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분류의 잣대로 나눈다면 지구인과 외계인이라는 큰 틀 다음으로 나눌 수 있는 틀은 남자와 여자라는 분류를 들 수 있다. 흔히들 이야기한다. 인류 역사는 남성 중심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저자 김정미 씨가 찾아낸 역사 속의 여성들의 이야기는 흙속 진주처럼 잘 닦아 놓으니 여자의 존재 가치를 끌어올린 수많은 여성들이 보인다. 책을 펼치자마자 하얀 여백 공간의 한 중심에 '사랑하는 나의 엄마께'라는 글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여자인 저자가 같은 여자인 어머님께 바치는 책이다. 당신의 존재가 저자의 눈을 뜨게 하고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낼 힘을 주신 것에 대한 헌정일 것이다.
책은 4개의 큰 단원으로 나눌 수 있다. 세계사를 움직인 여성 혁명가, 시대를 뛰어넘은 천재적 재능, 권력을 움켜쥔 철의 여인, 그리고 역사를 풍미한 미적 아이콘이라는 주제는 읽기 전부터 설렘을 부른다. 역사 속에 자신들의 발자취를 남긴 그녀들이 궁금해 책을 읽기 전부터 사진들을 스캔하듯이 전체 책을 훑어보았다. 다양한 시대에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낸 여성들이다. 훌륭하다 칭할만한 여성들도 있고 시대의 흐름 속에 희생이 된 동정을 일으키는 여성들도 있다. 여성이라는 이름 앞에 아름답다는 수식어로는 부족할 여인들도 있다. 하지만 공통적인 특징은 그 시대에서 요구하는 여성상으로 살아가기를 거부한 여인들이다. 자신의 모습이 사회 속에서 수용되지 않아도 자신의 색깔을 맘껏 드러내는 용기가 그녀들 삶의 역사를 기록에 남기게 된 것 같다.
세계를 움직인 여성 혁명가로 레이디 고다이버, 잔다르크, 메리 울스턴 크래프트, 해리엇 티브 먼, 락슈미 바이, 에멀린 팽크 허스크, 로자 룩셈 부르크, 알렉 산드라 콜론타이, 레이철 카슨의 이야기를 보여 준다. 그녀들의 발자취와 사진들이 함께 실려 있어 더욱 매력적이다. 몇 명을 빼고는 이름이 생소하다. 그녀들의 이름들을 적어나가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리고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성 혁명가로 자신의 삶을 불태웠을 다른 많은 여성의 존재를 의식해 본다.
농민에게 과도하게 부과된 세금의 부당함을 영주인 남편에게 설득한 레이디 고다이버.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절대 하지 못할 일을 요구한다. 옷을 벗고 말을 타고 마을 한 바퀴를 돌면 농민들의 세금을 내려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그녀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이 사실을 안 마을 사람들은 창문에 커튼을 드리우고 어느 누구 하나 밖을 보지 않는 의리를 보여주어 결국 남편 또한 그녀의 마음에 영향을 받아 훌륭한 영주가 되어 사람들이 살기 좋은 마음로 만들었다고 한다.
여성에게 정당한 권리를 요구했던 메리 울스턴 크래프트는 '프랑 케슈 타인'을 쓴 메리 윌스던 크래프트 셸리의 어머니라고 한다. 참정권이 없던 여성은 남편과 아버지에게 복종하고 가정을 가꾸는 일만이 최상의 일이라 치부되는 세상에서 자신의 뜻을 드러낸 여성이다. 주머니 속 송곳은 결국 바지를 뚫고 나온다. 마치 그녀의 삶이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사회를 두껍게 덮고 있는 편견의 막을 비집고 나온 듯하다. 흑인 여성 해리엇 터브먼은 영웅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납치되거나 팔려온 노예들의 삶은 비참함 그 자체다. 남부의 농장에서 강제 노동을 하던 흑인들은 북부 또한 산업화가 시작되어 노예의 일손이 필요한 시기를 맞는다. 결국, 흑인의 자유가 북부의 노동력 부족을 해소할 수 있는 경제 원리와 함께 작용해 노예 해방에 대한 이론이 생겨난 것이다. 씁쓸한 이유야 어찌 되었든 남부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해리엇 티브만이 1850년에서 1860년까지 19차례나 3백 명이 넘는 흑인을 탈출시켰다고 한다. 백인 주인에게 몽둥이로 맞아 생기 이마 중앙의 흉터는 그녀가 살아온 신념을 보여주는 것 같다. 볼품없는 옷을 걸치고 그녀가 탈출을 도와준 흑인 가족들과의 사진 속에서 진정한 작은 거인을 보았다.
미국의 해양 생물학자인 레이철 카슨은 그녀의 책 '침묵의 봄'을 통해 DDT화학 약품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게 했다. 당시, 관련된 기업과 무지한 정부는 그녀의 의견을 무시했고 심지어 조롱까지 했지만, 수년간의 조사와 제시된 근거 자료로 마침내 DDT 남용이 환경과 생태 그리고 인간의 건강까지 어떻게 악영향을 줄지에 대해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심어 주어 화학 약품의 사용 제한을 끌어낸다.
시대를 뛰어넘은 천재적 재능의 여성들로 고대 그리스 여성 서정 시인인 사포, 최초로 여성 독자적인 여성 수도원을 만든 힐데가르트 폰 빙엔, 인상주의 화가들의 모델이자 화가였던 프랑스 여성화가 쉬잔 발라동, 프랑스 패션의 디지이너 코코 샤넬, 추리 소설가 애거서 크리스터, 영화 사상 가장 뛰어난 감독이라 불리는 레니 리펜슈탈, 미국 여성 사진가 마거릿 버크 화이트, 미국 흑인 재즈 가수 빌리 홀리데이를 차례로 만날 수 있다.
책을 읽기 전 둘러본 사진에서 레니 리펜 슈탈이 손기정과 찍은 사진을 보고 연계성이 궁금했었다. 그녀는 일상을 영화로 만들어 내는 기법이 뛰어나 나치즘을 독일 국민에게 영웅적 서사시의 형식으로 히틀러의 왜곡된 사상을 보편화시켰고 그를 영웅화시킨 오점을 남겼다. 나치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영화를 만들어 낸 그녀는 1950년대 '올림피아'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손기정과 인터뷰하고 촬영한 사진이다. 그녀는 결국 나치즘에 동조한 삶의 오점 때문에 다시는 영화를 만들 수 없었지만 71살의 나이에 홀로 해저 모습 동영상을 찍었고 아프리카 수단에 10년 동단 누바족을 관찰하여 '누바족의 최후'라는 사진 화보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잘못은 히틀러를 만난 것'이라고 2003년 90이 넘는 그녀가 유명을 달리하기 전에 한 마지막 말이었다고 한다. 그녀만의 예술을 대중들의 비난 속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또한 용기다. 누구나 살아가며 실수를 한다. 젊은 그녀의 실수로 노년까지 이어지는 비난을 감내하며 예술에 집중한 그녀의 삶도 대단해 보인다.
미국 여성 사진작가 마거릿 버크 화이트 편에서는 내 눈을 의심할 만한 사진 한 장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독일의 유대인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들의 닭장 같은 사진이 아니라 그 옆에 트럭에 실린 마네킹 다리나 몸통으로 보이는 사람의 시체가 트럭 한가득 실린 사진이다. 그 트럭 뒤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그녀를 누군가 다시 트럭과 그녀를 함께 찍은 작은 사진이다. 인간이 인간일 수 없는 시대적 아픔과 그런 현실을 당연시했던 삶이 공존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또한 그녀는 6.25 전쟁 당시 종군 기자로 우리나라에도 왔었고, 당시 공포와 절망에 휩싸인 아낙네들과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 갔다. 간디의 물레질하는 사진 또한 그녀의 작품이다.
권력을 움켜쥔 철의 여인들로는 클레오 파트라, 이사벨 1세, 카드린 드 메디시스, 엘리자베스 1세, 마리아 테레지아, 예카 데리나 2세, 빅토리아 여황 그리고 중국의 마지막 황후 서태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클레오 파트라에 대한 이야기는 알고 있으나 마리아 테레 지아에 대한 이야기는 생소하다. 오스트레일리아 있는 유럽 최대의 왕실 가문 합스부르크가 의 여성 통치자였다고 한다. 당시 정략결혼이 당연시되었던 귀족과 황실 중심의 유럽 문화에서 그녀 또한 정략결혼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과의 사랑도 나라를 잘 다스린 힘 있는 군주로도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16명의 아이를 낳았고 그들 모두 유럽의 황실 가족들과 정략결혼을 했다고 하니 유럽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또 다른 방법으로 그녀의 가족사를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다. 특히,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로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한 마리 앙투아네트가 그녀의 막내딸이다. 집안에서는 현명하고 순종적인 아내였으나 밖에서는 유능하고 힘이 있는 군주로서 자신의 삶의 균형을 잘 이루어 낸 그녀의 지혜로움이 더 위대해 보인다.
황제를 뛰어넘어 권력으로 19세기 청조 말 중국을 50년 동안 통치한 서태후는 아들까지도 서슴없이 살해한다. 권력의 단맛에 함 꺼 젓어 사치와 향락을 일삼던 그녀의 사진은 인간 삶의 덧없음을 보여 준다. 그녀의 마지막 유언은 '다시는 여자가 정치를 하지 못하게 하라'였다. 그녀의 삶을 돌아볼 때 자신의 조절되지 않는 권력의 욕심이 그녀 삶을 송두리째 지배했고 또한 중국을 서구 열강의 손아귀에 농락하게 만든 역사를 만들어 낸 것 같다.
역사를 풍미한 미적 아이콘으로 서시, 양귀비, 루크레치아 보르자, 마담 퐁파두르, 마리 앙투아 네트, 마타하리, 에바 페론, 마릴린 먼로를 이야기한다. 그녀들의 아름다움이 때로는 나라를 망하게 하기도 했고, 성적인 부분으로 시대의 유희가 되어 비참하게 죽음을 맞기도 했다.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예술일 수 있으나 인간의 그릇된 욕심과 결부될 때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 중세 시대의 루크레치아 보르자의 삶은 아름다움이 자신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아버지는 교황 알렉산드로 6세였고, 그녀의 오빠는 배덕과 권모술수의 전형적 인물이며 '군주론'의 모델인 체사레 보르자이다. 아빠와 오빠의 성적 상대가 되기도 했고, 세 번의 정략결혼의 희생자였다고 전해진다고 하니 그녀에게 아름다움은 치명적 독이 되어 그녀 삶의 빛을 무겁게 만들었을 것 같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과 프랑스를 오가며 스파이로 알려진 마타하리의 사진은 오랜 빛 바랜 사진이라도 그녀의 관능미가 느껴졌다. 그녀의 죽음은 '외부의 적과 대치하고 있을 때에 내부의 스캔들은 치명적' 이였기에 그녀가 군사 정보를 독일에 넘겼다는 결정적 증거도 없는 상태로 프랑스 경찰에 체포되어 총살당한다. 프랑스 거물급과 연계되어 있고, 프랑스 고위층을 들끊게 만든 그녀의 미모와 춤이 결국 세계 대전이라는 혼란 속에서 손쉽게 희생량이 된 것이다. 생의 마지막 총구를 향해 옷을 벗은 그녀의 도도함은 무엇을 의미할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싶었던 행위는 아녔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1950~1960년대 미국의 대표적 여배우 마릴린 먼로의 이야기는 선구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금발의 섹시 심벌이 된 그녀의 개인 삶은 결혼 실패와 약물 중독으로 의문의 죽음을 맞지만 여성의 섹시함이 감추어야 할 것이 아니라 뽐낼 수 있는 당당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인식시킨 계기가 된 것이다. '대중의 욕망이 만든 이미지 속에 고독하게 살다 간 여인'이라는 글귀가 아련하다. 화면의 화려한 삶과 달리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눈은 경이보다는 경시였을 삶에서 생활의 균형을 유지하기가 그녀에게 힘겨웠을 듯하다. 하지만, 그녀의 선구적인 태도는 그 이후 여성들이 자신 있게 자신의 섹시함을 드러내도 경시의 눈이 아니라 또 다른 아름다운 이면으로 대하는 시선을 만들어 낸 것이다.
세계사에 거론되지 않은 수많은 훌륭한 여성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일조했음은 분명하다. 세상을 남과 여로 나누는 에너지를 세계인이라는 공통의 이름으로 세상을 보다 아름답게 만들어 가기 위한 노력의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한 시대이다. 다름을 나누는 문화가 아니라 공통을 찾아내는 힘을 모아 밝은 빛으로 만들어 내는 힘은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정신적 유산이 될 것이다. 대통령 선거가 한창인 요즘 그래서 다름을 주장하는 정치인보다는 하나라는 협력을 끌어내는 정치인을 갈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