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죽는 법을 모르는 이는 잘 살지 못한다'라는 문구는 살아가면서 꼭 한 번은 맞게 될 질문일 것 같다. 세네카의 저서 8권에서 죽음을 다룬 부분을 발췌해서 책으로 엮었다. 세네카는 폭군 네로의 스승이었으나 말년에 자살하라는 왕의 명령으로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 그의 아내 또한 남편과 함께 삶을 스스로 마감했다. 타인에게 죽음을 권유받은 철학자의 당시 심정을 이해하기 위해 그의 죽음에 대한 사상이 묻어나 있는 부분을 제임스 롬이 발굴해낸 것이다. 내가 느끼는 세네카의 심정은 비통하기보다는 담대함이었을 것이다. 그는 죽음을 준비해오는 삶을 살았고, 영혼을 더욱 자유롭게 해 준다는 죽음을 긍정한 구절이 많기 때문이다. 평생을 폐결핵을 포함한 호흡기 질환과 천식으로 고통받은 삶은 그로 하여금 늘 죽음을 인식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 같다. 주어진 환경이 사람을 만들기도 한다. 그에게 있어 죽음의 주제는 삶의 주제로 일생의 화두가 된 것이다.
세네카는 스토아학파였으나 그 반대파인 에피쿠로스 사상도 차용했고, 불멸과 인간 영혼의 무한한 환생이라는 플라톤 철학의 주체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스토아학파는 부와 자유를 '아무래도 좋은 것, 행복으로도 그 반대로도 이끌지 못하는 것으로 여겼다. 또한 자유와 건강에 대해서 '우주를 다스리고 진정한 행복을 일으키는 신적 이성과 조화를 이루며 자신의 생각과 윤리적 선택을 지켜 낼 수 있을 때만 가치가 있다.'라고 생각한다. '죽음이란 단지 다른 물질의 부분이 되어 새로운 생명을 갖게 될 구성 요소들로서의 해체 일 뿐이다.'라는 에피쿠로스 사상도 그의 책은 담고 있다. 25년 동안 삶을 성찰하는 8권의 책을 세상에 선물하고 간 그의 사상은 왠지 겨울철마다 엄마가 가족의 건강을 위해 밤새 고 아주 신 곰국 같다. 살며 느끼는 삶의 본질과 죽음을 생각의 냄비 속에 오랫동안 끓이고 시간을 들여 인류의 후손들에게는 대접한 인류의 스승 중 한 명이 세네카라는 생각이 든다.
'큰 틀에서 보자면 모든 것이 괜찮다.' '모든 것이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그의 기본 사상이다. 지금의 작고 큰 고민들도 인생의 긴 항로에서 보자면 사소한 것 중 하나일 뿐이다.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 과거를 보고 지금의 결정이 미래의 삶의 항로가 바뀔 수밖에 없는 연결성이 당연하다.
'삶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인생은 죽음으로 가는 여정일 뿐이며, 인간은 태어나는 날부터 매일 죽어가기에 살아가면서 죽음을 연습해야 한다.'라는 철학의 정점을 이야기한다. 죽어감이란 살아감의 본질적인 기능 중 하나고 배워 익히거나 반복을 통해 단련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이다. 우리는 대개 경고 한번 받지 못하고 오로시 단 한 번의 죽음을 경험하기 때문에 미리 대비하고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그의 조언이 왠지 모르게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가는 또 하나의 마스터 키가 될 것 같다.
<인생의 짦음에 대하여>, <마음의 평온에 대하여>, <도덕적 서간집>, <마르키아에게 보내는 위로문>, <분노에 대하여>, <섭리에 관하여>, <자연 연구>, <폴리비우스에게 보내는 위로문> 이 그가 삶의 성찰로 만들어 낸 책들이다. 루킬리우스에게 보내는 서간체이지만 실제로는 로마 시인 또는 모든 인간을 향해 보내는 글이다. 인생의 끝을 잘 준비하는 법을 위한 이 책의 목록은 '준비하라, 두려워하지 마라, 후회하지 마라, 전체의 부분이 되어라, 스스로에게 자유를 주라'라는 목록으로 죽음을 다룬다. 죽어가는 한 인간을 날개를 가진 유골이 쓸어 올리듯이 바라보는 형상이 장이 넘어갈 때마다 길을 안내한다. 마치 책을 읽으면서도 한순간도 그 주제를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듯했다.
'우리는 죽음을 나중에 오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죽음은 삶의 이전과 이후에 온다. 우리 존재 이전에 존재했던 것은 모두 죽음이다. 삶을 끝내는 것이든 혹은 삶을 시작해 본 적이 없는 것이든 무엇이 문제인가? 어느 쪽이든 결과는 그저 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장 인상 깊은 사상이다. 우리가 존재하기 전인 즉 태어나기 전도 죽음과 닮아 있다. 생의 시작과 끝의 연계성을 고찰한 그의 사상이 더 크고 위대해 보이는 이유는 미처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것까지 사색의 연장으로 발굴해 내고 정보의 그릇에 닮아내는 힘 때문일 것이다. '죽음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머물고 있었던 평화로 우리를 되돌려 놓는다. 누군가 죽은 이를 불쌍하게 생각한다면 그 사람더러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들 돌 불쌍히 여기라 하라.' 아이를 잃은 어머니나 소중한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위안의 글을 보내기도 했던 그의 글은 분명 칠흑같이 어두운 절망 속에서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작은 빛이 되었으리라.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 두 공간 사이에 위치하지만 나쁨이라는 외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부정적 느낌을 준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자기를 보존하고 건사하고자 하는 욕망은 소멸에 대한 반감과 아울러 뿌리 박혀 있어서 죽음은 그 외관이 나쁨으로 인식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의 추신 글이 재미있어 기록해 본다. '네가 죽음 보다도 이 장문의 편지를 훨씬 더 싫어할까 봐 두렵다.'
죽음을 구걸하는 사람은 분노나 광기에 의해 갑작스레 일어나지만 고요하고 기쁘게 기다리는 사람은 꾸준한 판단으로 생긴 평온을 누린다. 당시 어떤 사람들에게는 죽음이 고문과 빈곤과 형벌과 피로에서 그들을 구원해준 삶의 마지막 행운일 수도 있었으리라. '죽음이 우리 손안에 있다면, 우리는 그 누구의 손 안에도 갇혀 있지 않다.' 죽음을 고요하고 기쁘게 기다리는 자세는 그 죽음을 우리 손안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가진 삶의 또 다른 중요한 카드다.
정신이 숭고한 수준에 오르면 육체의 애호자가 아니라 관리자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육체의 지배는 우울하며 요구 사항이 지나치게 많다. 절제된 정신의 소유자는 육체를 뒤로 하지만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는 거기서 뛰쳐나간다고 한다. 육체를 관리할 수 있는 정신의 힘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육체의 모든 욕구와 욕망에 휘둘리는 삶을 막을 수 있다. 갖고 싶은 욕망, 먹고 싶은 욕망, 편해지고 싶은 욕망들을 부추기는 사회에서 오직 정신의 맑은 기훈이 삶을 평온하게 살아갈 방법을 알려 줄 듯하다.
'나의 하루는 내 삶 전체의 축소판이기 때문에 그렇게 실천한다. 맹세컨대 나는 하루를 마지막 인양 꽉 붙잡지는 않지만 마지막 일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스티브 잡스의 말이 떠오른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 일에서 판단을 내릴 때 현명한 길잡이가 된다고 한다. 인생의 마지막 날 사소한 감정과 서운함을 쏟아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주어진 하루를 숭고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다. '살아있는 것은 그릴 큰 문제가 아니다. 당신의 하인이나 동물도 하는 일이니 영예롭게, 신중하게 용감하게 죽는 것 이제는 그것이 중요한 일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삶의 길이가 아니라 내게 주어진 삶의 질을 올리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죽을 용기 없이 사는 삶은 노예 신세이다.' '우리는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충분히 사는 것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오래 살게 돕는 것은 운명이지만, 충분히 살게 돕는 것은 자기 자신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오래 사는 것은 내 권한이 아니지만 얼마나 오랫동안 진정으로 존재할지는 내 권한이기 때문이라는 철학자 세네카의 말이 가슴 깊이 남는다. 그는 이야기한다. 지혜를 얻을 때까지 사는 게 완전한 삶이라고. 그 목표에 도달한 사람은 가장 먼지점이 아니라 가장 위대한 지점에서 인생을 끝맺는다고.
'하루하루를 하나의 삶으로 여겨라. 그렇게 하는데 익숙해져서 매일의 삶을 완전하게 사는 사람은 걱정에서 벗어난다.' 흔히 알고 있는 이야기만 자주 잊는다.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잘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삶의 철학을 그 시절에도 이야기해 오고 있다. '잘 죽는 것은 잘 살지 못하는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이도 하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동의를 얻는 삶을 추구해야 하는데 죽음만은 자기 자신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세네카의 죽음에 대한 시선은 가볍지도 그리고 무겁지도 않다. 단지, 우리가 당면할 그 죽음을 어떻게 우리가 잘 살아가기 위한 도구로 쓸지는 개개인의 숙제일 것 같다. 오늘도 신이 주신 숙제의 한 부분인 인생 책 귀퉁이를 접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