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권 독서

[깨달음] - 김종의

by 조윤효

일상을 여유롭게 만드는 마음의 기술이라는 글귀가 유독 눈에 들어온 책이다. 저자의 약력에 '밀양 매화리에서 작은 법당을 짓고 부처님이 일러주신 길을 따르는 삶을 살고 있다.'는 글귀가 남편의 사촌들을 떠오르게 했다. 어머님 여동생의 네 아들들은 모두 불가에 뜻을 두어 수도승의 삶을 살고 계시다. 그중 첫째 스님을 몇 해 전에 뵌 적이 있다. 지리산 해발 600미터에 위치한 수도암은 그가 스승과 함께 만든 절이다. 절 입구까지 들어가는 기다란 길가에 돌을 촘촘하게 쌓아 지리산의 녹음과 제법 어울리는 돌담길을 만드셨다. 절 안으로 들어가 마당에서 뒤를 돌아보면 지리산이 마치 초록 바다처럼 일렁이는 관경을 선물한다. 절 뒤로 돌아 가면 커다란 인공 호수가 있다. 자연이 만들어낸 작품이 아니라 스승과 제자가 젊은 시절부터 깨달음의 도구로 마음을 찾아 나서기 위해 만들어낸 호수다. 세계적인 명상 센터가 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스승이 떠난 자리에 홀로 남은 스님은 자신의 득도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고 계신다. 수년 동안 돌을 날라다 돌담길을 만들고 절을 짓고 그 뒤꼍에 호수를 만드는 일을 어떻게 하셨냐고 여쭈었었다. 답은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 하나씩 했기에 가능했다.'라는 말씀에 뭔가 심오한 답을 기대했었던 나에게 작은 숙제가 주어진 기분이었다.


저자의 책을 통해 깨달음을 갖고자 삶의 방향을 틀어 버린 이들의 깊은 마음을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만난 숙제를 끝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풍요롭기는 하지만 인간답지 못하고, 편리하기는 하지만 편안함이 없다는 요즘 시대에 대한 저자의 평에 공감이 간다. 하루에도 수십 가지의 번뇌가 파도처럼 일어난다. 그 감정의 요란함 속에서 현존하는 삶을 사랑하고 느끼는 감각이 무뎌질 수 있다. 저자의 책은 '몸과 마음, 행복한 삶, 선과 깨달음,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 관심으로 부터의 자유'를 이야기한다.


'존재의 상태가 인식의 수준을 결정한다.' '동일한 존재라 하더라도 경험의 축적이 풍부해질수록 더 넓은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라고 한다. 즉, 경험의 축적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의 크기가 된다는 이야기인데 내 안의 창의 크기가 궁금해진다. '세상의 가치를 따라가는 대신 나답게 사는 길, 즉 본성의 온전함을 자각하는 길만이 허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책에 소개된 [백유경]의 글귀는 이야기한다. '육도의 윤회 가운데 사람으로 태어나는 인연은 지극히 어렵다. 그러나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해도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기도 어렵고, 깨닫고 살기는 더더욱 어렵다고 했다. 세상만사는 오로지 마음 짓기에 달려 있으며, 어떻게 살 것인가 또한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을 뿐이다.' 마음이 먼저다.


'자유란 순간적인 도피로써 얻을 수 있는, 즉 구속하는 조건이 사라질 때 누릴 수 있는 해방감은 아니다. 진정한 자유란 어떤 구속이 있더라도 거기에 매달리지 않을 때 나타나는 편안함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로 비바람이 칠 때 마음의 창문을 열어 두면 즉 세상 흐름에 눈길을 두게 되면 우리의 생각은 혼란스러워진다고 한다. 그럴 땐 마음의 문을 닫고 창밖의 비바람을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세상의 변화에 무조건 따라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진정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의 생각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가끔 세상 속도에 숨이 가프게 따라가는 건 아닌지 불안해질 때가 있다. 저자의 말처럼 내 마음의 창문을 닫고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도 필요하다. 그래야 휘둘리는 삶이 아니라 내 삶을 살아가는 법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행복한 삶에 대한 정의는 공감이 간다.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느끼고 감사하는 일상이다. 행복한 사람은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알고 반복되는 생활에서도 충만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선'에서는 평상심이 바로 도라는 것을 강조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일상생활 자체가 곧 마음공부이자 수련이기 때문이란다. 일상이 마음공부라고 한 것 역시 '나'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온전하게 느껴야 한다는 뜻이란다. 내 판단과 내 생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세상은 차를 마시면서도 진정으로 차 맛을 즐기지 못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한다. 주어진 삶을 온전하게 느끼고 존재의 온전함을 자각해야 한다고 한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이 온전함이라 한다. '우리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에 있어야 한다.' 우리가 깨어 있는 것, 웃는 것, 숨 쉬는 것을 온전하게 느끼는 일이 현실을 바라보는 방법이자 온전함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한다.


장자는 인간 삶을 '현해'라고 했다. 인간다운 사람이 인간이라는 뜻인데 '속박으로부터 풀려난다.'라는 뜻이다. 인간은 외물에 속박되어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돈과 명예와 부귀 등에 묶여 끌려 다닌다고 한다. 사는 것이 괴로운 이유가 '나'라는 존재를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여기고 원하는 모든 것들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이 괴로움은 자신에 대한 무지와 오해에서 생기는 것이라 한다. 이런 무지와 오해를 밝혀줄 '연기'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모든 존재에게 적용되는 규칙이다. 모든 것은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어느 하나도 독립됨이 없이 서로가 원인이 되고 서로가 결과가 되어 서로서로 의지한 채로 나타나고 사라 진다.'


'갓난아이의 눈처럼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는 것이 곧 온전한 마음이다. 온전한 마음이란 사회적 가치가 나누어 놓은, 즉 경제적인 능력이나 사회적인 지위 등으로 자리매김된 차별과 분별에 묶이지 않는 마음이다. 그 마음은 대상을 두고 선악을 판단하거나 우열을 분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온전한 마음으로 산다는 것은 순수한 삶 그 자체가 된다.' 오로지 현재의 순간을 사는 사람만이 실제의 삶을 사는 것이며, 그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한다. 순간을 온전하게 살아라는 표현이 선의 개념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자주 언급된다. 순간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주위의 모든 것을 아이의 눈으로 신비와 호기심 그리고 감동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호기심과 감동의 감정은 햇빛에 바란 커튼처럼 마음의 창을 가리기도 한다. 내게 주어진 삶을 감사하게 여기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사는 것이요 그것을 느끼면 사는 사람이 가장 인간답게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삶의 목적과 의미를 깨닫도록 도와주는 게 선의 본질이 아닐까?


'날마다 좋은 날'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와닿는다. 오로지 지금 숨 쉬고 있는 사실이 행복임을 아는 사람만이 날마다 좋은 날을 만든다고 한다. 좋은 날이라고 생각하면 좋은 날이 되고, 나쁜 날이라고 생각하면 나쁜 날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산다는 것은 너무나 소중하고 값진 일이기에 날마다 좋은 날이 되어야 하고 언제나 행복한 시간이 되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날마다 좋은 날을 선택하는 습관을 만들어야겠다. 눈에 티 하나가 들어가도 견딜 수 없고, 이빨 사이에 조그마한 것이 끼어도 참을 수 없는 것은 원래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어찌하여 마음속에 그 많은 가시를 지니고서도 오히려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내 생각 속에 내 것이 아닌 것들을 덜어내어야 한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붙들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한다.


말로서 표현되는 세상은 극히 일부분뿐이라고 한다. 말을 넘어서고 보면 세상은 진정한 환희와 충만의 연속이라 하는데...... 말이 생각을 다 표현 못하고 글로 말을 다 표현 못하기에 저자의 생각을 글로 읽으면서 저자의 깨우침을 느껴보고자 글의 속도를 줄이면서 읽었다.

부처는 자신의 설법을 글로 남기지 않으셨다고 한다. 제자들이 그의 생각이 담긴 말씀을 듣고 경전을 만든 것이다. 그 만든 경전을 보고 다시 그 글에 대한 해석들이 수없이 생겨나 마치 큰 조각의 퍼즐이 세월 속에서 사람들에 의해 자꾸 쪼개지다 보니 이제는 더 이상 맞추기 힘든 퍼즐 조각이 된 듯하다. 그래서 부처의 큰 말씀을 작은 조각으로 대하다 보니 깨달음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우리가 자신이라고 느끼는 '나'는 시시 각각으로 변화하는 과정 속의 흔적이라는 말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그렇다면 어제의 나는 누구이고,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뿐만 아니라 내일 만날 나는 누구란 말인가. 인생은 '삶이냐, 죽음이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존재할 것이냐 저렇게 존재할 것이냐의 문제'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지금 여기가 바로 존재의 온전함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곳임을 알아차리는 거, 그것이 바로 깨달음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나'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찾아가는 길 그리고 자신의 내면적인 모습과 외부적인 것에 대하여 내가 반응하는 방식 모두를 알아 가는 과정이 삶이 강물처럼 흘러가 버리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같다.


티베트의 유명한 성직자이자 시인인 밀라레파의 글이 인상 깊다. '내 종교는 후회 없이 살다가 미련 없이 죽는 것이다.' 내게 생각의 숙제를 던져 놓으신 스님의 말씀을 다시 떠올려 본다. 삶을 기적으로 대하고 '나'라는 껍질 속에 일어나는 감정과 생각을 관찰하고 미련 없이 내려놓을 수 있는 연습을 지리산 수도암 돌길과 연못을 파면서 수행하신 건 아닐까. 대 자연 속에서 인간의 작은 손으로 기적을 만들어 내고 끝날 것 같지 않는 일을 7년 동안 묵묵히 해내면서 삶의 순간을 살아가는 법을 득도하신 건 아닌지 수도암 스님의 생각이 더욱 궁금해진다. 숙제 위에 또 하나의 숙제를 받은 듯하지만 저자의 '깨달음'이라는 책은 '나를 내려놓는 연습'에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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