 이야기를 다룬다. 사비나 입장에서 프란츠 입장으로 그리고 테레자 관점으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존재의 방식에 대한 관점이 사랑의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토마스와 테레사는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 속에서 살고 싶은 사람들이고, 죽음 또한 무거움의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지길 바란다. 그들의 사랑은 슬픔 형식이고 내용은 행복으로 찬 방식이다. 반면, 사비나는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죽고 싶어 하고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그녀를 누르는 짐인 것 같다. 공산주의가 사회 전반에 확장되던 시절 그녀의 음악에 대한 표현은 재미있다. '음악은 그녀 뒤에 풀어놓은 개떼 같았다.' 그녀는 배신을 위한 배신을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이라 표현한다. 그래서 결국, 유부남 프란츠가 그의 부인과 딸을 떠나자 그녀 또한 그를 떠나 미국으로 가버린다.


사비나를 떠나보내고, 자신의 부인과 딸을 떠나보낸 후 비로소 내면의 자유를 즐기는 프란츠는 그 일상 모든 곳에서 사비나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토마시의 테레사에 대한 사랑은 동정의 빛이라면 프란츠의 사비나에 대한 사랑은 동경의 사랑이다.


사랑에만 집중하기 힘든 시절의 개인이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준다. 소련이 체코를 침범하고 체코의 지식인들이 공산주의에 동조하고 개인의 삶을 유지하느냐 아니면 저항함으로써 낮은 삶의 계단으로 내려가느냐를 보여 준다. 토마스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의사에서 유리 닦는 공공근로자로 그리고 결국 시골에서 트럭을 운전하는 삶의 계단으로 한 단계씩 내려간다. '자신의 소명이라 믿었던 의사직의 소명을 내려놓은 그의 삶은 일상에서 벗어난 긴 휴가 같다'는 표현은 한줄기 바람처럼 생각을 피어오르게 한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소명이나 의무감을 벗어던질 수 있어야 진정한 삶의 휴가를 얻는 것이다. 쉬기 위한 휴식이 아니라 더 잘하기 위한 휴식이 될 것 같다.


'외국에 사는 사람은 구명줄 없이 허공을 걷는 사람이다'라고 글에서 이야기 한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소련의 침공으로 인해 체코인들은 조국이 모든 인간에게 제공하는 구명줄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저주와 특권, 행운과 불운, 사람들은 이런 대립이 얼마나 서로 교체 가능한지를, 인간 존재에 있어서 양극단 간의 폭이 얼마나 좁은 지를 이보다 더 구체적으로 느낄 수는 없었다.'라는 표현과 '나라 전체를 사로잡은 절망이 영혼으로 스며들어 육체를 장악하여 쓰러 뜨린 것이다.'는 표현이 소련에 침략당한 체코인들의 마음을 가장 극명하게 표현한 것 같다. 우리 민족도 비슷한 역사의 길을 걸어왔기에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을 기억해 주어야 한다.


'한 번은 중요하지 않다. 한 번이면 그것으로 끝이다.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 가벼운 , 참을 수 없을 정도록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라는 말에 저자의 시대관이 보이는 듯하다.


'대답 없는 질문이란 인간 가능성의 한계를 표시하고, 우리 존재에 경계선을 긋는 행위이다'라는 말도 독특한 발상이다.


'한 여자가 언어를 통해 우리의 시적 기억에 아로 새겨지는 순간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 '사랑은 단 하나의 은유에서도 생겨 날 수 있다.' 연속된 우연이라 믿고 시작된 토마스와 테레사의 사랑의 이유를 보여주는 듯하다.


'인생의 첫 번째 리허설이 인생 그 자체라면 인생에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기에 삶은 항상 밑그림 같은 것이다.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나의 사랑이 잊히지 않는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성 프란체스코의 어깨에 새들이 모여 앉듯 첫 순간부터 여러 우연히 합해져야 만 한다.' 삶의 사건은 해석력이다. 지나간 사랑이건 다가올 사랑이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개인의 역사에서는 찬란할 수도 초라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삶은 마치 악보처럼 구성된다. 인간은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에서 조차 무심결에 아름다움의 법칙에 따라 자신의 삶을 작곡한다.' 글 중 가장 인상 깊은 구절이다.


가벼움과 무거움, 영혼과 육체 그리고 이해받지 못한 말들에 대한 주제로 소설의 큰 타이틀을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에 토마스와 테레사의 애완견, 카레닌의 삶까지 지상의 모든 주제를 다루고자 하는 소설가의 욕심이 보인다. 하나의 세계를 소설 속에 만들어내는 작가는 신이다.


'인간의 신체의 모든 부분에 이름을 붙이고 난 후부터 육체는 덜 불안해했다'라는 말이 소설 속에 있다. 만약, 현실에서 내 안의 모든 생각들에게 하나씩 이름을 붙여 준다면 육체와 같은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수십만 가지의 생각들에게 이름을 붙여 준다면 삶의 불안감이 없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요즘 들어,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 가시는 어머님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그녀의 삶 또한 눈부신 젊음으로 빛을 만들어 냈었으리라. 노년이 된 지금 홀로 섬에서 세상을 향한 문을 하나씩 닫아가는 모습에 가슴이 저린다. 소설이 또 하나의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와 삶의 해답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책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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