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들어와 익숙한 책을 드디어 읽었다. 서양인이고 기독교 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 인도, 중국 사상을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풀어냈을지 궁금증부터 준 책이다. 싯다르타는 헤세의 내면의 자아를 이야기한다. 1900년대를 살아간 작가들은 시대의 거대한 변화와 부조리를 온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국가의 거대 권력 간의 전쟁 속에서 개개인의 무기력이 당연시되는 시대를 살아간 지성인의 생각 흐름이 글을 통해 흐르는 듯하다.
브라만의 인도 최고 계급의 아들로 태아난 싯다르타는 유일자를 만나고자 사마나(승려 개념)를 찾아 친구 고빈다와 함께 수행의 길로 들어선다. '세상의 창조, 언어의 생성, 음식의 생성, 들숨과 날숨의 생성, 감각 체계, 신들의 행적, 무한히 많은 것을 브라만은 알고 있다. 그러나 유일자를 모른다면 즉 가장 중요한 것을 모른다면 그 모든 것을 안다고 한들 무슨 가치가 있는가'라는 생각을 갖고 반대하는 자신의 아버지 품을 떠난다.
인간 내면엔 아트만이 있고, 놀라운 지혜가 그 구절들 안에 담겨 있고, 가장 지혜로운 지식이 마치 꿀벌들이 모아 놓은 꿀처럼 순수하게 그 마법적인 언어 속에 응집되어 있다고 한다. '네 정신이 온 세상이다.'라는 경정 속의 참뜻을 알아가기 위해 젊은 싯다르타는 사마나 스승을 떠난다. 그리고 붓다로 알려진 고타마를 친구와 함께 찾아간다. 여기서 친구는 고타마의 가르침을 받고자 그의 제자로 남게 되지만 싯다르타는 혼자만의 수행 길을 선택한다. '붓다는 내게서 무언가를 앗아 갔다. 그는 나에게서 무언가를 앗아 갔지만, 더 많은 것을 선사했다. 나를 믿었고, 이제는 그를 믿는, 내 그림자였지만 고타마의 그림자인 내 친구를 빼앗아 갔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싯다르타를, 즉 나 자신을 선사해 주었다.'
해탈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수행을 해나가는 싯다르타는 자신을 깨달아 간다. 떠나는 싯다르타를 보고, 고타마는 말한다. '인생은 고해이며, 세상은 온통 번뇌로 가득 차 있지만, 번뇌로 부터 해탈하는 길이 발견되었다. 붓다의 길을 가는 사람은 해탈하리라.' 세상은 인과 율로 이어진 영원한 사슬이다. 세상의 단일성, 모든 사건의 연관성이 크고 작은 모든 것이 동일한 흐름과 법칙, 생성과 소멸되는 일에 포함된다는 사상을 언급한다. 깨달음이란 원인을 인식하고 사고하는 것이란다. 그렇게 해야만 감정은 인식으로 변하며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이 되어 그 속에 내재한 것을 발산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읽어도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는 부분 때문에 정독하고 다시 읽고 해도 아직은 내 실력이 부족함을 느낀다.
싯다르타는 이야기한다. 스승을 통해 그가 배우고자 했던 것은 ' 그것은 자아다. 나는 그 의미와 본질을 배우려 했다. 내가 벗어나려고 했고, 내가 극복하고자 했던 그것은 바로 자아였다. 참으로 세상에 이 자아만큼 나를 몰두하게 만든 것은 없었다. 내가 살아 있다는 이 수수께끼, 내가 하나의 개체이며, 다른 모든 사람과 구별되고 내가 싯다르타라는 이 수수께끼만큼 깊은 고뇌를 안겨 준 것은 없었다.'라는 이야기를 통해 나의 자아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위해 지상에 존재하며 어떤 죽음을 맞이 하게 될까?'라는 깊은 질문이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걸 느꼈다.
붓다를 떠난 싯다르타는 카말라라는 여인을 다음 스승으로 맞이 한다. 사랑이 무엇인지 배우고자 하는 싯다르타에게 그녀는 그가 가지고 있는 소유를 묻는다. '나는 사고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알고, 단식할 줄 안다.'라는 답을 내놓은 그에게 물질적인 것을 요구한다. 결국 싯다르타는 그녀가 소개한 상인 카마스 바비를 위해 일을 하게 된다. ' 사람이 어린이나 짐승 같은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좋아하는 동시에 경멸했다.'세속의 삶으로 첫발을 내민 싯다르타의 독백이다. 그가 상인 카마스 바비에게 쓴 글귀가 마음에 와닿는다. '글을 쓰는 것은 좋은 일이며, 생각하는 것은 더 좋은 일이다. 영리한 것은 좋은 일이며 인내하는 것은 더 좋은 일이다. '
사랑을 얻기 위해 세속에 자신을 담은 싯다르타의 말이 아프다. '돈을 벌기 위해, 사소한 쾌락을 위해 사소한 명예를 위해 애쓰는 것을 보았고, 고생하고 늙어가는 것을 보았고 서로 책망하고 모욕을 주는 것을 보았으며, 사마나라면 웃어넘길 고통에 비탄하고 사마나라면 느끼지 못할 궁핍에 괴로워하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인간은 수백 년을 살아오고 있었다........ 마치 수레바퀴 돌듯이 계속 도는데 세상에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만 달라 질뿐. 우리 내면에 어느 때든 파고들어 평안히 쉴 수 있는 고요한 도피처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 힘을 얻어 걸어갈 수 있다. 헤세도 싯다르타를 통해 이걸 말하고자 했을 것 같다. 끝없는 윤회와 번뇌 속에서 살아가더라도 자신을 알고 자신 속의 아트만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행운일 것이다.
싯다르타는 속세의 삶을 더 이상 참아내지 못하고 다시 자신을 알아가기 위한 여행을 한다. 그리고 강에서 깨달음을 터득한 뱃사공 바수데바와 함께 수행을 해가는 삶을 살아간다. 세월이 지나 카말라는 붓다 고타마의 죽음을 보기 위해 싯다르타의 아들을 데리고 여행하는 중 강에서 쉬게 된다. 카말라는 뱀에게 물리고 10살의 아들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싯다르타와 바수데바를 찾아온다. 결국, 그녀를 알아보고 그의 아들을 알아본 싯다르타는 카마라의 얼굴에서 삶의 그늘을 본다. '즐거운 목표 없이 오랜 인생길을 걷는데서 생긴 피로감, 시들어가기 시작하는 기색, 그리고 숨겨진, 아직 말하지 않은, 어쩌면 한 번도 의식하지 못한, 즉 늙음에 대한 두려움, 인생의 가을에 대한 두려움, 필연적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그 얼굴에 역력히 드러나 있었다.'
싯다르타의 깨달음의 소리는 '옴'이다. 강가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소리 속에 '완성하는 것' 또는 '완성'을 뜻하는 신성한 '옴'을 깨닫는다. 우연하게 들었던 이야기가 기억난다. 요가원을 운영하는 언니가 요가원에 놓아둘 '옴'이 세겨진 돌을 주문했다고 한다. 돌에 글을 세기던 분이 하시던 말이 인도어인 '옴'을 읽지는 못했지만 글자가 너무 강해 세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표면적인 글에도 힘이 있다. 싯다르타의 의식 속에 '옴'이 파고든 순간 비참함 속에서, 방황 속에서 자신을 깨닫게 된다.
카말라의 죽음으로 아들은 결국, 아버지인 싯다르타를 떠난다. 아들에 대한 못다 한 사랑과 지난날 자신 또한 아버지를 떠나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결국, 싯다르타는 깨달음에 도달한다. '세상의 단일성에 대한 지식이 마치 피처럼 내 안에서 순환하고 있음을 느꼈다.'
소년에서 청소년 그리고 참여와 수행을 통해 노년이 되자 붓다의 가르침을 깨닫는다. 부드럽고 폭신한 그 지옥에 살고 있었던 중생의 삶을 인식하고 문을 닫는다. '타락한 생활의 무의미를 견디지 못한 싯다르타는 죽고 새로운 싯다르타가 잠에서 깨어났다.'
강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이해해야 한다. '강물은 흐르고 흘렀고, 끊임없이 흘러갔지만 언제나 거기 있고, 항상 똑같았지만 매 순간 새로웠다. 강으로부터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비밀을 배웠다.' 스승을 찾아 깨달음을 얻고자 했던 싯다르타와 그의 친구 고빈다와는 달리 강을 통해 깨달음에 닿은 바수데바. 삶에서 배우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주위의 모든 것이 성장을 돕는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결국, 싯다르타는 삶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 '사고와 분별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충동과 욕망에 의해 이끌리는 그들의 삶을 이해했고, 그 삶을 함께 나누었다.'
현인과 세속인의 사소한 차이는 '의식하고 있다는 것, 모든 생명의 단일성을 의식하며 사유한다'는 것이다. '일체의 소리, 일체의 목표, 일체의 그리움, 일체의 고통, 일체의 쾌락, 일체의 선과 악 그 모든 것이 합쳐진 것이 세상이었다. 그 모든 것이 합쳐져 사건의 강을 이루었고, 삶의 음악을 이루었다.'
마지막 강가에 다시 친구 고빈다와 대화를 하는 싯다르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지식은 전달할 수 있지만 지혜는 그럴 수가 없네. 지혜를 찾아낼 수 있고, 체험할 수 있고, 지니고 다닐 수 있고, 기적으로 행할 수 있지만, 지혜를 말하고 가르칠 수는 없네. 세상을 사랑하는 것, 경멸하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 그리고 외경심을 가지고 관찰할 수 있는 것 만이 나에게는 비할 나위 없이 중요한 것이라네'
헤세는 싯다르타를 통해 세계와의 평화를 찾고자 시도했다고 한다. 결국 삶의 수레는 수천 년 동안 굴러오고 있다. 미국을 지루한 천국이고, 한국을 신나는 지옥이라 표현했던 시애틀로 이민 가신 경주 원장님의 말이 떠오른다. 신나는 지옥인 이곳에서 누구나 물질적 행복을 추구하고자 한다. 하지만 헤세는 지나친 개인의 물질적 행복은 정신적 공허를 겪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공허가 분노와 절망을 만들어 내고 그 비극의 끝이 전쟁이라 단정한다. 세계 대전을 겪고 그 참상을 마음 깊이 고뇌했을 작가의 생각을 아주 조금 이해하게 된 듯하다. 아직 갈길이 멀다. 책을 통해 저자의 영혼 깊이 흐르는 강을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강물처럼 흘러 노년과 죽음을 앞둔 인생을 어떻게 흘러갈지 현자는 되지 못하더라도 '의식하며 살기'를 실천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