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권 독서

[발터 벤야민의 공부법]- 권용선

by 조윤효

벤야민의 공부하는 사진 책 표지에 이끌려 빌린 책이다. 세상을 등지고 혼자만의 세계에 몰두해 있는 그의 아우라가 끌린다. 공부란 삶을 배우는 그 자체이자 태도라는 말도 끌린다. 삶은 공부하는 자에게 의미 있는 공간을 준다. 벤야민에 대한 연구를 책으로 낸 저자의 생각도 궁금했다. 벤야민이라는 사람을 연구하고 그의 인간적 매력과 공부하는 삶을 치열하게 살아낸 흔적을 글로 써낸 것 또한 또 다른 삶을 만들어 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독일계 유대인인 발터 벤야민은 지식-망명인이다. 독일 내 반유대 정서와 파시즘으로 인해 파리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을 준비하는 과정 중 스페인 한 국경 근처 마을의 모텔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안타깝게도 벤야민의 죽음의 원인이었던 스페인 국경 봉쇄가 그의 죽음 얼마 후 해제되었다고 한다. 1940대는 유대인계 지식인들에게 생의 벼랑 끝 같은 시대였을 것이다. 부유한 독일계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강한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약한 지식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제한적이었으리라. 그는 비평가이자 역사가로서 다재다능 한 능력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개인적인 불행과 세상을 견디는 방법으로 공부를 선택한 그의 치열함이 느껴진다.


미완성으로 끝난 파리에서 연구를 시작한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미국 망명 후 연구할 '메트로폴리탄 프로젝트'는 결국 빛을 발하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남게 된다. 그의 공부법은 보들레르, 푸르스트, 카프카의 시선으로 그들을 자기화하지 않고 그들 속으로 자신이 들어가 그들 방식으로 연구를 했다고 한다. 그의 공부법은 여행, 독서, 수집, 글쓰기를 지속하는 것이었다. 공부가 삶을 살아가는 유일한 방식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는 한 방울의 물이다. 세계의 자본주의가 사람들의 물질세계를 장악하고 파시즘이라는 극단적 사상이 전쟁을 만들어내는 세계적 분위기 속에 바위를 뚫는 물이고자 했다. 작은 물방울이 단단한 바위를 한순간에 깰 수는 없지만 개개인의 지속되는 물방물들은 구멍을 만들고 바위에 금을 만들고 결국 시간 앞에 그 철옹성 같은 바위를 깨는 것이다.


'인간의 언어와 문자는 인간에게 여전히 남아있는 미메시스(모방적 속성)의 긍정적 능력이다'라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기술 문명이 발달하고 지식이 대중화되며 사람들의 감각은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었다. 경험과 모방으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이전 시대 방식을 잃은 사람들은 쉽게 대중화되고 기꺼이 상품화가 된다'는 말은 서글픔을 불러온다.


'여행은 낯설고 새로운 것과의 만남을 통해 무엇인가를 배우고 그 과정 속에서 내가 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 언젠가는 일상의 삶이 원래의 출발지로 되돌아가야만 한다는 점에서 삶의 예외적인 방식이다. 낯선 곳의 경험으로 익숙한 삶의 공간을 새롭게 발견한다.' 벤야민은 이탈리아 나탈리, 러시아의 모스크바, 프랑스의 파리를 지도 없이 여행한다. 낯선 도시로의 여행은 길 헤매는 훈련을 통해 더 큰 배움을 얻게 된다는 벤야민의 방식이다. 이탈리아 나폴리에서는 공동체적인 삶의 긍정성과 의미를 발견했다고 한다. 모스크바에서는 예술의 정치화를 느낄 수 있었으며 독일의 국가 사회주의와 러시아의 국가 자본주의의 차이를 인식한다. 독일의 국가 사회주의 체제는 제 일 당이 된 나치가 사람들이 원하는 것과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시켜 주었고, 복지 충족은 물론 사적 소유를 인정했기에 독일 보통 사람들은 쉽게 나치의 반유대 주의 선동에 흡수되었다고 한다. 집단의 광기가 한 곳으로 쏠릴 때 피의 역사를 양산할 수도 있다.


나폴리 여행 중 그의 말이 인상 깊다. '한 도시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은 그 도시에 체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낡은 방법이 되어간다. 여행자에게 거류민으로 신분이 바뀌게 되면 헤매기는 일상적인 산책으로 옮아 간다.' 파리에 여행자에서 거류민으로 바뀌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그 도시를 이해하기 위해 곳곳에 건물을 관찰하고 현재를 존재하게 만든 과거를 이해하기 위해 파리 국립 도서관 문서고를 연구실로 하고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윤곽을 잡기 시작한다. 그는 항상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어떻게 만들어졌을 까?'라는 질문을 담고 철학적 노매드(유목민)로 살아갔다. 아케아드는 19세기 산업의 사치가 만들어낸 발명품이다. 건물과 건물 사에 위에 유리와 철골조로 지붕을 만들어 마치 하나의 도시가 축소된 세계처럼 보인다. 더 나아가 자본주의 세계에 대한 통찰을 위한 것이었다. 철골과 유리를 사용한 당시로서는 첨단의 건축물을 사용한 건축 방식을 이야기한다. 첨부된 사진들이 이해를 잘 돕는다. 그는 19세기 도시 여행을 통해 사람들이 거울을 통해 현실의 모습을 보는데 익숙해 현실과 비현실의 격차가 빠른 속도록 이동하고 있다고 했다. 참된 세계를 보지 못하고 거울을 통해 세상을 보는 잠자고 있는 사람을 깨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거울을 깨고 각성시키는 것이 19세기 도시를 여행하는 그만의 중요한 이유였다.


벤야민은 프르스트, 보들레르, 카프카가 사용했던 개념을 차용해 삶이나 글쓰기의 태도나 방식을 배웠다. 다른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가 되는 것이 그의 공부법이었다고 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프르스트는 성소수자였고, 상징주의라 불리는 보들레르는 시대와의 불화를 글쓰기의 근거로 두어 권력자와 다수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있고자 했다. 카프카는 벤야민과 마찬 가지로 유대계 독일인으로써 그의 책은 소수자가 주인공이다. 즉 벤야민은 자신이 지닌 능력, 감각과 기억을 고유한 방식으로 현재화했다. 그는 또한 사소하고 하찮은 사물과 사람에게 시선을 돌리며 신체의 한계를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을 배우기 위해 부단히 연습했다고 한다. '벤야민은 프루스트와 보들레르와 카프카의 고유한 글쓰기 능력 곧 기억을 발굴하여 펼쳐내거나, 도시를 산책하면서 베일 위에 감춰진 무엇인가를 찾아내거나 세계를 알레고리화 하는 특이성을 발견하는 법을 배웠다. 그때마다 매번 스스로 다른 사람이 되는 경험을 해 나갔다.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은 존재의 변이를 실험하는 것, 이질적인 특성들로 자신을 구성하는 연습과 다르지 않다. 이것이 벤야민의 독특한 공부법 중 하나다.'


깨어나는 것 즉 각성을 역사 서술의 핵심으로 본 그는 프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보여 주는 하나의 전 생애를 최대한의 집중력을 가지고 현재 속에서 포착하려고 한 부단한 시도를 본 것이다. 그의 삶은 어떻게 보면 당시의 반유대 감성의 기류와 파시즘으로 전쟁의 기운 때문에 역사 학자로서의 삶의 방식을 더욱 절실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역사란 한두 명의 영웅이나 권력을 가진 자들의 명령에 따라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공동체가 처한 상태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비마다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수많은 사람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다. 역사는 단순히 지나간 과거의 축적물이 아니다. 그것을 통해 지금 여기에 펼쳐지는 삶의 진면목을 발견할 때 의미가 있다.'


과거의 기억 방식을 통해 현대를 새롭게 해석하여 미래 삶을 위한 실천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역사 즉 역사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실천방안을 찾아내는 것이 그 시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던 같다. 현재 상태의 근거가 되는 역사를 이해함으로써 현실에 대한 각성을 꾀하는 것이다. '지금 가 덮쳐오고 있는 불행이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에 걸쳐 준비된 것인가?' 이를 동 시대인들에게 알리는 것이야 말로 역사가가 진정 바라는 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감금당하고 유대인의 존재가 거부되는 사회 속에서 개인이 이해할 수 없는 집단 사상의 폭력을 극복하기 위한 법이 그에게는 역사 연구였을 것이다. '자신을 고집하지 않고, 끊임없이 다른 무엇인가가 되고자 한다는 점에서 글쓰기는 공부의 한 과정이며 표현이다.' 당시 독일 최고의 비평가를 꿈꾼 그의 글은 에세이 형식이었다. 그 때문에 당시 지식인들의 권위를 떨어트린다는 반대를 맞기도 했다. 파편이나 부분에서 가치를 발견하는 알레고리적 특성을 사용한 보들레르와 무의 시적 기억을 통한 프르스트 기법 모두 예술 작품을 분석하고 역사를 기술하며 현실을 비평하는 이론의 개념으로 사용한 그의 연구 기법은 난해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처한 세계에서 지식- 망명인으로 살아갈 그에게 삶의 유일한 방식이 연구하고 글 쓰는 것이었으리라. 글을 통해 인간 세상의 무너진 도덕적 감각을 각성하게 하고픈 절심함이 보인다. 결국, 안전하게 자신의 두 발을 둘 곳을 보장받지 못해 생의 문을 스스로 닫아 벌릴 수밖에 없었던 그에게도 신은 삶의 월계관을 부여해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자신을 잊고 저자의 눈으로 책을 볼 수 있는 힘과 과거의 작은 파편들로도 현재를 해석할 수 있으며 그리고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힘을 가진 그의 공부법을 배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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