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빛깔의 책 표지에 희미하게 보이는 핑크빛 튤립이 '꿈꿀 권리'라는 책 제목과 잘 어울리는 책이다. 두께감이 있는 책 사이사이 도서관 전경과 책을 읽고 있는 아이나 어른들의 진지한 모습이 아름답다. 그녀의 책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온통 나 자신의 문제에 둘러 싸여 나를 알아 간다는 미명 아래에 생각의 초점이 극히 사적이라면 그녀의 시선은 넓고 이타적이다. 그녀의 소박하지만 순수해 보이는 모습이 그녀의 생각들을 닮아 있다. 오랫동안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가진 능력을 가지고 좋은 일들을 삶으로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의미 있는 삶을 보여주는 책이다. 작은 울림통인 내가 그녀의 큰 통 안에 담긴 생각들을 마주하면서 '사람인'이라는 한자가 떠올랐다. 세상의 빛과 어두움, 절대자와 소수자, 행복과 불행이라는 두 갈래의 날개 사이에 그녀의 도서관이 그것들을 연결시켜 주고 있다. 그녀는 작은 거인이지만 겸손으로 세상의 빛을 만들어 내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오드리 헵번이 이야기했듯이 팔 아래 달려 있는 두 손을 생각해야 한다. 한 손은 나를 위해 다른 한 손은 타인 위해 돕는 손이 가장 아름다운 손일 것이다. 사설 도서관을 시작하며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손에 책을 잡을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이끌어 주는 그녀 만의 삶의 방식을 이야기한다. 첫 장은 '함께 흔들리다'라는 제목으로 청소년기 아이들의 좌충우돌 삶 속에 책을 넣어준다. 연민에서 공감으로 변해가는 그녀의 시선과 다름과 차이에 대한 균형을 이야기한다. 사회로부터 또는 부모로부터 상처 입은 아이들의 닫힌 마음의 문을 소리 없이 두드리고 인내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인상 깊은 두 개의 소제목은 '두려움을 가르칠 권리는 없다.'와 '세상에서 양육기간이 가장 긴 호모 코리아 나스'이다. 제목만 봐도 저자의 의도가 눈에 보인다. 아이들의 독립된 삶을 위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삶의 기술을 가르치면서 나도 모르게 두려움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세상에서 양육기간이 가장 긴 호모 코리아 나스 편에서는 많은 공감이 된다. 유대인의 성년식은 만 14세에 이루어진다. 성인이 된 날을 축하하기 위해 히브리어로 된 성서를 친척과 지인들 앞에서 외우는 의식을 치르고 성년을 위한 축하금을 받는다. 성년식을 위해 길게는 1년까지도 준비한다고 한다. 그리고 성인 된 날을 삶의 큰 전환점으로 삼는다. 우리는 성인이 된 기념으로 주민 등록증을 만 18세에 아이에게 준다. 부모와 함께 자축하는 날이 아니라 친구들과 성인만이 누릴 수 있는 금지된 것들을 함께해보는 것으로 그렇게 첫발을 디딘다. 한국의 부모들은 대학은 물론이요 결혼 후에도 손자까지 돌봐줘야 하는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부모의 품은 따뜻하고 안전하지만 결코 삶의 목적지는 될 수 없다. 훌쩍 자란 키는 자랑스러워 하지만 저 혼자 밥을 해먹을 수도 없고, 아픈 사람도 돌볼 수 없으며 아기도 돌볼 수 없는 덩치 큰 청소년들을 공부 속에 가둬두는 건 아닌지 반성해 본다.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은 100평짜리 집에 살아도 소외 계층'이라는 의견에 공감이 간다. 느티나무 도서관은 '맘껏 빈 둥 거려도 좋고, 얼마든지 실패할 권리도 누릴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그녀의 품은 따뜻하다. 즐거움을 스스로 알아가려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에도 반성이 된다. 주말에 빈둥거리는 것조차 잔소리를 쏟아내는 엄마가 되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아들에게 밥을 스스로 해보는 시간도 줘야 할 것 같고, 기억을 잃어가고 계시는 어머니의 돌봄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줘야겠다. 대하는 방식으로 대상은 그 존재 의미가 커진다.
두 번째 장의 제목은 '누구나 꿈꿀 권리를 누리는 세상'이다. '책으로 자유를 꿈꾸다'와, '꿈의 크기를 누가 정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이 기억에 남는다. 공공 도서관 다운 도서관으로 거듭나기 위한 그녀만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다문화 가정을 위한 도서 배치는 이색적이다. 베트남어로 된 책이나 네팔어로 된 책을 구비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준다. 그것들을 필요로 하는 외국인들을 위한 배려가 엿보인다. 공공의 도서관이라는 말을 책 속에서 계속 이야기한다. 공공이란 어떤 특정인만을 위한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그녀의 신념이다. 그래서 외국인 노동자 또는 한국에 결혼해서 정착한 사람들에게는 그녀의 도서관이 단비 같은 역할을 하리라. 구하기 어려운 만큼 타국에서 만나는 모국어 책은 얼마나 소중할까를 생각해 본다.
사람이 사람에게 책을 건넨다는 것은 '존엄함'에 말을 거는 일이라고 한다. 책과 자료는 경쟁에서 이기고 스펙을 쌓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주어진 시간을 살아가는 법을 함께 배울 수 있는 매개체라는 말에 많은 공감이 간다. 삶이라는 숲에서 길을 잃었을 때 길을 찾는 실마리를 주는 게 책이요 예상 밖의 장애물을 만났을 때 충분히 도움닫기를 하는데 필요한 구름판 같은 곳이 도서관이 되길 바라는 그녀의 마음이 좋다.
그녀의 느티나무 도서관은 삶의 길을 잃은 청소년들에게 아지트가 되고 영원한 타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한국 속 외국인들에게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 되어준다. 장애인을 위한 점자 그림판 책에 대한 이야기와 시각 장애자용 점자 카드 제작은 마치 먼 옛날 세종 대왕이 글을 읽지 못하는 백성들의 눈을 깨우고 생각을 깨우고자 남몰래 한글을 제작하셨던 그 당시와 심정이 비슷하지 않았을까.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 카드는 그 사용자의 수적 제한적이라 많은 공감을 얻어 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보지 못한다고 읽고 싶은 욕망이 없는 건 아니다. 볼 수 없는 세상을 책을 통해 볼 수 있도록 돕는 첫 단추가 되는 게 점자 초각 낱말 카드다. '세상이 지나치게 눈 뜬 사람들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고, 눈으로 보는 것에만 기대어 청각, 후각, 촉각 등 다른 감각이 지나치게 경시되고 있다.'
어두운 무대에 수화를 하는 한 사람에게만 한 개의 조명이 가있고,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눈으로 보는 사람에게 책을 읽어 준 행사를 소개하는 장면에서는 잔잔한 감동이 일었다. 공공 도서관의 기본 이념인 공공성을 구현하기 위해서 그녀가 들인 신념의 노력이 파장이 되어 보다 좋은 사회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기분이다.
'도와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서로 배워야 할 것이다.' 다문화 서비스는 소수자에게 베푸는 봉사가 아니라 모두에게 필요한 당연한 공공 도서관 서비스가 되는 것이다는 그녀의 생각이다. 장애인, 소년 소녀 가장, 이주민에 대해 지원하고 보호하며 치료, 교정할 대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 배우고 북돋우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그녀의 선한 시선이 느껴지는 책이다. '돌봄에도 존중과 상호 작용이 담겨야 하는 이유를 비로소 배우기 시작했다.'
'책으로 자유를 꿈꾼다.' 5,000년 전 도서관은 선택된 소수를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의 도서관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기록을 남기고 보존하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란다. 역사적으로 기득권자들은 평민들이 책을 접하지 못하게 했다. 그것은 두려움 때문이란다. 왜라는 질문을 만들어 내는 책을 통해 통제할 수 없는 정신적 성장으로 이어지고 결국 자유를 꿈꾸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 말이다. 진시황도 책을 태웠었고, 세종 대왕이 한글을 만들 때도 사대부 양반들의 극심한 반대도 있었으며, 독제 정권들은 유난히 금서가 많았다. 의식하지 못할 만큼 우리는 제도, 관습, 문화, 사회적 인식에 길들여져 있다. 책을 통해 왜곡된 힘의 배경을 제대로 알고 의식하지 못한 채 견뎌온 시간을 돌아보기 위해서는 무엇으로도 방해받지 않는 통찰과 사유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견해가 일침을 가한다. 책을 읽지 않는 삶이 얼마나 우리 삶을 위태롭게 만들지. 책이 통찰과 사유의 질료가 됨을 알고 있기에 읽을수록 더 깊이 다가가고 싶은 맘이 든다. 그녀의 기도가 들리는 듯하다. '책갈피들 속에서 누군가의 의식과 영혼이 그 자신과 그를 둘러싼 세상을 읽어 내는 눈을 뜨기를....'
그녀의 느티나무 도서관은 '정숙'이라는 글자 대신 '선입견이나 주장 주입 금지'라는 팻말을 걸고 싶다는 말에 박수를 보낸다. '다른 세상을 만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게 될 때 자기 자신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힘이 생긴다.' 책으로 세상을 읽고 다양한 인생을 만나고 내 인생 또한 괜찮을 거라는 신뢰를 하게 된다. 점차 자신을 긍정하는 시선이 오롯이 '나'로 살아갈 힘이 될 거라는 저자의 생각이 요즘 나 스스로 느끼는 부분이라 마치 격려받는 느낌으로 글귀들을 읽어 내려갔다.
느티나무 도서관! 느티나무는 마을을 상징하고 넉넉한 그늘을 드리고 누구나 편하게 찾아와 소통과 배움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을 상징한다. 사람의 표정이, 마을 풍경이 달라질 것이고, 아이들이 넓은 세상을 만나 세상과 자신에 대한 믿음을 키우고 어울림을 배울 수 있으며 사랑방처럼 편안하고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고자 도서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사람인이라는 글자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삶의 구비 구비에 만나는 빛과 어둠의 균형을 잡아주는 중심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책을 품은 도서관 이리라. 나를 만나고 시대를 바로 보는 눈을 보여주는 곳이 도서관이다. 그 마을의 가장 아름다운 건물은 도서관이어야 하고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그곳에서 느티나무 도서관 속 사람들처럼 편하고 자유롭게 책을 읽는 사람들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