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에프라임 키숀
이 책은 '임금님은 벌거벗었다.'라고 소리치는 아이가 떠오른다.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는 용기와 솔직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동화책 '벌거벗은 임금님'이야기 같다. 평생 2만 점이나 되는 그림을 그린 미술계의 대가 피카소가 누구를 향한 어떤 복수 일지 궁금증을 유발한다.
저자 에프라임 키손은 1924년 헝가리에서 태어났지만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헝가리, 구소련에서 강제 수용소 되어 혹독한 시련을 겪은 사람이다. 그 후 헝가리를 탈출해 이스라엘로 망명 후 풍자 작가로 활동한 사람이다. 부다 페스트 대학에서 예술사와 금속조각 공부와 미술 평 공부를 통해 나름 그림에 대한 자신만의 가치관이 있는 것 같다.
책 서문에 '이 책을 나는 이 세상의 가장 훌륭한 여성들에게 헌정한다. 왜냐 하면 바로 이 여성들이 그것에 가장 격렬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라고 다소 애매한 느낌의 글로 시작한다. 미술은 언제나 그 자리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내 삶과 떨어져 있다. 예술을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지만 특히 현대 예술은 참 난해하다. 그림이라기보다는 그냥 작가의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종이 위에 던져진 듯한 느낌이나 형태를 이해할 수 없는 조각상을 보면서 항상 나의 무지를 탓했다.
다행스럽게도 저자는 미술계의 임금의 벌거벗은 상태를 외치는 어린 꼬마 역할을 한다. 덕분에 이제는 모르는 것을 당당하게 이야기할 용기가 난다. 미술의 난해함과 미를 상실한 현대 예술에 대한 저자의 속 시원한 말들이 위안이 된다. '자신의 작품이나 자신의 예술을 감상하는 관객에 대한 사랑 없이 진정한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남을 위한 배려나 애정이 빠지게 되면 이기주의나 오만, 허영심, 아니면 효과만을 노리는 마음만이 중요하게 된다. 예술은 관객이 작품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인간의 영혼과 정신에 호소할 수 있어야만 버로서 가능할 수 있다. 예술은 그림을 보는 관객에 의해 비로소 생겨나는 것이다.'
세계 금융 자본의 중심지인 뉴욕과 런던을 중심으로 해서 생겨난 미술 시장은 미술의 상업화를 가속화시켰다고 한다. 피카소부터 시작된 미술의 일탈은 엘리트 관료층과 모더니즘 사이의 막강한 동맹과 재원을 가지고 매스미디어에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는 예술 마피아와 국회의원, 장관, 시장들 사이의 음모라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독일 의회가 현대 미술품을 어처구니없는 가격으로 구입하고 시민들의 반대에 부딪치는 일에 대한 이야기도 우습다. 시민의 분노는 예술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천문학적인 가격에 있다는 말에 충분한 공감이 간다.
'아무 내용도 없는 작품을 딱 꼬집어 말하기 힘든 경우에 즐겨 사용하는 표현에는 <예술에는 나침반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현대 예술은 종종 얼마나 관대한가를 알아보는 관용의 시험대이다. 현대 예술은 그것이 속해야 할 쓰레기 더미 위에 놓아줄 것을 부탁한다.' 저자의 일침이다. 화장실 변기도 작품이라 내놓고, 도무지 그림이라고 하기 어려운 낙서 같은 그림들이 현대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평론가와 미술계의 힘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대중을 속이는 일을 막고자 저자는 자신의 시간들을 아낌없이 사용하는 것 같다. 책들 사이사이 대중들이 이해할 수 없는 다수의 현대 미술품과 대가의 그림들이 나란히 배치해 독자의 눈을 키워주는 것 같다. '우리의 적은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그 밖의 어떤 것도 아니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피카소의 예술적 예언을 옮겨 본다. '예술이 더 이상 진정한 예술가들의 자양분이 될 수 없었던 뒤부터, 예술가들은 자기 재능을 자신의 환상이 만들어 내는 온갖 변화와 기분을 위해 사용했다...... 대중들은 예술 속에서 더 이상 위안도, 즐거움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세련된 사람들, 부자들, 무위도식자, 인기를 쫒는 사람들은 예술 속에서 기발함과 독창성, 과정과 충격을 추구했다. 나는 내게 떠오른 수많은 익살과 기지로 비평가들을 만족시켰다. 그들이 나의 익살과 기지에 경탄을 보내면 보낼수록, 그들은 점점 더 나의 익살과 기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오늘날 명성뿐만 아니라 부도 획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홀로 있을 때면, 나는 나 스스로를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술가로 생각하지 않는다. 위대한 화가는 조토와 티치 안, 렘브란트와 고야 같은 화가들이다. 나는 단지 나의 시대를 이해하고, 동시대의 사람들이 지닌 허영과 어리석음, 욕망으로부터 모든 것을 끄집어낸 한낱 어릿광대일 뿐이다.'
그의 유언적 내용이 비평가라는 전문 집단에 대한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라고 표현한다. 현대 미술품이라는 이름으로 내놓는 작품들이 비평가의 입을 타고 매스컴에 과장 보도되고 천문학적인 가격이 부여되는 우스꽝스러운 시스템을 말하고 있다. '매트리스는 매트리스며, 병은 병이고, 고철은 고철이다. 그리고 예술은 어디까지나 예술이다. 미술계를 장악하고 있는 영악한 사람들이 벌이고 있는 저 존경스러운 사업을 절규하듯 규탄하고 있는 뒤셀도르프의 마르틴 슐츠의 발언은 나를 포함아 혀 건강한 이성을 지닌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고 있다.'
현대 예술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접근할 수 없고, 그것은 사유 재산처럼 애지중지하는 이른바 진보적 엘리트에게는 일종의 특권임을 보여준다. 현대 미술 작품을 이해 못 한 사람의 질문에 '만일 당신이 라테나우를 언급하고 그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나는 당신에게 먼저 라테나우의 저서를 읽어 보도록 권유하고 싶소. 그의 저작은 다시 편집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당신은 당신의 입장과는 반대되는 의견들을 하나하나 발견하게 될 것이요...' 현대 미술품에 대한 비난을 한 사람에게 브록 교수는 뭔가 알지 못하고 그 알지 못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이 창피함을 두는데 근거를 두고 반박함으로써 박수갈채를 받았던 일화는 코믹영화 같다.
현대 미술품의 비평가들은 어려운 용어로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다수의 관객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혼돈 속에서 몇몇의 전문가 또한 어떤 사람도 그 이유를 더 이상 물어보지 않고 모두들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는 사 실 이에 대한 풍자가 재미있다.
미술 세계에 대한 막연한 거리감이 저자로 인해 한 폭씩 줄어드는 느낌이다. 작년에 갔던 현대 미술전에서 아들과 나란히 막막히 보고 돌아온 기억이 있다. 다음에 다시 간다면 더 솔직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이 그림의 의미를 전혀 알 수가 없다. 네 가슴이 어떻게 느끼는지 그대로 인정하는 게 그림을 제대로 보는 첫걸음이 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