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권 독서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러셀 로버츠

by 조윤효

'내 안에 너 있다.'라는 드라마 속 대사가 떠오른다. 우리가 매 순간 만나는 내 안에 나를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매 순간 달라지는 감정의 기복과 매년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과연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 안의 나는 흘러가는 시간, 만나는 사람들, 책 그리고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매일 달라진다. 낯섦을 가지고 나를 대할 때 진정한 자아를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스탠퍼드 대학의 경제학 교수가 친구와의 약속 때문에 읽기 시작한 에덤스 미스의 '도덕 감정론'에 대한 저자의 독후감 같은 책이다. 책에서 발견한 에덤스 미스의 삶의 지혜들을 러셀 로버츠 교수가 독자들을 위해 좀 더 쉽게 풀어 둔 책이다. 에덤스 미스의 '도덕 감정론'은 '국부론'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책이다. 처음 한두 장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 조차 독서 시작을 후회했다고 한다. 3분의 1 지점까지 완독에 대한 희망이 불분명한 책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지점을 지나고 나자 러셀 로버츠 교수는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을 만큼 책 속에 빠져 들었다고 한다. 고전은 그래서 인내라는 산물과 엮여야 그 본연의 맛을 허락하는가 보다.


에덤 스미스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자신의 저서 '국부론'과 '도덕 감정론'이라는 지식의 자녀들을 세상에 남겨 두고 갔다. 두 명의 전혀 닮지 않은 책들은 여전히 세상에 남아 많은 사람들의 정신의 고양분이 되어 주고 있다. 그 저서들은 사람들의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 가는데 도움이 되고 있으니 육체로 자신의 후손을 남겨 두는 대신 영혼 불멸인 정신의 후손들을 세상에 남겨 두었으니 가치 있는 삶을 살다 간 사람인 것 같다. 저자를 통해 만나는 에덤 스미의 '도덕 감정론'은 마치 두 사람의 대화를 잘 모르는 내가 감탄하면서 듣고 있는 기분이다. 왜 이렇게 괜찮은 책인데 이제야 만났을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책은 '어떻게 우리 삶이 바뀔 수 있는가?', '나에게 질문하는 시간', '행복을 위한 우선순위', '진짜와 가짜 구별하기', '잘되는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할까?',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법', '끌리는 사람의 공통점', '불확실한 세상을 잘 살아가려면', '살기 좋은 사회가 만들어지는 과정', '현재의 우리를 위한 애덤 스미스의 따뜻한 조언'이라는 제목으로 독자의 관심을 끈다. 소제목의 나열만 봐도 영양가 가득한 책임을 보여 준다. 저자가 마치 에덤스 미스 집에 방문해서 술과 차 한잔을 나누듯이 표현한 방법이 웃음 짓게 한다. 저자들의 지적 대화를 읽으며, 그 두 분의 대화를 관찰하고 있는 나의 무지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걸 알려준다. 알아 가는 재미, 깨달아 가는 재미 그리고 삶을 스스로 제단 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게 독서다. 그들과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힘을 빨리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는 책이다.


'인생은 한 권의 책과 같다. 어리석은 자는 마구 넘겨 버리지만, 현명한 자는 열심히 읽는다. 인생은 단 한 번만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책에서 소개된 장파울의 글이 유독 강하게 느껴진다. 지금 삶이라는 책에서 어느 한 구절을 읽어 가고 있는데 현명해야 잘 읽어 낼 수 있다. 자신의 삶의 페이지를 열심히 읽어 내는 힘이 필요하다. 러셀 교수는 말한다. 에덤 스미스는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지, 어떻게 물질적인 성공과 실패를 다루어야 하는 지를 알려 준다. 선량하고 미덕을 갖춘 삶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 주고, 나아가 그런 삶의 가치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 인생의 의미와 도덕, 사람의 행동방식은 18세기와 지금과 큰 차이가 없다.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 변화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들을 대하는 것을 배울 때 좀 더 나은 삶의 텍스트를 만들어 낼 것 같다.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인생을 최대치로 활용한다는 것은 곧 인생에서 현명하고 훌륭한 선택을 최대한 많이 한다는 뜻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인생을 최대치로 활용하고 싶은가? 그러면 에덤 스미스의 '도덕 감정론'을 읽으라고. 삶의 농도가 진하기를 원하는 독자에게 이처럼 유혹적인 글귀가 있을 수 있을까? 온라인 서점 카트에 무게 감이 더 해진다.


'남의 커다란 불행 보다 내 손톱 및 의 가시가 더 아픈 법이다. ' 수만 명의 목숨을 잃은 지진 이야기보다 당장 수술해야 하는 자신의 새끼손가락에 더 격렬하게 반응하는 게 사람이다. 타인에게 뭔가를 준다는 것은 답례로 뭔가를 받을 거라는 전제가 있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는 '각자의 철칙' 즉, 우주가 자기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이기심이 있는 인간이라는 전제하에 자신을 바라보게 한다. 어떤 행동이 도덕적인지 판단해 주는 인물을 '공정한 관찰자'라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공정한 관찰자를 통해 자신을 인간대 인간으로 판단하고 심판하기도 한다는 에덤 스미스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그 공정한 관찰자를 떠올릴수록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힘이 생기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스미스는 도덕성이 타고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주위의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를 내면 깊숙이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인간 도덕의식은 다른 사람들의 지지와 반감을 경험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타인의 반응을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을 심판하는 공정한 관찰자를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 안의 공정한 관찰자를 의식하게 된다. 나의 공정한 관찰자는 그의 책무를 다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사랑받을 존재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알 때 행복을 느끼고, 내가 미움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느낄 때 불행하고 한다. 자신이 충분히 칭찬받을 사실을 갖지 않고 있는데 받는 칭찬은 즐길 수 없다고 한다. 오히려 과장된 칭찬은 그 칭찬처럼 되지 못한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자신을 만나기 때문에 비난과 큰 굴욕감을 느낀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현명한 사람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칭찬을 거부할 수 있다. 특히 가장 거부하기 힘든 것은 바로 스스로에게 건네는 칭찬이다.' 사랑받고 싶어 할 뿐 아니라, 자신을 사랑 스어 운 사람으로 생각하고 싶어 하는 것을 자아도취라고 한다. 즉, 자신의 실제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 모습으로 자신을 바꿔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는 자기기만은 솔직한 자기 인식보다 훨씬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속이기를 좋아한다. 왜냐 하면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게 심적으로 훨씬 즐겁기 때문이다. 솔직한 자기 인식에 있어서 사람은 모두 겁쟁이다. '나는 나의 민낯을 정직하게 본다.'라는 이런 믿음이 가장 심각한 자기기만이라고 한다. 요즘 스스로 느끼는 대견함에 대해 다시 한번 '자기기만'인지를 점검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은 '나에게 좋아 보이는 일이 실제로 당신에게도 좋다'라는 기이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나의 생각을 강요하는 우를 범한다는 것 같다. 사람이 실제로 이기적인데 자신이 이타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타적으로 보이기 쉽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종의 자기광고이다. 왜냐하면 사랑받고 싶은 바람을 이타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속여 자신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실은 자신에게 가장 득이 되는 일인데도, 다른 사람들을 위한 선택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킨다. 우리가 이상적으로 살지 못하는 이유가 나빠서도 아니고 이기심이 커서도 아니고, 스스로 이상적인 삶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해서라고 한다. 결국, 공정한 관찰자를 마주 보기 어렵게 만든다고 한다. 경제 학자의 개인 심리학 강의 같다.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박하는 증거를 무시하고 내 믿음을 확인시켜주는 증거만을 열렬히 받아들이는 확증 편향에 대한 이야기도 우리 안의 공정한 관찰자의 힘을 잃게 할 수 있다. 내가 선택한 점들로 그림을 그리지만 나머지 점들로도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나와 경쟁 중인 상대를 사악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는 단지 세상을 다른 렌즈로 보고 있을 뿐이고,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결과를 평가한다는 것을 존중해준다면 마음속에서 생기는 감정의 파도가 잔잔해질 것 같다. 결국, 인생의 항로에서 우리의 뱃길은 순항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속이기 쉬운 사람은 '나 자신'이다. 자신은 절대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을 것이고 스스로 속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얼마나 나약한 모래성인지 깨닫게 해 준다. '바다는 계속 들어갈수록 깊어진다.' '많이 알아갈수록, 앞으로 알아야 할게 얼마나 많은지 더 깊이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척할 필요가 없다. 무지를 인정하면 더없이 행복할 수 있으므로.' 지식인 저자의 고백에 내 맘도 덩달아 편해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피하기 힘든 매력을 발산하는 부와 명예를 사람들이 추구하는 진짜 이유는 그것들이 더 많이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우리를 만들어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우리 삶을 만족시킬 도구들을 이미 모두 가지고 있다.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즐기는 기나긴 여정이라는 말을 매 순간 달리고 싶어 하는 내 맘을 달래는 손길로 간직해야 한다.


오래 살기보다는 잘살기를 바라라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인용글도 좋다. '인간의 삶이 비참하고 혼란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소유물이 곧 나 자신이라 착각하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내가 좋아하고 존중하는 일을 하고, 그렇게 일해서 가족이 먹고살 수 있다면, 그것에 만족하라. 그 외에 모든 것은 뜻밖에 얻은 횡재로 생각하라.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다.' 스미스의 삶의 철학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종을 울려 준다. 고요하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들으며 다시 한번 나를 바라보는 힘을 준다. 자기 운명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부자다.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인식하고 미덕과 지혜를 갖춘 삶이 되기 위해 우리 안의 공정한 관찰자의 힘을 키워줘야 한다.


스미스는 사랑받는 사람이 되기 위한 3가지 정신을 신중, 정의, 선행이라고 정의한다.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는 신중, 다른 사람을 헤치지 않을 수 있는 정의, 타인을 선한 마음으로 대하는 선행을 통해서 스스로의 삶의 품격을 높일 수 있다고 한다. 정의를 실천하는 생활을 통해 공정한 관찰자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단순히 내 행복에 방해된다는 이유만으로 남의 행복을 해친다면, 절대로 공정한 관찰자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라는 메시지가 러시아의 대통령 푸틴에게 전달되길 바래 본다. '신은 우리에게 두 손을 주었다. 하나는 받기 위함이고, 또 하나는 주기 위함이다.'라는 빌리 그레이엄의 글은 선행의 당위성을 이야기한다. 받는 손은 내리고 이제는 주는 손의 힘을 키워야 하는 시기를 적극 긍정해야 한다. 가끔 내 안의 어린아이가 받는 손을 드는 모습을 본다. 이제는 주는 손의 힘을 키워야 하는 삶의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책 속에서 가장 위안받는 글 중 하나가 다음의 말이다. '세상에 널리 퍼지는 선이란, 역사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착한 행동들이 모여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에 예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당신과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썩 괜찮은 이유는 소리 없이 살다 간 수많은 사람들 덕분이다. 그들은 희미하지만 충실한 삶을 살았고,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 무덤에서 편히 쉬고 있다.' 우리 자신의 자리에서 선하게 주위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소리 없는 삶이 시대의 배경이 되어 우리가 받은 삶의 평온함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다는 사실을 감사하게 느끼게 해 준다.


공정한 관찰자를 삶에 동반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약점을 인지할 때 그 힘이 커진다. 경제학 책 '국부론'과 철학책 '도덕 감정론'의 두 아이를 세상에 선물한 스미스는 결국 '의도하지 않았지만 질서 정연한 결과로 이어지는 개인들의 행동, 그 행동들의 복잡한 상호 관계를 밝혀 내는 것, 그것이 경제학이 세상에 가장 크게 기여한 부분이다.'라는 말로 두 아이의 연계성을 보여 준다. 세상은 이렇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 책이 꾸준하게 판매되고 있는 스태디 셀러가 된 이유를 알 것 같다. 좋은 책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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