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서 풀냄새가 난다. 지루해 지기 쉬운 거대한 들판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그 정교한 풀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해 가는 기쁨을 주는 책이다. 경제, 경영 서적이지만 저자 찰스 핸디 개인의 유년기와 젊은 시절 그리고 중년 이후를 보내고 있는 저자의 삶이 수필처럼 어우러져 있다.
약간은 딱딱하고 재미없을 책이라는 마음의 각오를 하고 읽어 내려가는데 솔직하고 담백한 저자의 문체를 느낄 수 있었고,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의 중년의 삶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물론, 중간 부분에는 경영 관련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힘겨운 언덕을 넘듯이 읽고 난 뒤에는 다시 편안한 삶의 지혜를 쏟아내주는 책이다.
코끼리는 대기업을 의미하고 개개인은 벼룩이라는 상징적 표현으로 삶의 형태에 대한 변화를 이야기한다.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고용된 사람을 포트폴리오 생활이라 이야기한다. 제1부는 포트 폴리오 인생의 시작, 제2부는 인터넷 시대의 기업 문화, 그리고 제3부는 독립된 생활을 주제로 한 글이다.
코끼리의 삶 속에 개인이 속할 경우 소속감과 공동체의 느낌을 주지만 인생의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인생의 무소속 배우로서 벼룩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시대라고 한다. 글에서 빌 게이츠는 2050년에는 개인의 50%가 집에서 일하는 시대를 살 것이라 예견했다고 한다. 거대 코끼리 기업은 그 영역을 넓혀 가지만 핵심 사업은 축소할 것이다. 그 간격을 계약직 서비스와 전문 지식인들이 채우는 시대가 더 가속화될 것이란다. 회사는 젊고 의욕적인 젊은 사원이 대 부분을 차지하고 몇 명의 현명한 나이 든 사람들이 남아 피라미드 형태의 기업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저자 또한 대기업에서 일하기도 하고,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그의 개인적 식견을 키워준 것은 해외 근무 이력인 것 같다. '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본다는 것은 자신의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렌즈를 갖는 것이다. 너무 익숙하여 아무런 의문도 들지 않았던 사물을 새롭게 돌아보게 된다.' 그는 아일랜드 목사 집안의 검소한 생활과 옥스퍼드 대학에서 1대 1강의를 받는 행운을 얻었던 사람이다. 그의 유년기 기숙학교 생활에 대한 짧은 에피소드를 통해 당시 사람들의 삶의 지배적 사고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인도, 싱가포르, 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책 속에 녹아들어가 있다.
그의 포트폴리오 인생은 자유롭게 자기 시간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년 시절의 에피소드들은 한 사람의 삶의 영역에 그 시기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의 유년 시절은 부모님의 책임이지만, 대부분의 부모는 당시 인생 경험이 아직 짧아서 부모 자신의 유년기가 그들의 끝(성년)을 결정한다는 것을 잘 모른다. ' 그의 말처럼 부모가 조성하는 분위기, 부모의 가치관, 우선순위가 자녀의 세계관 형성에 일차적 기여를 한다. 저자는 나름 그 시대에 맞춰 성공적인 삶을 살았지만, 저자의 아버지는 시골의 작은 교회 목사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의 장례식에 수백 명이 참석하고 일시적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살아 있는 사람에게 영향을 준 그의 아버지가 진정한 성공한 인생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 주는 것 같다.
학교에 대한 저자의 생각 또한 공감한다. '앞으로 벼룩 생활을 할 사람들은 자신감에 상처 받지 않고서 학교 문을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의 생활 방식은 사회의 고난을 견디게 해주나 적극적으로 극복해 나가도록 하지는 못한다. 학교는 인생을 미리 실험하는 안전한 장소가 되어야 한다. 학교는 자기 과제와 다른 사람에 대한 책임을 배우는 곳이 되어야 한다. 학교는 우리가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그것이 언제 필요한지를 깨닫는 곳, 인생과 사회에 대한 우리의 가치와 신념을 탐구하는 곳이어야 한다.'라는 글을 읽으며 앞으로 학교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미래상을 제공한다.
그의 해외 근무 중 각 나라에 대한 관찰 또한 재미있다.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홀로 서기를 한 싱가포르는 30년 만에 가난에서 부를 창출한 국가이다. 리콴유 총리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국가는 개인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닌 개인이 국가의 발전을 위해 타협하도록 기대되는 곳이라고 한다. 소득의 30%를 세금으로 내지만 그 낸 소득 안에서 자유롭게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고 한다. 싱가포르는 특정 상황과 문화 속에서는 다른 종류의 자본주의가 작동 가능함을 보여준 국가라고 한다.
미국 사회의 돈에 가치에 대한 인식을 소개한다. 미국에서 돈은 인간적 가치를 보여 주는 것이기에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자랑이 될 수 있고, 일은 좋은 것이라 여긴다. 왜냐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남보다 더 많은 좋은 일을 했다는 뜻으로 여겨지는 사회적 분위기는 저자의 금욕적 생활에서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회사의 유일한 목적은 주주에게 더 많은 이익을 주는 것'이 우선 시 된다는 분위기는 공정한 분배와 사회적 단결을 강조하는 유럽식의 사고방식과 많이 대조된다고 한다. 미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불공평한 나라라고 한다. 자신의 상징인 돈을 이용하여 남다른 업적을 올린 자기 자신을 칭송하는 분위기 란다. 그래서 경제는 발전해 가지만 빈부 격차는 날이 갈수록 커지는 사회이다. 즉, 승자 독식 사회가 미국이다. 사회 구성원에게 그들이 가질 수 있는 것들을 비교적 젊은 나이에 얻게 해주는 사회이지만 그로 인해 권태의 파도에 일찍 노출되기도 한단다.
하지만 저자는 미국의 자본주의에는 쉽게 지친다고 한다. 장거리 경주 같아 중도에 빠져나올 수도 없고 이길 수도 없는 경기라고 한다. 하지만 젊은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 미국이라고 한다.
인도의 경우 그 발전 속도가 느린 이유를 '조용한 순명의 태도는 진취적 기업 혁명 사회를 만들어 내는 데는 마이너스이다.'라고 한다. 그중 인도의 케랄라 주를 예로 들어 설명해 준다. 주민의 상당수 가 주 안에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다른 도시로 가서 일하고 젊은이 들은 부모에게 정기적으로 용돈을 송금하는 주란다. 그곳엔 오직 관광객과 히피 만이 거리를 메우고 있고 이를 위해 싸구려 숙소와 레스토랑만 즐비한 문화라고 한다.
'좋은 사회를 만들려는 미국인의 정력과 자신감, 켈랄라 사람의 매력과 다정함, 싱가포르 사람의 극기심과 결단력을 통합할 수 있다면 우리는 가장 좋은 형태의 자본주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라는 저자만의 식견도 깊이가 있다.
경영에 대한 책을 쓰면서도 경영서보다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가 그 어떤 경영서 보다도 회사 속의 개인이 처한 시련과 곤란에 대해서 많은 것을 말해 준다.'라고 이야기한다. '남들보다 낫기보다는 다르게 하라.'는 조언도 귀하다.
일이라는 개념을 오직 돈을 벌어내는 사회적 활동으로 제한하지 말고 4가지 인생 일에 대한 의견도 도움이 된다. 가정일, 자원봉사를 통한 사회 기여일, 개인의 성장을 위한 학습, 그리고 운동도 중요한 일이라고 한다. '돈 버는 일을 나머지 4가지 일과 바꾸며 보람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라는 인생 조언도 기억에 남는다. 일의 4가지 영역을 자발적으로 균형을 잡아야 함을 느낀다.
'돈을 버느라고 많은 시간을 투입하게 되면,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일을 할 시간이 그만큼 적어진다는 거야. 우리가 충분한 돈의 액수를 낮추면 낮출수록 다른 일을 할 자유는 그만큼 더 많아지는 거야. 돈을 너무 강조하면 돈은 너를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돈 버는 일에 꽁꽁 묶여 둘 수 있어'라고 저자가 친구에게 이야기한다.
이제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이 달라지고 있다. 잠깐 코끼리 등에 업혀 살다가 개인의 삶의 시간을 더 보장받을 수 있는 벼룩으로서 장시간 살아가야 한다. 난 지금 벼룩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자기가 아닌 어떤 것에서 벗어나서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진정한 능력을 발견하고 또 자신의 영향력과 그 특별한 즐거움에 만족을 느끼기 바란다. 그리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만으로 삶을 꾸려 나가는 진정한 자유를 얻기 바란다.'라는 저자의 강한 메시지를 보며 생각한다. 매년 성장하는 한 해를 보내고자 노력하지만 연말이 다가오는 10월의 마지막 주에 생각해보니 작년과 비슷한 한 해를 보낸 것 같아 올해의 성적표가 살짝 두려워진다.
세상을 살아가는 수천 가지 방법 중 나와 인연이 된 책을 통해 저자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식견이 하나씩 늘어간다. 삶의 질은 내가 보낸 대부분의 일상 시간의 농도가 결정할 것 같다. 거대 코끼리를 만들어 내는 사람도 멋있지만 단지, 벼룩처럼 작게 세상을 살아가더라도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하나씩 이루어 가는 삶 또한 아름답다. '인생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에게 실제 벌어진 일이 아니라 당신이 기억하고 있는 일과 그것을 기억하는 방식이다.'라는 책 속 소설가 가르시아 마르케스 말이 긴 여운을 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