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도시 기행] -유시민
정치인으로 익숙한 이름이지만 그가 책을 써낸 학자라는 생각을 못했었다. 그의 책은 유럽의 네 나라를 방문하면서 쓴 책이다. 흔한 여행기가 아니라 그의 말처럼 각 도시가 가지고 있는 건물들을 텍스트로 간주하고 건축물, 박물관, 미술관, 길과 공원 등 도시의 모든 것들의 해석을 돕는다. '도시의 건축물과 공간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생각과 감정과 욕망, 그들이 처해있었던 환경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다.... 도시는 그저 자신을 보여 줄 뿐 친절하게 말을 걸어 주지는 않는다.'
아테네에서 시작해 로마, 이스탄불, 파리로 향하는 여행 일정이다. 각국마다 4~5일간의 단기성 방문 여행기이지만 일반 여행기로 보기는 어렵다. 그가 말한 것처럼 각 도시의 건물이라는 텍스트를 역사와 문화에 대한 해석을 작가의 말로 들려준다. 책 속 사진은 작가의 방문한 모든 곳을 보여 주지는 못하지만 그의 아내가 찍은 사진이라니 조금 색다른 느낌이다. 부부에게 선물 같은 여행이었으리라.
아테네라는 도시를 '인생의 모진 풍파를 견디고 이겨내느라 기운을 다 써버린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는 말의 뉘앙스를 알듯 하다. 신화의 중심 배경이 되었고 문화의 중심지였던 아테네라는 도시는 현대에 들어 급속도로 발전된 다른 도시의 그늘에 가려 어느덧 열정적 젊은 시절을 다 보내고 노년을 보내는 사람의 형상인 것 같다. 아테네는 고대 유적을 간직한 과거의 공간과 현대 건물이 즐비한 현재의 공간 그리고 그 둘이 섞인 혼합 공간의 분리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파르테논 신전의 돌기둥에 대한 이야기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솔로몬 왕의 반지에 세긴 글의 지혜가 생각난다. 이 돌기둥들은 이 신전이 겪었던 기구한 운명을 몸으로 증언하고 있다. 달이 차면 기우는 것처럼 삶도 역사도 그런 자연법칙 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건축은 중력에 대한 투쟁이다.'라는 저자의 표현이 마음에 든다. 아테네의 건축물 중 에레크테이온 신전의 카리아티드(고대 그리스 신전 건축에서 여신상으로 만든 돌기둥)는 경이롭다. 6명의 여인들이 서로 다른 옷과 머리 모양 뒤태로 저마다의 개성을 들어내며 지붕을 받치고 있는 형상을 자세히 보니 돌로 치맛자락이 펄럭이는 느낌을 어떻게 만들어 내었는지 신기하다. 먼 곳에서 대리석을 배로 옮기고 도시의 가장 높은 언덕까지 운반한 후 깎고 다듬고 짜 맞추는 일은 돈과 인력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건축물이 그 옛날의 권력과 힘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들의 발달된 문명과 재력이 도시 국가 아테네를 만들어 준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그런 식으로 행사한 탓에 도시도 신전도 참담한 비극을 맞았다.'라는 말에 영원한 행복이나 영원한 비극은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신전은 사회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신의 권능이 아니라 사람의 지혜와 능력임을 증명해 보인다.'
'성벽은 두려움의 건축적 표현이다. 오늘의 화려한 성공이 내일의 몰락을 가져올 비극의 씨앗을 배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그런 방식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인류에게 또 다른 배움을 주는 교과서이다. 역사를 알아야 겸손해지는 것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세상에는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되는 일이 많다. 학자들은 경로 의존성이라는 개념으로 이런 현상을 설명한다. 우연히 어떤 길에 들어서고 나면 더 좋은 길을 알더라도 가던 길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역사에서 보여주는 경로 의존성은 개인의 삶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그래서 저자는 아테네는 의도적 도시 설계의 산물이 아니라 능력 부족으로 인한 부작위의 결과라고 이야기한다. 도로는 좁고 녹지 공간도 거의 없었지만 인구가 적을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20세기 갑자기 인구가 늘어나면서 아테테는 위기를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경로 의존적'으로 형성된 도시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사상이 태어난 곳(지금 이 순간을 즐기면 되는 것, 무엇을 위해서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근심하며 종종걸음을 친단 말인가),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머문 도시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다음 여행지인 로마는 대학시절 배낭여행으로 가본 곳이다. 그때도 생각했었다. 여행안내 책자에 소개된 장소를 눈으로만 보는 것보다 역사를 알고 봤더라면 보다 넓고 깊게 봤을 것이라고. 그때는 사진기로 스캔하는 듯한 설익은 여행이었다. 그래서 마음 한구석에 미련이 남아 있다. 당연히 그곳에 체류하며 살아간다면 훨씬 값진 삶의 경험이 될 수 있겠지만 차선책으로 역사를 알고 여행한 다면 저자처럼 더 값진 여행이 될 것이다. 알아야 제대로 보이고, 제대로 봐야 배울 수 있다는 말이 여행에서는 꼭 맞는 말 같다.
로마의 콜로세오는 로마 정치체제의 변화의 결과이며 상징이다. 트레비 분수 앞에 던졌던 동전도 기억난다. 바티칸 박물관에 초상화를 모셔둔 교황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는 종교가 인간 욕망의 그물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수없는 사람들이 이단자라는 이름으로 화영 당하고, 추방당했다. 역사적 심판관을 자처한 교황들의 사진이 과연 신의 이름으로 천국에서 영면하고 있을지 궁금할 뿐이다. 과학자 브로노에 대한 이야기는 슬프다. 피오르 광장 중앙에 망토를 걸치고 고개 숙인 그의 동상을 본 기억은 없지만 종교 앞에 희생된 과학자의 슬픈 자화상을 보여 준다. 브로노는 철학과 과학 이론을 통째로 부정하라는 교황청의 요구를 거부했다. 그러나 과학이 신과 창조에 관한 교황청의 신학적 입장과 공존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평생 유럽 도시를 망명자로 살았다고 하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코페르니쿠스 천문학 강의를 했으며 물리학 발전에 큰 영향을 준 <무한한 우주와 무한한 세계에 관하여>라는 책을 출간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베네치아에 초청받아 그곳에 잡혀 7년간의 종교 재판을 받았다. 자신의 학문을 통째로 부정하라는 교황청의 요구를 거부해 결국 화형 당한 불운의 과학자의 이야기다. 만약, 이런 뒤 배경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면 그전 스쳐지나갈 수도 있었으리라. 우리나라 세종 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의 동상 또는 거북선 앞에서 사진만 찍고 가는 외국인 관광객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신을 이해하고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좀 더 그 위인들의 삶을 알고 방문한다면 의미가 더 깊어지는 여행이 되는 건 당연하다.
세 번째 여행지인 이스탄불은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라고 한다. 이스탄불의 돌마바흐체 궁전을 보고 '명품을 버리고 짝퉁을 택하다.'라는 소제목에 궁금증이 일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그 명품이 무엇이었을까?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와 로잔 평화조약을 통해 국가로서 인정을 받아 첫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은 이스탄불을 터키 화 시킨다. 그전의 이스탄불은 다민족, 다종교, 다문화가 공존했던 다채로운 국가였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아타튀르크(투르그인의 아버지)'로 바꾸고 극단적 성격인 그는 이스탄불에 살던 다른 민족들을 서서히 이민 가게 만든 후 다양한 색채 대신에 단색의 도시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스탄불을 명품을 버리고 짝퉁을 선택한 나라라고 표현한 것 같다. 단, 한 명이 누구냐에 따라 세상은 보다 나아지기도 하고 침울한 어둠을 끌어내기도 하는 것이다. 세종대왕이 조선의 500년 역사의 토대를 마련해준 인물이라 평가 한 이유를 알 듯하다.
마지막 여행지 파리는 너무도 익숙해 어떤 시선으로 여행을 했을지 궁금했다. 그곳 에펠 탈, 개선문, 대영 박물관 그리고 루브르 박물관을 봤었기에 저자의 텍스트를 읽어 내는 힘으로 다시 파리의 건물들 보았다. 인류 문명의 최전선이라 불리는 이유가 문학의 힘과 프랑스 민주주의 때문 일 것이다. 하지만 생 미셰 다리 돌머리의 꽃묶음들의 사연을 통해 프랑스 민주주의도 아직 완성형이 아니라는 저자의 말을 이해할 만하다. 프랑스는 미국의 도움을 받아 독일의 점령을 벗어날 수 있었으나 자신들의 식민지는 유지했다고 한다.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원한 알제리 민족해방을 위해 독립투쟁을 했다. 생 미셸 다리 근처 센강 좌안에서 파리와 인근 지역에 사는 3만의 알제리 인들은 집회시위를 했으며 프랑스 정부는 알제리 사람 야간 통행을 금지했다. 이 과정 중에 북아프리카 이민자 1만 명 넘게 체포되고 수백 명이 죽었으며 진압 과정 중 강물에 사람을 빠트리기도 해 수백 명이 죽은 곳이 생미셸 다리 근처라고 한다. 그래서 매년 진상 규명 요구와 희생자 추모를 위해 다리 돌머리에 꽃묶음들을 놓는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프랑스 민주주의를 미완 성형이라 부른 것 같다.
노트 담은 종교시설과 정치의 중심지라고 한다. 하지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무너지고 제건 되기를 반복하다가 19세기 초 철거 여부까지 거론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작가 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이라는 책이 (우리에게는 '노트르담의 꼽추'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고 복원 기금 조성을 가능하게 했다고 한다. 결국, 노트르담은 프랑스 국민과 파리 시민에게 정체성을 집약한 문화 아이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란다. 한 권의 책이 문화를 만들고 사람의 마음을 만들고 역사를 만들기도 한다. 그 힘을 가진 사람이 진정한 권력자가 아닐까? 가끔 일요일 오전 '노트르담 드 파리' 뮤지컬을 듣는다. 여전히 매력적인 뮤지컬이다. 수년 전에 보았던 공연이지만 여전히 그 매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프랑스는 시간이 지나도 싫증 나지 않는 문화를 가진 나라인 것 같다.
파리 에펠탑은 대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세계 박람회의 관문으로 쓰기 위해 만든 324미터 높이의 철탑이란다. 1889년 구타브 에펠에 의해 완공되었고 20년 후 철거하려고 했으나 시민들의 반대로 유지된 탑이다. 당시 철골의 탑을 싫어한 지식인들은 파리 정부에게 비난을 했지만 결국 시민들의 사랑으로 그 위치를 잡은 것이다. 그래서 파리하면 누구나 에펠탑을 떠오르게 만든 역사의 아이콘이 된 것이다. 결국, 역사는 시민이 만들어 간다. 소수의 엘리트가 만들어 내는 건 아니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간다.
루브르 방물관은 그 규모가 너무 커서 가도 후회 안 가도 후회라는 저자의 말이 이해가 간다. 안 가면 당연히 보지 못해 후회가 되지만 들어가도 다 못 봐서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다. 특히, 모나리자 그림은 보기 정말 힘들다. 수많은 인파의 물결을 헤엄치듯 들어가도 볼까 말까 했었는데 2019년도 여전히 그 상태를 유지한 걸 보면 대단한 힘이다. 1987년 루브르 박물관 표식인 유리 소재 피라미드는 중국계 미국인 이오밍 페이가 디자인한 작품이라 한다. 이는 프랑스 인들의 진취적 태도와 예술적 안목을 보여 준다고 한다. 미국에 프랑스가 선물한 자유의 여신상이 미국을 상징하는 심벌이 되었고 미국인이 디자인한 유리 피라미드가 프랑스의 자부심인 루브르 박물관을 상징한다. 하지만 저자의 의견 중 '루브르를 지배하는 것은 작품의 아름다움과 예술가의 열정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과 권력의 횡포, 집단적 허영심이다.'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작년에 봤던 책 중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와 외교관 이야기>라는 책이 떠오른다. 결국 우리 문화제를 찾아오긴 오지만 대여 형식으로 찾아올 수 있었으니 훔쳐간 나라에게 주인인 나라가 억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베르사유 궁전을 유한계급의 정신세계와 문화 양식을 극단적인 형태로 보여 주는 곳이라는 표현이 그 답다는 생각이 든다. 유한계급 즉 생산적 노동은 하지 않고 그 사실을 자랑하기 위해 자신의 부를 '과시적 소비'로 표출하는 풍속을 보여주는 베르사유 궁전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슬프다. 사람의 길지 않은 삶에서 남보다 더 많이 가지고 누리고 살면서도 끊임없이 탐욕을 부리는 게 인간 본성 중 하나다. 시간의 길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우리가 내일 떠날 집에 벽지 바르지 않듯이 가구를 사지 않듯이 곧 떠날 지구별에 나만을 위한 소유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타인이 보인다. 누군가의 말처럼 내가 태어날 때보다 내가 죽을 때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도록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한때 베르사유 궁전의 주인들은 이미 역사가 되었다. 그들의 이기심과 사치 그리고 우매함도 함께 교훈으로 후손들에게 전해주는 건 아닐지.....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한 독서다'라는 말처럼 저자의 서서한 여행을 통해 나는 앉아서 여행을 했다. 세상 곳곳이 경이롭다. 오늘이 인생 최고의 날이고 가장 행복한 날이다. 책을 통해 저자들의 눈으로 하는 여행 또한 단일한 삶의 단비가 되어 마음의 화단에 꽃이 피어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