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권 독서

[아트 인문학 여행] -김태진

by 조윤효

스페인 문화 예술 여행기다. '아트 인문학: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을 몇 년 전에 읽고 미술에 대한 문외한인 나를 바라보게 해 준 책이었다. 알아야 보인다는 인식을 강하게 해 준 책이다. 시간 날 때마다 보야 될 것 같아 아직도 화장대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가 쓴 세편의 아트 인문학 중 이제 두 편을 만났다. 앎의 깊이가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은 저자의 안내는 읽는 이로 하여금 당장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는 긴장감을 준다. 스페인이라는 나라가 이렇게 매력적인 곳이라는 것을 미처 몰랐었다. 대학 시절 유럽여행 때 위험할 것이라는 속단에 그곳을 지나친 게 못내 아쉽다. 하지만 그때는 내 안에 든 게 많지 않아 봐도 볼 수 없는 상태였을 것이다.


세르반 테스 소설의 인물들이 저자의 문화 여행의 가이드가 된다. 도전과 모험을 즐기는 이상 주의자 돈키호테와 현실주의자 산초는 전반적인 책의 안내자이다. 전체 글은 돈키호테적 정신과 산초 정신의 흔적들을 찾아내는 숨은 그림 찾기 같다. 어렵지 않아 바로 눈에 보이는 숨은 그림 찾기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지금은 돈키호테 정신이 필요한 시대라고. 4차 산업 혁명 시대는 기회와 위기가 함께 온다. 우리가 맞닥뜨릴 문제들은 경험이 없다. 기존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새로운 시대는 호기심을 토대로 키워가는 이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이들이, 도전하는 이들이, 나다움으로 가치를 만들어 내려가는 이들을 기다리기 때문에 돈키호테의 시대라고 한다. 왜 돈키호테 여만 하는지 의문을 가지고 책을 대한 다면 더욱 가치가 있는 독서가 될 것이다. 읽기 전에 둘러본 책의 사진들과 읽으면서 만나는 사진들은 의미가 다르다. 그리고 다 읽고 나서 다시 훑어보는 책을 통해 어떤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책 한 권을 읽기 전과 읽고 난 후의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한 책이다.


책에 사진이 많아 금방 잘 읽혀지겠지 생각했으나 며칠이 걸렸다. 끝없이 파내려 가는 기분으로 읽어 내려갔다. 바닷가에서 바지락 캐는 그 기분이다. 캐도 캐도 계속 나오고 쌓여가는 바지락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머리를 갯벌에서 떼어낼 수 없게 만든다. 책은 계속 나를 부르는데 매일 이루어져야 하는 소소한 일들이 외침을 묻히게 하는 상황이 생기다 보니 시간이 더 걸렸다.


세상을 다른 형태로 살아낸 돈키호테들을 보는 기분을 선사한 걸 보니 저자의 의도 데로 책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가톨릭 여왕 이사벨과 모험가 콜럼버스, 제국의 왕 펠리페와 화가 엘 그레코 이야기, 궁정화가였던 벨라스케스와 고야, 건축가 가우디와 후원자 구벨 이야기 그리고 천재 미술가 달리와 그의 뮤즈 갈라 이야기는 책이 주는 지적 무게감을 잘 분산해 준다. 그의 전달법과 그림들은 책을 읽는 나를 호기심 가득한 학생으로 만들어 버린다. 저자가 '베스트 티처상'을 받은 이유를 알듯 하다. 제대로 알 때 쉽게 설명하고 잘 가르칠 수 있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다. 나 또한 가르치는 일이 업이다 보니 제대로 알기 위한 노력을 쉼 없이 해야겠다.


글을 쓰고 음미의 시간이 필요한 이유가 남의 글이 아니라 내 글 즉 나다움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지만 나 자신을 좀 더 알게 되고 더 성장하고 있다는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저자의 글쓰기에 대한 신념을 닮고 싶다.


스페인의 8개 지역 중 안달루시아, 카스티야 그리고 카탈루냐로의 여행이다. 스페인이라는 나라는 세계사적 관점에서 볼 때 짧은 영광과 기나긴 침묵을 지켜온 나라 같다. 책을 보면서 화려한 영광 속에서 뜨거운 열정의 예술 꽃을 피워낸 것 같다. 그들의 문화가 마치 나이 든 노인이 자신의 화려했던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누구나 화려한 시절, 젊은 시절, 좋은 시절을 가질 수 있다. 그 시절 속에서 어떻게 존재해 있었는지 어떻게 삶을 영위했는지를 알아가는 게 독서 일 수 있다. 스페인은 영광스러운 시기의 존재 방식을 예술로 승화시킨 나라 같다. 사진 곳곳에 보여 주는 신을 메게로 만들어 낸 건축과 그림들은 '인간이 가진 잠재력은 무한하다'는 확신을 심어 준다.


유럽과 아프리카 길목을 지키고 있는 스페인의 문화는 유럽의 문화와 차별되는 부분이 있다. 오랜 기간 아프리카에서 온 이슬람 문명의 지배와 기독교 세력에 의한 이베리아 반도의 재탈환 즉 '레콩키스타' (1492)로 인한 색채가 그 문화의 기조색이다. 문화 예술의 이 두 가지 흐름이 스페인만의 독특함을 만들어 낸 것 같다. 1888년 만국 박람회가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된 이후 중세의 알에서 깨어나 모던한 시로 변화되었다고 한다. 이 분위기가 가까운 카탈루나 지역에 영향을 깊게 주어 천재적인 예술가가 많이 등장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한다. 스페인이라는 나라 자체가 마치 큰 박물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가 존재감이 큰 예술인들이 곳곳에 예술의 혼들을 지상에 남겨 두었기 때문이다. 후손들은 위대한 예술가들의 삶의 흔적들로 세계인의 이목을 끌고 여전히 문화 선진국이라는 월계관을 쓰고 있다.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예술일 수도 있겠다.


이자벨 여왕과 콜럼버스의 이야기는 만남과 시기의 중요성을 보여 준다. 돈키호테 같은 꿈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나 새로운 역사를 썼다. 이자벨 여왕은 종교적인 것과 정치적인 꿈을 가지고 여왕이 되었다. 이베리아 반도에 카토릭으로 하나 된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이상이 지지자를 만들고 왕의 후계 선상에서 먼 위치였으나 결국 여왕이 된 것이다. 그녀의 꿈에 감명을 받은 귀족들의 지지와 함께 기나긴 시련의 시기를 견뎌낸 지혜로 여왕이 된 것이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개척 사업에 손을 들어줄 수 있었던 것도 두 사람 모두 돈키호테적인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4명의 왕이 콜럼버스 관을 들고 있는 조각상은 인상 깊다. 신대륙 개척 사업을 추진하던 콜럼버스는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원주민을 강압적으로 억압해 결국 현지의 반란을 유도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많은 동료를 잃어 결국 아자벨 여왕까지 그에게 등을 돌리게 된다. 외롭게 죽어 가던 그 시대의 돈키호테 콜럼버스는 다시는 스페인 땅을 밝지 않겠다는 유언을 남긴다. 하지만, 스페인은 콜럼버스 사후 그를 데려 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그의 유언을 존중하여 4명의 왕이 쿨럼 버스의 관을 들고 있어 스페인에 있되 그 땅을 밟지 않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스페인의 열망과 콜럼버스의 유언 두 가지를 지키는 방법을 찾아낸 그 기발함이 멋지다.


알람브라 궁전은 드라마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노래 가사로 익숙하다.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폐허가 된 이곳을 3년 동안 외교관 신분으로 스페인에 머물며 '알람브라 전설'을 쓴 워싱턴 어빙이 살려낸 곳이다. 미국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워싱턴 어빙을 기리기 위해 그의 동상을 세워둔 이유가 있다. 이렇게 이야기의 힘은 위대하다. 역사를 위대한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재능이 또 다른 문화를 가지 수 있다.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회가 미래사회에서는 그 존재감이 더 커질 것 같다.


두 명의 궁정화가 벨라스케스와 고야의 그림들은 매력적이다. 알 수 없는 강한 시선과 삶의 빛깔을 잘 담아낸 듯한 인상을 준다. 저자의 명암법 설명 덕분에 나의 느낌이 정리된다. '빛이 밝게 느껴질수록 배경의 어둠은 짙고 어두운 법이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라는 작품은 피카소가 다른 시각으로 50점으로 재탄생시키기도 한 명화다. 빛과 어둠의 조화로 사실을 잘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림 속 숨겨진 국왕 부부의 시선, 관광객의 시선 그리고 화가의 시점이 일치하는 우연이 그림의 가치를 더해준 작품이라고 한다.


마드리드 여행을 시작하는 작가의 말이 인상 깊다. '지키려는 가치가 너무나 소중하다고 느낄 때 그것에 어긋나는 모든 것은 악한 것으로 보인다.' 지키려는 가치를 종교가 만들어 낸 시대의 종교 재판 이야기는 교회의 광기와 탐욕을 보여 준다. '광기 어린 폭력마저도 그렇듯 모든 일은 순수한 열정에서 시작된다.' 스페인의 숨통을 조인 규제의 틀인 순혈령에 대한 가치관이 수천 명의 희생을 정당화했다고 한다. 나폴레옹의 스페인 침략이 카스티야가 이끈 레콩키스타의 종결을 불러왔다. 덕분에 종교 재판이 문을 내린 계기로 삼는다. 하지만, 이념의 질서가 무너져 스페인 사회는 후유증을 톡톡히 앓는다.


천재적인 건축가 가우디의 작품들은 아이의 순수성과 닮아 있다. 딱딱한 건축물을 두 손으로 요리조리 쉽게 만들어 예술작품이 위치할 공간에도 생활공간에도 그냥 내려 두었다. 그의 돈키호테 정신을 지지해준 구엘의 후원이 건물의 획일성을 거부하는 가우디의 이상이 실체가 되도록 지원해준 것이다. 놀라운 것은 지금도 가우디가 시작한 '사그라 마 파밀리아 성당' 건축이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100년 동안 시대의 흐름과 릴레이 계주 하듯이 조상과 후손이 바통을 넘겨주며 만들어 낸 건축물은 그 자체가 역사다. 2026년이 완공 예정이라고 한다.


천재와 뮤즈의 만남을 이야기한 달리와 갈라 이야기는 예술과 현실의 합치를 보여 준다. 천재적 광기를 지닌 돈키호테 달리는 자신보다 10살이나 많은 유부녀 갈라와의 사랑이야기는 기존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두 사람의 결합은 결국 광기로 사라질 달리의 예술 혼을 철저히 산초가 된 갈라를 통해 현실화된다. 결국, 예술이 금전을 불러드려 누구보다 부유하게 자신답게 살아간 달리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대 자신으로 살아보라. 그만큼의 힘은 그대 안에 있다. 그리하여 어느 날 아침 눈을 뜨면서 밀려오는 행복감에 전율해 보라. 그게 삶이다.'


책을 마무리하는 저자의 글이 마치 한 편의 주제가 될 책만큼 강하다. '1등의 기준을 바꿔야 한다. 1등은 문제 해결력을 갖춘 이들에게 주어야 한다. '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한 문제와 맞닥뜨려 스스로 그 해결책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키워야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돈키호테의 지혜와 상응되는 듯한 느낌의 '철이 든다'라는 표현에 대한 저자의 말은 여러 생각을 불러들인다. '철이 든다'의 긍정은 지혜롭고 유연함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부정의 의미로 나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평범해지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일 수 있다. '철이 든다'는 말을 보다 섬세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간다. 내 안의 돈키호테가 주인이 되어 산초의 장점을 잘 받아들일 때 주변과도 조화를 이룰 것이라는 저자의 핵심 생각에 공감이 간다. '지혜로운 돈키호테는 곁에 있는 산초가 크게 활약하도록 이끈다. 철든다는 말에 속지 말자. 철들기 위해 나를 잃어선 안된다.'


재미와 의미를 추구하는 시대에 홀로 가는 삶을 시작하라는 저자의 조언을 기억해야겠다. 맨 오브 라만차의 대표곡 '이룰 수 없는 꿈'이야기는 현시대의 돈키호테 정신을 부르는 것 같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는 것,

쓰러 뜨릴 수 없는 적과 맞서 싸우는 것,

견딜 수 없는 슬픔을 견디는 것,

용감한 이들로 선뜻 가지 못하는 곳으로 홀로 달려가는 것

이것이 나의 길입니다.

일말의 희망조차 없다 해도 아무리 멀게만 보인다 해도,

저 별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우리 안의 잠든 돈키호테를 만날 시간이다. 그 정제되지 않은 이상을 이제는 용기 있게 꺼내 자신답게 살아가야 한다. 세월의 흐름 속에 먼지 낀 돈키호테를 닦아 내고 내 삶의 주인이 되어 버린 산초를 이제는 제자리로 돌려 두어야 한다. 세상의 기적은 돈키호테가 꾸는 꿈을 산초가 잘 읽어 낼 때 그때 피어난다는 것을 알 것 같다. 좋은 책은 잠든 돈키호테를 깨우는 알람과도 같다는 걸 알게 해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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