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유시주
'신이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빚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형상대로 신을 만든 것이라 믿는 편인 나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라고 서문 중에 저자의 기본 생각을 어필한다.
균형이 잘 잡힌 탄탄한 건물 같은 느낌의 책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이미 많이 알려져 있지만 저자의 제대로 된 이해 아래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신화의 전후 과정을 잘 보여 주는 책이다. 지금까지의 흩어진 그리스 로마 신화의 엉성함을 힘껏 조아주는 기분이 든다. 저자가 제대로 알고 있기에 쉽게 전반적인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다.
전지전능한 신이라기보다는 인간처럼 질투하고 화내고 사랑하는 인간적 모습을 보여주는 신들의 모습이 더 살갑게 느껴진다.
쇠사슬에 묶여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빼앗기는 고통을 당하는 프로메테우스의 죄는 인간을 사랑한 죄다. 제우스가 그의 아버지 티탄족인 크로노스를 물리칠 때 티탄 족임에도 불구하고 올림푸스 신들의 편을 든 프로메테우스.
동생 에피 메데우스의 실수로 인간에게 줄 선물이 하나도 없게 되자 제우스에게서 불을 훔쳐다가 주는 프로메테우스.
제우스의 아내 중 한 명에게서 그를 능가할 아들이 탄생할 것이라는 예언의 아내를 알고 있는 유일한 신 프로 메테우스. 제우스의 회유에도 끝까지 자신의 길을 걷는 정의로운 신이다. 로마 신화의 신들 중 왠지 정이 제일 많이 가는 신이다.
'프로메테우스처럼 우리들도 날마다 싸움의 와중에서 살아간다.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에서 , 진실된 것에서 거짓된 것 사이에서 벌어지는 그 싸움이야 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거룩한 전쟁이다. 그렇기에 인간을 믿는다 함은 인간이 전적으로 아름답고 진실되고 선한 존재라는 걸 믿는 게 아니라 아름답고 진실되고 선한 존재가 되기 위해 추하고, 거짓되고 악한 자신과 싸울 줄 아는 존재라는 걸 믿는 것인지도 모른다.' 본문의 저자의 말이 인상 깊다.
프로메테우스 동생인 에피 메데우스의 뜻은 '나중에 깨닫는 자'라는 뜻이란다. 그래서 모든 동물에게 살아남을 수 있는 각각의 장점을 부여해주지만 결국 인간에게 줄 것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걸 나중에 깨닫는다. 그런 에피 메데우스의 아내가 판도라다. 그녀의 호기심은 제우스의 의도된 사고였다. <신이 여자였을 때>라는 저자 메를린 스톤의 이야기는 제법 이치에 맞는 것 같다. '위대한 여신의 몰락이 인도, 유럽어 족의 침입에서 시작되어 마침내 유태교, 기독교, 이슬람교에 의해 완성되었다' 한다. 지금 이슬람권의 탈레반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자들에게 보여주는 그 어리석음을 만들어 낸 것이다. 여성의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원래 모계 중심의 사회였으나 정착이 시작되면서 남자의 힘이 생존에 더 유리했기에 신화를 통해 여자의 힘을 전락시켰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판도라와 이브는 인간을 고통과 고난 속을 인도한 인물로 언급된다. 조셉 캠벨의 신화 이야기에서 말한다. '선악을 아는 것이 왜 아담과 이브에게 금지되어야 했던가요? 그것을 모르고 있었더라면 인류는 삶의 조건에 동참하지 못한 채로 아직도 에덴동산에서 멍청한 아이로 살고 있을 테지요. 결국 여자가 이 세상의 삶을 일군 것입니다.'
'이브는 이 속세의 어머니입니다. 꿈같은 낙원 에덴동산은 시간도 없고, 탄생도 없고, 죽음도 없는 곳입니다. 그것만 없습니까? 삶도 없습니다.'라는 말도 생각을 하게 만든다. 판도라가 상자를 열어 마지막까지 남겨져 있던 것이 희망이라는 저자의 견해도 기억하고 싶다. '희망이란 원래 있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없고 또 없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지상의 길과 같은 것이나 땅 위에 원래 길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걸어가면 그것이 길이다.'
제우스의 아들들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의 비교도 재미있다. 신인 아버지와 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폴론은 밝고 명랑한 면을 상징하고 인간의 어머니에게 태어난 디오니스는 본능적이고 야성적인 충독적인 삶을 상징한다. 그래서 니체는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스적인 것의 갈등과 결합을 이야기한다. '디오니스적인 정신이 아폴론적인 아름다운 형식으로 표현된 것이 바로 그리스의 비극이다.' '삶 가운데 고통과 죽음의 장이 있음을 인정하고 알아차리는 것, 죽음에서 부터 삶에 이르는, 또 고통에 서부터 황홀경에 이르는 전 범위를 담담히 지켜보는 것'을 디오니소스의 추종자들은 이야기한다.
글 중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은 지금 코로나 시대의 현상의 원인 일수 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들은 자연계를 파괴함으로써 우리 자신들을 영락의 길로 이끌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가이아는 현재 의도적으로 우리 인간들에게 적의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가이아가 선호하는 방향과는 정반대 쪽으로 우리들이 계속 범지구적인 환경파괴를 일삼는 다면 결국 인간 종족들보다 더 자신에게 순응하는 생물종으로 우리들을 대치하리라.' 지구를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 여기고 인간의 몸이 나쁜 바이러스를 스스로 제거하듯이 지구 또한 인간이라는 바이러스를 자연 치유할 수 있다.
아름다운 여신 아프로디테의 남성 편력에 대한 이야기도 신선하다. 제우스가 점 지어 준 절름발이에 인물도 못난 대장장이 신인 헤파 이스토를 남편으로 두고도 계속된 그녀의 외도는 용감하다. 헤르메스와 사이에서 사랑의 정령으로 알려진 에로스가 태어났고, 인간의 안키세스와 사이에서는 로마 건국 기반을 잡아준 아이네아스가 태어났다. 트로이 전쟁과 관련된 신들의 편 가르기 이야기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속이려 한 미노스 왕으로 인해 미노타우르스가 세상에 태어나고 그를 가두기 위해 다이달로스가 만들어낸 미로 이야기는 더욱 구체적이다. 다이달로스가 어떻게 해서 미로를 만들게 되고 왜 자신이 만든 미로에 아들과 함께 머물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잘 풀어 준다.
인디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시애틀 추장에게 땅을 팔라는 요구에 그 추장의 자연을 바라보는 큰 뜻을 볼 수 있다. 체 게바라의 이카로스의 후예들에 대한 생각도 만날 수 있다. '당신의 어깨에도 날개가 달려 있다.' 이카로스는 무모한 도전의 희생자가 아니라 '꿈을 향한 위대한 이륙'의 표상이다. 그러한 비상 뒤에는 추락조차 아름답다고 한다.
'나는 왜 사는가?', '나는 무엇을 바라고 살아가는가?', '내 삶엔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회의에 습격당하고 있다면 <시지프스의 신화>를 읽어보라고 한다. 지금 내게 필요한 책을 발견했다. '인생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살아야 한다'라는 실존을 자각하고 생의 부조리에 눈을 뜨는 요즘 카뮈의 현명한 견해가 도움이 될 것 같다. 살아간다고도 이야기할 수 있지만 죽어간다고도 이야기할 수 있다. 죽음이라는 정해진 운명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 정해진 기한안에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까?
신랑의 이모할머니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모할아버지의 피부암과의 사투를 15년이 넘게 간병하셨고 최근 몇 년 전에는 치매로 생을 치열하게 사시다가 작년에 드디어 그 생의 굴레에서 벗어나신 과정을 보신 분의 이야기가 가슴이 깊이 들어온다. '인생은 지나고 보니 찰나 더라. 나를 가둔 육체에서 벗어나면 더 넓고 자유로운 곳으로 갈 것 같다.'라는 말이 전쟁 같은 삶을 살아낸 그녀의 이야기다. 찰나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어떤 의미를 찾아가며 살아가야 할까라는 생각이 연기처럼 일상 곳곳에서 피어난다.
책의 후반부는 서양의 모든 사상의 근간이 되는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에서 발생된 고사성어들을 소개한다. '카산드라의 예언', '고르디우스의 매듭', '아킬레우스의 건', '페넬로페의 베 짜기', '스킬라와 카립디스 사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등등.... 마치 동양의 고사 성어들을 우리가 생활 속에서 많이 쓰듯이 그들의 사상 근간이 되는 신화 이야기 속에서 파생된 고사 성어들에 대한 이야기는 서양인들의 글과 이야기로 많이 쓰인다. 그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유시주 작가의 해박한 지식이 밤하늘의 별처럼 빛을 발산한다. 그 발산된 빛이 삶의 길을 잃은 인생 방랑자들에게 북극성 같은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책이다.
책과의 좋은 인연을 감사하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