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권 독서

[질문하는 책]- 파블로 네루다

by 조윤효

무르익어 가는 가을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시기다. 자연은 부지런히 옷을 갈아입고 있다. 마치 연인을 기다리는 여인처럼 하나씩 하나씩 색을 바꿔간다. 가을 하늘은 담그고 싶을 만큼 깨끗하고 무리 지어 하늘을 배회하는 구름 또한 자태가 곱다.


일요일 늦은 아침을 먹고 옥상에 쳐진 그물침대 속으로 책과 누웠다. 혼자 만의 사색으로 느긋하게 가을 하늘과 새들의 지저김을 들으며 읽은 시집이다. 저자 파블로 네루다는 20살 시절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로 대중적 사랑을 받았으며 남미 전역의 가장 유명한 시인이 되었다고 한다. 멕시코 영사를 지냈고 정치가로도 활동했으며 그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1971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이 시집은 1973년 세상을 떠나기 전 불과 몇 달 전에 마무리된 작품이다. 이 시집의 작품들은 모두 316개의 물음표로 끝난다.


죽음이 오기 전까지 세상에 대한 수많은 질문과 호기심을 잃지 않은 시인의 삶의 태도가 아름답다. 혹자는 이야기한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웃음을 잃어가고 삶에 질문이 사라진다고. 글을 쓰고 삶을 해석하는 힘을 갖기 위해서는 가슴에 물음표를 간직하고 살아가야 한다. 세상 문을 닫는 날 그 물에 대한 답들을 글로 남길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할 것 같다. 시인 네루다가 남긴 질문을 생각해 봐야 한다. 책이 얇아 너무 빨리 읽어 버려 두 번을 연달아 읽어 봤다. '시를 잃은 당신에게'라는 책이 떠오른다. 가을이 시를 부른 것 같다.


'빗 속에 서 있는 기차처럼 슬픈 게 이 세상에 또 있을까?' 기차 본연은 의무는 연결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정지해 있는 삶에 빗물을 맞고 서 있는 기차가 마치 노년의 기력이 다한 노인이 연상된다. 한때 바람을 가르며 힘차게 달렸던 날이 기차 구석구석에 흔적을 남겼다. 그 혼신을 다했던 질주의 흔적만이 빗물을 맞고 있다.


'나뭇잎들은 노란색을 느낄 때 왜 자살을 할까?' 가을 산의 형형색색 나뭇잎들은 아름다움을 뿜어내다가 겨울이 문 앞까지 올 때 찬란하게 떨어진다. 마치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듯 누구나 찬란했던 젊음이 있었고 겨울이라는 죽음의 시절이 다가올 때 장렬하게 떨어져 나간다. 자신의 몸을 새로운 새싹을 위한 거름으로 기꺼이 내어 놓고 가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다. 존재의 찰나를 거쳐 다시 암연으로 또 다른 삶의 시작을 위해 역사의 뒷길로 사라지는 것이다.


'가을은 그렇게 많은 노란 돈으로 계속 무슨 값을 지불하지?' 재미있는 표현이다. 가끔 우리는 부자를 부러워한다. 너무 돈이 많아 다 쓰고 싶어도 이자가 느는 속도가 더 빨라 절대 다 쓸 수 없다고 한다. 그들은 돈으로 무슨 값을 지불할까? 낙엽 같은 돈에 의미를 부여한 인간 삶에서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할까? 없어서도 안되지만 절대적 가치를 부여해서도 안 되는 그 낙엽을 위해 우리는 삶의 어떤 부분을 희생하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버려진 자전거는 어떻게 그 자유를 얻었을까?' 버려짐이란 타인의 기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닐까? 삶은 가끔 내 의도가 아닌 타인의 시선이 바람이 되어 돛의 방향을 틀어 길을 만들어 버릴 수 있음을 시인은 알고 있는 것 같다.


'개미집 속에서는 꿈이 의무라는 건 사실일까?' 꿈이 의무라는 표현에 간절함이 보인다. 꿈꾸지 않으면 도저히 해쳐나갈 수 없는 현실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꿈꾸지 않고 시시각각 발생하는 생의 요란함과 한 발짝씩 다가오는 죽음의 전주를 꿈이 음악의 조율처럼 인생의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줄 것 같다.


'가난뱅이들은 왜 그들이 가난에서 벗어나자마자 이해하지 못할까?' 가난함이란 삶의 마중물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닐까? 마중물이 있어야 물을 쏟아 낼 수 있다. 마중물은 교육이 될 수도 있고 자신에 대한 가족의 사랑과 신뢰가 될 수도 있다. 물을 쏟안낸 아니 성공한 후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 인간의 허영을 이야기하고픈 건 아닌지....


'파블로 네루다라고 불리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인생에 있을까?' 자신을 알아 가는 과정에 매일매일 새롭게 태어나고픈 사람에게는 지정된 좌석 같은 고정된 이미지는 답답할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이야기한다. '내가 마침내 나 자신을 찾은 곳은 그들이 나를 잃어버렸던 곳인가?'


'우리의 삶은 두 개의 모호한 명확성 사이의 터널이 아닐 것인가?' 탄생과 죽음의 정해진 시작과 끝을 이야기한다. 터널이라 불리는 인생은 그 정체를 알 수 없다. 탁 트인 예측 가능한 풍경이 아니라 터널 속처럼 어둡고 막막한 인생의 여정을 이야기한 것 같다.


'나무가 하늘과 대화할 수 있기 위해 땅에서 배운 게 무엇일까?' 하늘과의 대화를 통해 지상에 있는 나무는 깨닫는다. 우주의 광활함과 영속성을. 지상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우리 인간은 하늘과 신과 우주와 대화를 위해 무엇을 배워야 할까?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다. 지나온 과거의 나는 어디로 갔을까? 분명 그 시간 속의 나는 이제 내가 아니다. 생각이 자라고 삶의 배경이 달라진 나는 매일매일 새로운 자아를 맞이 하는 건 아닐지.


'가을이 한창일 때 당신은 노란 폭발들을 듣는가?' 지금 가을 산은 매혹적이다. 그들의 요란한 손길과 눈길은 쉽게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쏟아내는 폭발들은 면밀한 관찰과 사랑이 있어야 들리는 건 아닐까? 누구나 찬란하게 피던 시절이 있다. 한 그루의 나무로 가을이 왔음을 알 수 없다. 수만수백 그루의 나무가 합창하듯이 삶을 노래한다. 그들의 노래를 감상할 수 있는 마음의 수련이 필요하다. 삶은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각하는 자가 느끼는 세상은 더 넓고 클 것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주말에 파블로 네루다의 질문들이 사색을 불러일으킨다. 노년에 나는 어떤 질문을 하게 될 것인지 지금 나는 어떤 질문을 세상에 던져야 하는 지를 알게 해주는 책이다. 질문하지 않는 삶은 변화가 없는 삶이다. 자연이 계절마다 변화듯 삶 또한 그 시기별로 변화를 이끌어 가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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