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권 독서

[아트 리더십]- 한성현

by 조윤효

소설도 아니고 슬픈 이야기도 아닌데 읽다가 눈물이 났다. 이순신과 칭기즈칸의 아트 리더십에 대한 공통점을 느낌, 학습 그리고 창조적 사고라는 관점으로 그들의 삶을 보여 준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작년에 본 것 같은데 솔직한 개인의 이야기를 읽을 때와는 달리 객관적인 서술자의 눈으로 장군의 삶을 접하니 눈물이 났다. 조정에서는 당파싸움으로 자신의 이익에 눈이 먼 중신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바다를 지켜내고 있는 그를 불러들여 고문하고 백의종군으로 전쟁에 참여하게 한다. 이 과정을 보며 이순신의 정신적 크기에 다시 한번 존경심이 일었다.



저자는 글로벌 시대에 맞는 아트 리더십을 2명의 위대한 인물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하고 현시대의 리더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소개한다. 리더는 앞으로 다가올 상황이나 변화의 가능성을 예견하는 확신에 찬 영감 즉 느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느낌을 바탕으로 관련된 사항을 꾸준하게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창조적인 사고를 통한 혁신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과 칭기즈칸의 대 몽골 조직의 시스템이 느낌을 가지고 꾸준한 학습으로 창의성이 발의된 역사의 작품이다.


책은 크게 이순신 장군 편과 칭기즈칸의 삶을 구분해 아트 리더십의 3가지 조건에 맞는 시대적 상황과 역사적인 과정과 결과를 잘 보여 준다. 이순신 장군 편은 그의 책을 읽었기에 쉽게 이해하고 읽어 내려갔지만 칭기즈칸에 대한 내용은 이름과 지형이 낯설고 접하는 이야기들이 처음 듣는 것들이라 읽는데 시간이 걸렸고 줄을 치다 보니 세계사 시험 준비하는 수험생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순신 장군은 왜적의 출몰 횟수와 그들이 가진 조총을 보고 곧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래서 철저히 준비를 시작한 것이 단 한 번도 패하지 않는 기록을 남긴 것이다.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는 그의 말처럼 이순신 장군으로 인해 7년간의 기나긴 전쟁 속에도 우리 땅을 지켜낸 것이다.


그 이후 일본에 의해 한일 합방이 된 우리나라를 보고 천국에서 얼마나 개탄을 하셨을까? 기나긴 전쟁 동안 매일 기록을 통해 역사의 생생한 과정을 그의 눈으로 시대를 볼 수 있게 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 기록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는 경험을 바탕으로 하며 반복을 통해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아신 분이다.


'인간을 위해서 철저하게 봉사하고 희생한다는 정신은 기업 성공의 기초가 될 수 있다. 봉사하고, 봉사하고, 봉사한다는 철저한 철학 없이 경쟁 강도가 높아져가는 현대 기업 사회에서의 성장을 보장받기는 어려워지고 있다.'라는 말을 생각해 본다. 내면의 확고한 철학이 행동을 만들고 그 행동이 경험을 통해 끊임없는 학습과 창조적 사고로 역사를 바꾸는 위인들이 태어나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내면의 철학이 아름답다. 국가와 민족에 대한 확고한 책임감과 철저히 자신을 희생시킬 수 있는 정신이 있었기에 12대의 배로 133척의 왜적선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이다. 백전백승의 기록은 세계사에서도 유래가 없는 기록이라고 한다. 장군은 철저한 학습 가이다. 물의 흐름과 날씨의 변화 그리고 자연을 관찰하고 지형에 밝은 어부들과의 소통을 통해 기록하고 예측하고 준비한 자세가 남과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낸 것 같다. '기록으로 남기면 국가와 기업 나아가 후손들의 자산이 된다. 우리도 이제 자신의 지식을 자신만을 위해 쓰다 소멸시키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될 것이 아니라 철저한 기록 정신으로 더 크고 열린 마음으로 무한한 용도를 위해 기록을 남기는 지혜를 발휘할 때다.'라는 저자의 말이 새삼 중요함을 느낀다.


투옥, 고문 그리고 백의종군, 조정의 무지원 속에서도 결단력, 침착성 그리고 뛰어난 판단력은 닮고 싶은 인성이다. '이순신의 저해권 장악은 훌륭한 조건 위에서 이 루어 빈 것이 아니라 열악한 환경에서 모름지기 그의 탁월한 창조력과 뜨거운 애국심 그리고 뛰어난 지휘 통솔력의 산물이다.'라는 저자의 말에 백배 공감한다.


거북선 제작의 창조성과 더불어 못을 사용하지 않고 소나무를 끼워 맞춘 형식의 판옥선의 기술력이 일본의 엉성한 안택선을 상대로 한 해전에서 승리를 선사한 것이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건 한 개인의 위대한 통솔력이다. 모함으로 이순신이 투옥되어 있는 동안 원균은 100대가 넘는 배를 침몰시키게 만들고 나라의 운명을 '바람 앞의 양초'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리더가 중요하다.


'개인의 발전은 작을지 모르지만, 그러한 작은 발전들이 모여서 국가, 사회적 발전을 이루어 내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의 리더들은 한 개인으로서의 모습뿐만 아니라 사회의 전반적인 발전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실천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이 진정한 아트 리더십의 경지인 것이다.' 저자의 생각이 담긴 구절이다.


칭기즈칸에 대한 이야기는 정착민의 기질과 유목민의 기질을 비교한다. 유동 유목민은 겨울 방목지를 확보하는 게 생존 그 자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자립심과 인내심을 바탕으로 한 사람을 원한다. 역사와 문학은 역동적이다. 하지만 아쉬운 게 역사적인 기록이 약하다. 반면 정착 문명의 경우 고급 지식을 고학력 엘리트의 특수 계층만을 위한 닫힌 사회일 수 있다. 소통의 불일치와 집단 이기주의 소수만 중시하고 다수를 저버리는 사회 조직 및 교육제도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현대에도 여전히 특정 계층만을 위한 조직과 교육을 부르짖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진정한 인류사의 길이 아니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칭기즈칸 시대는 기술자를 우대하고 외국어 2~3개 구사하는 인재가 성공하는 시대였다. 전쟁을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로 하는 것이라 생각한 그의 철학 때문이었으리라. 그래서 그런지 직접 전 전투도 있었지만 스스로 항복한 국가들이 많았고, 그 항복한 나라들을 이용해 또 다른 나라들을 정복해 가는 마치 도미노 조각 같은 전략으로 세계 통일화를 이뤄내려는 그의 발상이 신선하다. '칭기즈칸 출현 이전까지 지구 곳곳의 문명들은 모두 자기들만의 닫힌 세계 속에 살고 있었다. 닫힌 세계의 사람들은 그들의 꿈과는 달리 극심한 내부 모순과 그에 따르는 정치, 경제 사항의 혼란 속에 숨이 막혀 가고 있었다.'라고 이야기한다.


동서양의 시술을 접목시켜 농업 생산을 극대화시키고, 상업 유통을 활성화시킨 그의 시대의 가장 독특한 점은 노예도 능력이 있으면 신분 향상을 쉽게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낸 점이다. '인류는 역사상 최초로 잠시나마 종교와 인종을 불문하고 하나의 제구, 하나의 이상으로 통합하여 서로 어울려 살았다.'라는 글을 보며 생각해 보았다. 세계의 문명을 통합했고 또 그 속에서 서로 어울려 살 수 있는 길을 제시한 그의 업적이 비교적 축소된 이유는 역사의 승자인 그 후의 나라들의 왜곡된 전달이 한몫했을 것이다.


'인생이 말해 주듯이 원칙이 없을 경우, 세상을 경악케 하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사상누각일 분이다.'라는 말이 칭기즈칸의 믿음과 충성이라는 기본 원칙 덕분에 세계 역사의 그의 이름을 남긴 것이리라.


역사적으로 볼 때 몽골은 여성의 지위가 높았다고 한다. 사람이 귀하기 때문에 여성이라는 존재를 존중하는 마음이 많았다고 한다. '인류사를 남과 여의 양성 문화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경우 이동 사회나 정착 사회를 막론하고 모두 공통적인 흐름이 있다. 남성들이 여성을 인정하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질서와 어머니의 질서가 평등하게 공존하는 양성적 사회에서 개인은 더욱 개성적이고 창의적인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다.'라는 말이 인상 깊다.


당시 몽골의 남자들이 전쟁과 다른 문명을 흡수하고 분배할 때 여자들은 제국을 운영했다고 한다. 칭기즈칸의 아들들 중 첫째 아들 우구데이의 부인(정부인은 아녔다고 한다.) 남편이 죽고 난 후 10년 동안 세계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관리한 여자였다고 한다. 당시 몽골의 여자들은 종교과 교육을 지원했고 건물을 짓고 제국의 규모에 맞는 중요한 사회적 제도를 확립시켰다고 한다.


칭기즈칸의 다문화와 현대의 미국식 연방제도가 닮은 점이 있지만 몽골식 다문화가 훨씬 앞선 느낌이다. 칭기즈칸 다문화는 복합 문화 병존 체제를 고수하기에 언어 또한 다 언어 주의를 지향한다. 하지만 정착 사회의 경우 용광로 정책 즉 하나의 문화와 언어를 모든 사람이 맞추길 원하다. 몽골의 회의는 페르시아어, 돌궐어 그리고 통치자 언어인 몽골어 3가지를 사용하도록 했다고 한다. 즉 융합과 조화를 통한 정보의 개방화를 추진했고, 이로 인해 문명과 문명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눈높이를 조절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 것이다.


몽골의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다수를 존중하되 그들의 독창성을 최대한 개발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전문화와 독창성을 지향한 그들은 조기 교육제도가 있었고, 사회를 이끌 리더 양성을 위하 고등 교육, 케식텐 제도를 통해 창조적 리더십뿐만 아이라 전문 분야에 대한 직중 학습의 현장을 제공한 것이다. 세대 충돌이 없는 실력가와 전문가 우대 사회를 이루어 낸 그들의 문화가 대단하다.


몽골의 케식텐 제도는 정밀하게 짜인 열린 교육 조직으로서 문화는 늘 변화하며 살아 있다는 것을 가르쳤다고 한다. 문화를 인식하는 사람이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다는 관념을 가르쳤다. '개인의 창의력과 활력이 가장 왕성한 시기에 자신의 에너지를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열린 교육의 장을 만난 청소년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푹 빠진 워커홀릭으로 변해갔다.'라는 부분에서 왠지 모를 오늘날의 청소년보다 더 행복한 삶에 대한 기대와 준비로 삶의 희열을 더 느끼며 살았을 것 같다. 이곳에서 그들은 세계적으로 행동하고 행동은 지역적으로 행동한다는 진리를 터득한다고 한다.



인종, 종족, 언어, 생활 습관이 다른 젊은이들이 케식텐 조직을 통해 새로운 통치 계급이 되었고, 훈련된 다양한 국적의 젊은 이들은 이후 서로 먼 곳에 떨어져 있어도 눈높이가 비슷한 문화 공동체를 만들었다고 한다. 대몽골제국이 세계 제국화의 성공 이유 중 하나가 삶의 스타일과 사고 방식이 동질화되는 것을 지양했고 정복된 나라들과 독특한 유대 관계를 맺어 가는 교육의 힘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유일하게 사상 탄압이 없던 시대를 만들어 낸 그들의 문화가 더 크게 보이는 이유가 이 때문 일 것이다.


'존재'보다 '역할'에 기초를 둬 개인의 실력과 창의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스템이 몽골을 가장 방대한 실무 관료를 거느리고 백성의 등을 다독 거려 주었던 제국이었던 것 같다. 다양성과 전문성을 인정하고 포용했던 혼합 문화였다. 오늘날보다 뛰어난 큰 사상을 느낄 수 있다. 국가 간 통신, 교통의 정보, 군사 고속도로 쓰인 '잠치'는 정보 수집과 교류의 장의 역할을 했다. 결국, 행상과 육지를 잇는 무역로 확보까지 나아가지만 칭기즈칸의 정신을 가지고 그 길을 연결하는 이인자의 능력의 한계로 결국 통일된 반도가 다시 분열을 만나게 된다.


역사는 돌고 돌아 오늘에 까지 이른다. 1200년대의 일이지만 오늘과 견주어 봐도 사상의 폭이나 교육 제도 정치적 성숙도는 오히려 나으면 나았지 뒷 처진 다는 느낌이 없다. 천 호제를 통한 세계 경영의 조직의 기본을 다져간 그들의 신념과 이를 만들어 낸 칭기즈칸의 삶이 궁금해진다. '다수의 꿈과 상식이 소수의 욕망에 의해 뒤틀려지고 깨질 수 있다.'라는 말은 역사적으로 많은 예를 보아 왔기에 더욱 공감이 간다. 대몽골 제국이 세계 통일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군사력에 의존하기보다는 혼합 문화의 힘을 이용해 독특한 형태의 문화를 꽃피우고자 했었던 같다. 그 만개한 꽃을 보지 못해 아쉽다. 삶은 꽃처럼 피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한 사람의 위인이 수많은 사람의 안정된 삶과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삶을 선물할 수 있다. 위대한 사람을 만들어 내는 교육시스템과 사회적인 분위기가 꽃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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