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 네덜란드라는 나라는 왠지 모르게 친숙하다. 대학시절 한 달 유럽 배낭여행 중 그곳에 2박 3일 정도 머물렀었다. 그때의 암스테르담은 어두운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여행자의 몸으로 작은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수재 햄버거 맛은 여전히 생생하다. 막 만들어 낸 따뜻하고 큼직한 햄버거와 낯설고 지친 상태의 마음이 어우러져 잊지 못한 맛을 만들어 낸 것 같다. 저자의 네덜란드 여행에 대한 의미가 인상 깊다. '내 삶이 한 장의 종이라면 반을 접어 손바닥으로 꾹꾹 누른 다음 펼쳤을 때 생기는 그 중심선을 네덜란드로 잡고 싶었다.' 인생의 특정 시간을 삶의 반으로 규정하고 새롭게 걸어가기 위해 옷매무새를 다듬듯이 여행이 삶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휴게소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길과 길 사이에 잠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에서 적당한 낯섦으로 몸과 정신에게 긴장의 끈을 풀어주는 것이다.
그녀는 청춘 시절 보름 동안의 네덜란드 여행이 살아가면서 다시 그곳으로 가서 정착해 살고자 하는 꿈을 키워준 계기가 된다. 결국 40살 무렵 네덜란드 여행이 아닌 1년 삶의 경험이 바로 책으로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그녀의 책 제목이 이야기하는 듯하다. 삶의 어떤 곳이든 내가 원한 다면 네버랜드로 만들 수 있다고.
책 사이사이에 소개되는 네덜란드의 풍경은 전원 교향곡을 듣는 듯하다. 집 안 까지 환히 들여다 보이는 창문과 그 아래 아기 자기한 꽃들 그리고 가끔 보여 주는 사슴이나 고양이, 오리가 자연 속에서 어우러져 자신의 모습을 굳이 숨기지 않아도 마음 편해 보이는 일상들이 드러 난다. 집안 이 다 보이는 창을 커튼으로 가리지 않는 이유가 청렴결백을 제일의 가치로 여기는 국교인 칼 뱅교의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소수자의 배려가 공기처럼 당연한 곳이고 삶의 검소함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생활태도를 느낄 수 있다. 화려하지 않은 옷차림과 대조적으로 정원의 꽃들을 화려하게 삶의 장식으로 대하는 그들 자세가 왠지 아름답게 느껴진다. 음식 또한 다양성이 아니라 삶의 원동력으로 필요한 만큼만 섭취하는 듯하다. 그래서 우리가 말하는 소위 맛집이 없고 음식의 숫자가 제한 적이라고 한다. 우유와 시리얼 그리고 차가운 빵 조각이 주로 아침, 점심 식사라면 저녁은 미지근한 수프나 고기 정도가 일상이라고 한다. 외식을 하더라도 더치 팬케이크와 감자튀김인 프릿 정도가 일반적이라 네덜란드 인에게는 미식 DNA가 없는 건 아닐까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실용적이고 담백한 삶을 지향하는 네덜란드인에게 음식을 만들고 준비하는 에너지를 아껴 집을 꾸미고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한 열정을 위한 이유 있는 전략인 것 같다. 겨울이 긴 나라에서 일 년 중 절반의 풍요로운 햇살은 자연을 제대로 즐기고 싶은 이들의 소망이 일상에 심어져 있기 때문일 것 같다.
그녀의 글들은 아름답다. 네덜란드에서 보내는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의 일상을 아름다운 글들로 그녀의 사색들을 잘 녹여낸 것 같다. 마치 맛있는 버터향을 가득 담은 따끈한 핫케이크 맛 같다. 담백한 네덜란드의 일상에 그녀의 버터 향 가득한 글들이 잘 조화가 되어 최상의 맛을 만들어 낸 듯한 느낌이다. 네덜란드의 동부 작은 도시의 아른험에서 미피의 도시 위트레흐트 그리고 남쪽 끝의 마스트리흐트 도시를 소개해준다. 도시에 있는 미술관, 도서관, 박물관 그리고 민속촌뿐만 아니라 축제 이야기는 흥미롭다. 특히, 미술관의 노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든다. 번잡한 시내나, 세련된 펍, 소위 힙하다는 카페와 미술관과 축제 현장에서 만나는 노인들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와 삶을 즐기는 방식이 우리와 사뭇 다르다. 삶을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예술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하고, 나이가 들어도 젊은 주류의 흐름을 낯설해 하며 뒤로 물러 서 있기보다는 함께 그 흐름을 타고자 하는 적극성이 보인다. 그게 삶이다. 노년이 되면 삶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야 하는지를 보고 자란 젊은 사람들은 당연히 그 뒤를 밝아가며 나이 들어 감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책을 좋아하다 보니 네덜란드의 마스트리흐트 도시에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 다운 서점 셀렉시즈 도미니 카넌'애 대한 이야기는 솔깃하다. 옛 교회를 개조해서 우아하고 고요한 느낌을 주는 곳에 위치한 교회에 서점이 손을 모으고 정좌하는 듯한 느낌이란다. 이 때문에 7년 전에 갔던 그곳을 다시 방문한 저자의 기분을 느끼고 싶다. 물론 그녀의 말처럼 관광지로 알려지면서 그 전의 고풍스러운 느낌이 다소 감소되었을 지라도 가장 신성한 종교적 건물에 세상의 지혜가 가득 담긴 책들의 합창이 들릴 듯하다.
데벤터르 도시의 찰스 디킨스의 축제는 인상 깊다. 그저 마을 사람들이 찰스 디킨스 작품을 좋아해서 일 년 중 축제일을 정해 마을 사람 모두가 작품 속 인물로 변장하고 축제를 즐긴다고 한다. 스쿠르지 영감의 복장과 크리스마스 캐럴의 나오는 인물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이를 즐기는 관광객이 상상 속의 마을과 현실 속의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이색적 풍경이 30년을 넘게 이 축제를 이끄는 힘이었으리라.
저자의 글 중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공감이 간다. 네덜란드의 평은 극과 극이라고 한다. 복지 국가이자 소수 민족에게 관대한 반면, 마약이 자유롭고 성에 대한 자유분방 함이 삶의 끝을 향한 사람들에게는 왠지 모를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 같은 느낌이다. 사람도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없다. 단지 나와 그가 주파수가 맞으면 서로의 대화 속에서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내는 것이고, 맞지 않는 주파수를 가진 사람과의 대화는 잡음을 낼 뿐이라 마음이 거부한다는 말이 일리가 있다. '결국, 어떤 모습을 더 많이 보고, 겪을지 조차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네덜란드의 밝은 부분을 더 많이 보고 동경해온 저자의 선택이 결국 1년의 삶을 살고자 하는 결정을 만들어 낸 것이리라.
헤이그 밀사는 학교 역사시간에 언급되던 내용이기도 하다. 이준 열사의 이야기와 안네의 일기의 배경이 된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보며 역사 앞에 힘들지 않게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감사함으로 삶을 대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저자의 일기장 이름을 안네 라 칭하고, 내성적이고 조용한 저자의 유년기를 보낸 이야기가 그녀의 아름다운 글의 배경이 된 듯한 느낌이 든다.
기록은 사람을 깊은 사색으로 이끈다. 그 기록의 길이 길어질 때 길이 보일 수 있다. 시기별 삶의 소소한 감정과 느낌을 글로 남겨 둘 때 우리는 우리 삶의 또 다른 여행기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몸이 있는 곳이 내가 있는 곳이 아니라 내 생각이 머문 곳에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