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숲] 무라카미 하루키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그의 책이 워낙 유명해서 오히려 읽기를
아껴두었다. 488쪽 분량의 글이 바로 시작하기 부담을 주었지만 완독 했다. 그의 문체는 일본 문학계에서 처음에는 많은 비난을 받았었다고 한다. 쉽고 간결한 문체가 문학과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해서였다. 하루키는 처음 글쓰기를 할 때 우선 영어로 썼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영어로 쓴 글을 일본어로 번역을 했다고 한다. 독특하다. 외국어에서 오는 한계가 그의 모국어의 간결성을 주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소설의 초반부는 궁금증을 자아 내게 만든다. 주인공 와타나베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책은 친한 친구의 자살로 도입부를 강하게 끌고 나간다. 죽은 친구의 여자 친구와 과거를 공유하며 현재를 다시 만들어 가고 싶어 하는 주인공과 정신적인 어둠 속에서 헤매는 나오코와의 이야기가 가장 큰 흐름이다.
부잣집 아들에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와나타베의 친구 가스타와는 왜 죽음을 선택했을까? 그리고 공부도 잘하고 예쁜 나에코의 언니는 왜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갔을까? 소설이 끝날 때 까지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래서 계속 생각하게 만든다.
주인공 주위의 인물들은 개성이 강하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들은 아니지만 정신적인 혼돈 속에서 자신만이 살아남는 법을 터득하고 나름 살아간다.
세상을 자신의 자아 속에서 바라보고 내적 갈등과 고뇌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개인들의 선택을 보는 듯하다. 살아남은 자와 살기를 포기한 자들의 정신적 일상이 베일 속에 가려졌다. 결국은 그 선택의 원인을 찾아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일본 특유의 성적 관념과 표현 그리고 약간의 동성애가 다루어진 소설인데 우리가 봤던 일본 영화들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훌륭한 가문에 외모도 준수하고 공부도 잘해 여학생들에게 인기 많은 주인공의 선배 가와사키는 삶에 대한 무한한 자신감에서 오는 오만함이 보인다.
나오코는 대학 1년을 다니다가 결국 정신적인 압박감에서 벗어나지 못해 요양원으로 들어간다. 그녀는 나름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결국 스스로의 삶을 마감한다. 쉽게 더럽혀지는 하얀 도화지 같은 인물이다. 그 나약함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소설을 읽어 가며 그녀의 상처가 쉽게 치유될 수 없는 이유를 알게 된다. 사랑하는 언니의 자살 그리고 어려서부터 같이 자라온 연인 같은 친구의 자살은 그녀의 삶 온통을 지배했을 것이다.
그녀의 암울한 세계를 빛과 같은 존재로 그녀를 돕고 쉽어하던 와타나베는 요양원으로 그녀를 찾아간다. 나오코와 같은 병실을 쓰는 레이코 또한 사회에서 상처 받은 영혼으로 7년 동안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겪리 시키는 삶을 살고 있는 인물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하나 같이 삶의 환희보다는 살아내기 위한 자신만의 방법을 터득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느낌이 든다.
주인공의 현실 속에서 연인 미도리는 삶이 주는 무게를 낙관이라는 특이한 방식으로 살아간다.
결국, 친구의 연인을 사랑하는 이상 속 사랑과 자신도 모르게 이끌리는 현실 속 미도리와의 사랑 중 현실 속 사랑을 선태한 와타나베는 나오코의 자살이 또 한 번의 정신적 혼돈을 준다.
요양원에서 같이 만났던 레이코가 와타나베를 찾아와 나오코와의 마지막을 공유하고 소설은 끝났다. 인물들이 하나같이 독특하지만 미워할 수가 없다. 삶이라는 공간 속에서 자신이 살아내는 법을 갈구하는 듯한 인물들의 내면이 다채롭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평범하게 살아가는 정신적 힘이 경이롭게 느껴진다. '무엇이 삶을 이끌어 가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