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권 독서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by 조윤효

빛 바랜 책을 책꽂이에서 버릴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추억을 담고 있을 때다. 명상록이라는 초록 빛깔의 책은 오래되어 색은 누렇고 글씨는 지금 글씨체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보석들을 버리기 아까워 들고 있었다. 책의 첫 장에 큰 오빠가 막 대학생이 된 작은 오빠에게 보낸 글귀가 담겨 있다.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과 그리고 큰 꿈을 갖고 살아가길 바랬던 형의 마음이 보여 참아 책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려보냈다. 가족 밴드에 올려 두어야겠다. 형제 모두를 웃음 짓게 할 것 같다.


아들에게 아우렐리우스를 만나게 하기 위해 새로 구입한 책이 메이트 북스 시리지 중 한 권인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다. 원본보다는 훨씬 얇다. 122개의 소재를 6개로 나누고 77개의 문단들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 아우렐리우스가 후손에게 남기기 위해 쓴 수필집이 아니라 진중에서 그리스어로 자신에게 쓴 글들을 후손들이 모아 책을 엮은 것이다. 그래서 원 제목이 '자신에게(To himself)'이다. 121년에 태어나 180년에 세상을 떠난 로마 제국 16대 황제의 생각들을 아직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책이 인류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인 것 같다. 20년간 로마 제국의 중흥 시대를 이끌었던 그는 전생을 사색과 통찰로 절제된 삶을 살아간 것 같다. 처음 9년간은 2명이 함께 로마를 다스리다가 나머지 11년은 자신이 홀로 다스렸다고 한다. 명예와 부의 정상에서 어떻게 쉬이 흔들리지 않고 절제된 삶을 살아 냈을까? 한 인간의 됨됨이를 보고자 한다면 시련이나 역경을 주지 말고, 권력을 손에 넣어 줘보라고 한다. 왕인 그가 남긴 사색들을 통해 권력을 절제하고 다룰 수 있는 그 큰 영혼이 보인다.


인간의 전 생애에 걸치는 사상은 그가 받은 교육이 큰 몫을 차지하는 것 같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귀족으로 수사학, 철학, 법학, 미술을 배웠고 스토아 철학자 루스티 쿠스와 에픽 테토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청소년기에 모델이 될 만한 사람과 사상을 만나는 게 인생 항로의 나침판 역할을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가 받은 교육과 사상이 전 생의 기준이 되어 2000년의 시간 속에서도 빛을 발산하는 업적을 이끌어 낸 것이다.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은 자연에 대한 깊은 통찰이 요구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자연에 대한 통창에 의해서 만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의 길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삶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도심 속 사각 콘크리트 건물이 익숙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행복한 삶에 대한 정의도 없이 막연한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에 대한 통찰을 이야기한 이유가 무엇일까? 스토아학파는 자연 전체 즉 모든 사물 안에 신이 존재한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운명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인간이 자신의 내부에 신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바로 인간이 신의 실체 일부분을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곧 신은 세계의 영혼이며, 인간의 영혼은 신의 일부분이다. 모든 사물이 하나의 법칙을 따른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사물들의 실제적인 질서와 그 속에서 인간의 위치를 인식할 수 있는 이성의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질서에 인간의 행동들을 관련시키려는 것이 철학의 주된 관심된 사상적 배경을 아우렐리우스는 가지고 있다. 세상 모든 것이 신성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 또한 신의 한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는 생각은 삶의 진지함을 줄 것 같다. 자신 안의 신을 긍정한 다는 의미는 스스로에게 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심을 주 것 같다. 자연에서 일어난 사멸을 관찰한다는 것은 인간인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는 그 일관된 원칙을 깨닫게 돕기 때문은 아닐까?


명상록은 마음 가짐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 삶과 죽음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는 무엇인지, 변하지 않는 세상의 본질은 무엇인지를 들려주고 있다. 음미하면서 읽을 구절들이 많다. 현재 자신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자신의 고민이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더 깊게 다가올 구절들이 수면 위에 떠오를 것이다. 몇 년 전에 어렵게 읽었던 그 깨알 같은 글씨를 이제는 현대 감각에 맞게 세련되게 정리된 글을 읽으면서도 몇 가지의 구절들은 그때와 동일한 느낌을 받는다. 여전히 내 안의 변하지 않는 의문이 해결되지 않아서 일수도 있다.


'내가 세상에 머문 시간이 긴들 짧은 들 아무 차이가 없다.'라는 소제목에 실린 글은 삶의 가치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을 일으킨다. '당신이 3천 년, 혹은 3만 년을 산다고 할지라도 사람은 누구든지 그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삶 이외에는 어떤 것도 잃지 않으며, 또한 그가 소유한 것도 오직 상실해 가고 있는 현재의 삶 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현재 만이 존재하는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지나간 과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잃을 수 없다는 말이 인상 깊다. '어떻게 소유하지도 않은 것을 잃었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아우렐리우스의 말에 현재의 삶에 초점을 두는 게 현명함을 배운다. '세상에 머문 시간이 길든 짧든 문제를 삼지 않은 사람에게는 죽음 그 자체가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매일 죽음의 문턱을 향하는 모든 사람에게 마음의 평정심을 선물할 것이다. 현재 삶의 농도를 올리고 가치의 존재를 올리는 삶을 지향해야 한다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갖게 해 준다.


'내일부터의 인생을 특별 보너스로 여기면서 살아라'라는 소제목도 인상 깊다. 가까운 지인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죽음의 실체를 다시 한번 인식한다. 살아있는 게 최고의 기회라는 말이 있다. 지금의 삶은 내 삶이 아니라 신이 다시 준 또 한 번의 기회라고 여기는 자세가 삶의 작은 소용돌이를 잠잠하게 하는 큰 힘이 되리라. 내일부터의 인생은 특별 보너스다. 두둑한 보너스......


'내 영혼 속 보다 더 조용하고 평온한 은신처는 없다.' 내 안의 신전을 깨끗하게 관리해야 한다. 긍정과 감사로 채우고 세상의 많은 풍파가 나를 흔들더라도 눈을 감고 자신의 신전 안에서 스스로에게 위안을 줄 수 있을 때 우리는 삶을 낙관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일에는 불평하고, 내일의 일에는 불안해하면서 주어진 운명을 한탄하는 것을 삼가라' 어리석은 삶을 경계하는 그의 조언이 18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빛을 잃지 않고 있다. 외모가 아름답다는 말보다 '뇌가 아름답다'는 말이 찬사가 되기 바래 본다. 생각이 아름답고 그 생각이 실체가 되어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빛을 발산하는 세계가 천국이 아닐까....


'찬사란 사람들이 혓바닥으로 치는 박수갈채에 지나지 않는다.' 재미있는 표현이다. 여전히 혓바닥으로 치는 박수를 들으면 기분이 좋다. 이는 아직 갈길이 멀다는 뜻일 것이다. 비난과 칭찬에 휘둘리지 않는 감정을 가진 사람들은 삶의 주도성을 절대 뺏기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소제목 '남의 평가보다는 스스로 자신에 대한 평가가 소중하다'라는 말과 연결감이 있다. '인간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하면서도, 정작 자신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는 자신의 생각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인간 본성의 기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다시 한번 떠오른다. 책을 통해 배워가는 학생인 나는 그 변하지 않는 기질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 부럽다.


'나를 괴롭히는 고민의 대부분은 내가 빚어낸 것들이다.' 공감이 많이 가는 글귀다. 고민은 내가 만드는 것이지 외부에서 주는 것이 아닌데 가끔 외부에 눈이 간다. 내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생각이 적극적인 대처법인 것 같다. '가장 고상한 형태의 복수란 자신에게 대적하는 사람들과 똑같아지지 않는 것이다.' 내 기준에서 볼 때 미운 사람이 있다. 그와 똑같아지지 않는 고상한 복수를 하련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다면, 내 탓이라고 생각하라.' 이런 감정을 유지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상처받았다는 느낌을 부인하면 상처 그 자체도 곧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아우렐리우스의 격언이 여전히 이 세상에도 통용되는 법칙이 된다.


'당신이 지금 가지지 못한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 잡히기보다는 당신이 가진 축복들을 헤아려 보라. 당신이 그것들을 가지지 못했을 때 얼마나 간절히 그것들을 갈망했는가를 생각하면서 감사히 여겨라.' 가지고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삶이 평온하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일이 아니라면 굳이 다른 사람의 일에 관여하는데 인생을 허비하지 마라.'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수많은 매체 속에서 살다 보면 정작 자기를 다스리는 내면의 소리에 대한 집중력이 흩트려져 다른 일들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 것이다. 자신의 내면의 신전을 깨끗하게 유지하라. 삶과 죽음의 거리를 걱정하지 말고 그 여정을 즐겁게 걸어가는 일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이라는 생각을 갖게 해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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