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권 독서

[내 인생의 책 52권] -박경남

by 조윤효

인생에서 만나는 책들은 사람을 만나는 인연과 버금간다. 사람을 만나는 것은 공간과 시간의 제약이 있으나 책을 통해 만나는 정신들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이 없다. 책을 통해 타인의 눈과 지혜로 세상을 보는 눈을 기른다면 후회할 일이 줄어들 것이다. 삶은 어릴 때처럼 꿈속 동화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수많은 크고 작은 일들이 바로 삶이다.


'내 인생의 책을 만난다'는 것은 책 읽기의 즐거움이자 보람이다. 내 인생에 책이 있다는 것은 최소한 삶의 방향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떤 철학을 가져야 하며 어떤 가치를 창출할 것인지, 많은 부분에서 내 인생의 책이 답을 것이다. 인류의 사상은 모두 책으로부터 전해졌으니 말이다.' 저자의 서문이다. 책에 대한 중요성을 알지만 일상으로의 초대는 개개인이 해야 한다. 가끔 돌아보면 하지 않아도 될 실수가 많았다. 조금 일찍 책과 만나 내 삶을 관찰하고 신중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는 생각을 한다. 책을 쓴 저자들도 그런 마음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몸으로 부딪치고 아팠던 일로 깨달은 삶의 기술들을 다른 이들은 같은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는 맘이 클 것이다. 삶의 지도에는 아직 길이 뚜렷하지 않다. 하지만 지나온 길은 선명하게 나를 드러낸다. 가지 않은 길에 필요한 나침판 같은 책들과 사색 그리고 겸손한 마음이 가야 할 길에 등불이 되어 줄 것이다.


저자가 만난 책들 52권은 다양하다. 동서양의 고전과 한국 근대 소설 그리고 너무나 유명해서 꼭 읽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책부터 처음 듣는 제목의 책도 몇 권 있다. 책을 읽는 사색의 깊이가 깊다. 한 권의 책들 속에서 주고자 하는 교훈을 단 하나의 단어로 농축해 낼 수 있는 저자의 책 읽기는 단수가 높아 보인다.


그중 <변신>이라는 책은 소외라는 큰 핵심 주제를 꺼내 놓는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쓸모가 없다고 여겨지면 퇴물로 취급되는 현실'을 보여 준다. 잉여 인간이란 말도 서슴없이 쓰이는 시대이다 보니 인간 존엄을 위한 사회적 진화는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어 보인다.


진정한 리더십의 교훈을 보여 주는 <대학>과 <중용>은 유가 사상의 연장과 확장을 이야기한다. '오직 인간 자신의 힘으로 인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이것이 유가가 강조하는 수기 지인이다. 간단히 말해서 기본적으로 인성이 되어야 리더로서 자질이 있다는 말이다. 자기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하면서 갑질하지 말란 소리다..... 강과 바다가 온갖 시냇물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자기를 낮추기 때문이다.' 권력이나 지위는 의복과 같다고 한다. 의복이 내가 아님을 알고 계절이 바뀌면 옷을 갈아입는 게 당연한 이치이다.


인간 탐구를 보여 주는 <사기>에는 사람의 역사 속에 답이 있음을 보여 준다. '눈 덮인 들판을 걸을 때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마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는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조선 시대 승려 서산 대사의 '답설'이라는 시이다. 어찌 눈 덮인 길뿐이겠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또한 우리의 후손들이 그 길을 보고 따라올 것이니 서산 대사의 말처럼 인생길을 함부로 걸어서는 안된다. 내가 가는 길이 기록이 되어 남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는 마음이 삶을 더욱 발전시켜 줄 것이다.


일본의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이라는 소설은 자기애와 이기심의 경계에서 고뇌하는 지식인의 이야기라고 한다. 제목은 들어 봤지만 아직 인연이 없는 책인데 올 겨울 읽어 봐야겠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책은 구원을 이야기한다. 삶은 기다림이다. 무엇을 기다리는지 왜 기다리는지 모르는 긴 여정이 삶이다. '소박하게 먹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아무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삶도 답이 될 수 있다.'


<어린 왕자>를 통해 관점을 이야기한다. '밤하늘의 별이 웃는 것은 내가 그렇게 보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다. 그러나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어린 왕자는 내면 속의 자신의 어린 모습이다라는 것을 다시 읽으면서 느꼈었다. 어른이 된 나와 어린 내가 만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아이의 눈으로 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하나씩 얻어가듯이 하나씩 잃어 가는 삶이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놓아야 하는지를 알아야 삶의 여정이 가벼울 것인데.... 오늘도 무엇을 놓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을 한다. 인디언 속담에 '때론 흐린 날도 있는 거야 매일 밝은 날만 되면 사막이 된다고 하지 않는가' '안락한 삶을 모두 행복이라고 말할 수 없고, 고된 삶을 불행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울림이 있는 말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아직 읽지 않은 책인데 너무 많이 들어 꼭 읽은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착각을 사실로 실행해야 할 날이 곧 올 것 같다. 시간의 궤적을 이야기한다는 이 책의 유명한 글귀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조선 정조 때 문인 유한준의 글 중 일부 발췌 내용이란다. 그 시대에도 삶의 진리 중 하나를 알고 있었다.

인디언 속담 중 '우리가 살고 있는 토지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아이들로부터 빌려온 것이다.'라는 말은 생각의 깊이를 더해 준다. 물려받은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에 쉽게 사라진다. 하지만 빌린 것이라는 생각은 소중하게 다루어 다시 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과거의 수레바퀴는 정지되지도 않고 지워지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살아 있는 한 계속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시간의 궤적에 우리는 존재하며 아름다운 유산을 후대에게 남겨줘야 하지 않을까.'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처음 듣는 책이라 다소 흥미롭게 읽어 내려갔다.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약자를 함축하고 있는 책이란다. 13살 주인공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은 장례식 때문에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은 날이었다고 한다.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공간에 어린 소년이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가는 소설 같다. 긴 겨울밤 따뜻한 아랫목에 베개 깔고 보면 좋을 듯한 책이다. '언젠가 아빠는 나무가 사람을 세 번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무를 자를 때와 나무를 운반할 때 그리고 그것을 태울 때.'


키케로의 <의무론>의 글귀가 인상 깊다. '악을 행하는 것만이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선을 행하지 않아도 죄가 된다.' 선을 행하는 삶을 잊고 살기 쉽다. 자신만의 삶에 빠져 악을 행하지 않으니 안심이라는 작은 위로의 주머니를 달고 오늘도 나만의 삶에 빠져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자아 찾기의 책 <인형의 집> 편의 글도 좋다. '아무도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자신의 삶은 오롯이 자신의 것이다..... 그 삶의 주인은 자신이기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 오롯이 내 것인 것이 몇 개 되지 않는다. 오롯이 내 것에 집중할 수 있을 때 삶의 폭이 더 넓어질 것 같다. 나를 중심으로 수많은 인연과 사건들이 물결처럼 흘러간다. 그곳의 중심에서 오로시 자신만의 삶에 집중하는 힘이 필요하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자발적 가난이라는 핵심을 이야기한다. 오랫동안 무소유를 소유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해 왔다. 책을 통해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때 우리는 보다 홀가분한 삶을 이룰 수가 있다.' 홀가분한 삶을 꿈꿔본다. 인생이라는 여정에 배낭이 가벼워야 여행이 즐겁다. 너무 많은 소유와 집착 그리고 욕심으로 가득 찬 큰 배낭은 여행의 피로감을 증폭시킬 것이다. 가볍게 걸어가자고 다짐해 본다. 진정한 여행 가는 가방이 가볍다고 한다. 이 또한 삶을 여행으로 잡는 다면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스스로 짊어지고 있는 짐의 크기를 줄이는 일이다.


박노해 시인의 <노동의 새벽>을 통해 시의 힘을 이야기한다. 시는 죽었다고 표현하는 책도 있지만 예전에 비해 문학의 기본인 시의 위치가 줄어든 건 사실이다. '시는 치유이자 각성이다.'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박노해 시인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존경스럽다.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이라는 의미의 박노해는 가명이다. 그의 시는 1984년 독재 시절 노동자의 투쟁에 불을 댕기는 불씨가 되었다고 하니 시의 힘을 어찌 과소평가하겠는가. '시는 문학의 출발이었고 시대에 따라 큰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사람의 이성보다는 감성에 다가가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안기부에서는 그를 사회성과 문학성이 뛰어나 고학력 엘리트로 생각했다고 한다. 상고 출신의 노동자인 박노해가 결국 잡히지만 재판 과정에 그의 문학적 자질을 의심하고 실험하고픈 우픈(웃기지만 슬픈) 일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군사정부의 금서 조치에도 약 100만 부가 팔렸다고 하니 그의 시의 힘은 대단하다. 그의 시는 가슴 시리다. '상쾌한 아침을 맞아 즐겁게 땀 흘려 노동하고 뉘엿한 석양 녘 조촐한 밥상을 마주하는 평온한 저녁을 가질 수는 없는가' 그땐 평온한 저녁상을 가족과 함께하는 그 작은 소망도 어려운 시절이었다.


가진 것이 너무 많은 경우 개개가 가지는 가치를 잃어버린다.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가 가진 것들을 인식하는 습관들이 그 각각의 낱개들이 고유의 가치를 발휘하도록 도울 것이다. 그리고 정신적인 풍요를 맘껏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가진 것들이 그 누군가는 꿈이자 희망으로 가슴속에 품고 살아갈 수 있다. 여전히 세계의 3분의 1은 전쟁 중이고 여전히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한 끼 식사를 고민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손에 든 것에 감사함과 선을 실천하고자 하는 작은 의지들이 삶의 안정망을 선사할 것 같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Gesture 영문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