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권 독서

[소피의 세계] -요슈타인 가아더

by 조윤효

긴 호흡이 필요한 책들이 있다. 첫 장을 넘기기 위해서 약간의 용기를 내야 하는 책도 있다. 바로 그런 책이 '소피의 세계'다. 오랫동안 들어왔던 책이고, 소설로 읽는 철학책이라는 말은 왠지 모르게 읽기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못 끝낸 숙제처럼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중고 서점에서 책을 봤을 때 이제 때가 왔다는 생각에 두둑한 녀석을 품고 왔다. 서양 철학의 3000년을 담아내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두께감이지만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이 짧은 사람에게는 넘어야 할 여러 산이 보인다.


저자는 노르웨이에서 고등학생들에게 철학을 가르쳤던 교사이다. 서양 철학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학생을 가르친 경험을 살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소설 형식의 철학책을 써낸 것이다. 서양 철학의 마디마디를 이어온 그 정신을 단순한 소설도 아니고, 철학에 관한 책만도 아닌 철학 정신에 관한 역사적 배경을 그린 책이라는 평이 딱 들어맞는 책 같다. 책을 다 읽고 옮긴이의 말이 인상에 남는다. '친구는 제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었지만 제 자신은 선택하지 못하는 것이다. 심지어 한 인간이고 싶은 것에 관해서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결정권 없이 세상에 왔다. 철학을 통해 자신에 대한 결정권을 찾아가는 게 아닐까.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되돌아봐야 할 것입니다.'라는 저자의 말은 그의 생각을 잘 담아내고 있다. 철학은 정신세계에 대한 해석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누구이고, 어디서 왔으며, 세계는 어디에서 생겼는지에 대한 생각을 통해 존재의 근원을 하나씩 밝혀 가는 과정이 철학이다.


소설의 첫 장면은 평범한 한 소녀의 일상을 보여 준다. 학교에서 친구 요륜과 돌아오는 14살 소피. 집 우편함 속에 '너는 누구니?'라는 질문의 편지는 잔잔한 그녀의 평범한 일상을 흔들어 깨운다. 그녀 앞으로 도착하는 편지들과 두툼한 글들은 철학 선생 '알베르토 크녹스'가 보낸 것들이다. 그의 메시지들은 그녀 삶의 중심을 차지하기 시작한다. 소녀의 일상과 그녀에게 전해 주는 철학적 메시지는 시대 순으로 이루어진다. '이 세계는 어디에서 생겨 났을까?'라는 두 번째 메모에는 수신인이 '소피 아문젠 댁의 힐데 묄러 크낙에게'라고 적혀 있다. 마치 추리 소설처럼 두 소녀의 연관성을 예측하는 재미가 있다.


소피의 할머니가 앓던 병명을 알게 되었을 때 소피에게 해준 말이 인상 깊다. '무릇 사람들 대부분이 병이 걸리기 전에는 인생의 아름다움을 전혀 깨닫지 못하니 슬프지 않은가'라고 소피는 죽음을 앞둔 할머니의 이야기를 생각한다. '이제야, 넉넉한 삶이 무엇인지 좀 알 것 같구나!'라는 대사는 책의 의도를 보여 준다. 신이 주신 삶의 들판에서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이런 질문을 들고 있을 때 우리는 감히 철하자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훌륭한 철학자가 되려는 우리에게 필요한 오직 한 가지는 놀라워할 줄 아는 능력이다.'라고 한다. 일상을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은 신의 영역에서 근접한 곳에서 나온 아이 정신을 통해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훌륭한 철학자가 되려는 우리에게 필요한 오직 한 가지는 놀라워할 줄 아는 능력이다.' 삶을 마술사의 모자에서 튀어나온 토끼의 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로 묘사한다. 털을 타고 기오르는 사람과 그 속에서 안주하는 사람들의 묘사는 독특하다. 깨어있는 삶을 누리길 원한다면 안주를 선택하는 게 하니라 그 토기 털을 타고 기어오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양의 철학과 종교는 직선적인 구조에 그 근거를 두고 있고 동양의 것은 원형식이라는 저자의 설명은 큰 틀을 이해하기 쉽게 해 준다. 그리스 중심의 문화에 기독교 정신이 스며든 유럽 문명의 뿌리도 잘 보여 준다. 동양의 힌두교와 불교는 철학적 성찰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유럽의 역사관은 역사의 처음 있고 끝이 있다는 사고 즉 직선적 역사관이라는 알베르토 크녹스 철학 선생의 이야기는 서양 철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샘족 문화 배경을 가지고 있고, 역사의 역할은 신이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역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결국, 역사적 뿌리를 추구하는 유럽 종교는 경전 공부에 중심을 두는 것이란다. 여전히 예루살렘이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서는 중요한 곳일 수밖에 없으나 이로 인해 분쟁의 씨앗이 되어 지속적인 종교 갈등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이해할 것 같다. 인도 게르만인 동양 종교 생활은 자기 성찰과 명상을 통한 것이라면, 셈족인 서양 종교는 기도, 설교, 교리에 중점을 두는 종교 생활이라는 말은 다시 한번 서양과 동양 종교의 기본적인 차이를 인식하게 해 준다.


소피와 철학 선생의 첫 수업은 아담과 이브 이야기부터 시작해 신화 이야기 그리고 초기 그리스 철학자들의 사상인 자연 철학을 이야기한다. '소피는 근본적으로 철학은 배워서 익힐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지만 아마 철학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울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라는 말에 저자가 원하는 책의 목적이 '철학적으로 사고하고자 하는 사람들'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힐데와 소피의 생일이 같고 소피의 방에 힐데의 물건들이 발견되는 장면들은 마치 추리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소설 중반부터 소피와 힐데의 연관성에 역전이 일어난다. 형식의 반전에 깜짝 놀라 서로의 연관성이 아니라 어느 게 진짜 삶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만든다. 레바논에서 근무하고 있는 소령이 힐데의 아빠다. 그의 딸 힐데에게 생일 선물로 '소피의 세계'라는 책을 통해 삶의 근원적 질문을 일깨워 주고자 한 것이다. '슬픈 사실은 우리가 자라면서 중력의 법칙에만 익숙해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지. 동시에 이 세계 자체에 길들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 대부분이 일상생활에 쫓겨서 삶에 대한 경이감을 잃어버린다.' 한 사람의 사고 속에서 존재하는 세계에 살아가는 기분은 어떨까? 우리 또한 그 누군가의 상상에 의한 삶을 오로시 내 삶으로 내 의지로 살아가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살아갈 수도 있다.


탈레스부터 헤라 클레이 토스, 유물론자 데모크리토스, 인간을 만물의 척도로 본 프로타고라스 그리고 키케로로 이어지는 철학자들의 다양한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는 학교 시절 만났던 내용들로 완전히 생소한 느낌은 없다. 단지, 철학적 사고의 흐름이 어떻게 역사를 만들어 가는지 그 과정을 보여 주는 것 같다. 그 양이 너무 방대해지다 보니 후반부의 3분의 1은 가뿐 숨을 들이켜게 한다.


하나의 사상이 태아 나고 그와 반대되는 또 다른 사고가 태어나 서로 상치되기도 하고 서로 영향을 주어 또 다른 사상이 태어나 계속해서 인간 역사의 강물의 흐름이 결정되는 것 같다. 철학자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필로 소포스 (Philo-Sophos)의 의미라고 한다. 지혜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역사와 철학을 통해 바른 인식이 선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는 듯하다. 올바른 인식은 올바른 행동을 유도한다고 한다. '묻는 사람은 항상 위험인물이다. 대답하는 것은 위험하지 않지. 수천 가지 대답보다 그저 질문하나 가 많은 불씨를 안고 있을 수 있단다.'라는 철학 선생의 이야기는 삶은 질문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플라톤과 아리스토 텔레스 그리고 마케도니아, 시리아 이집트에서 융성했던 헬레니즘에 대한 이야기는 점점 철학의 질량감을 느끼게 해 준다. 마케 도니아 왕이었던 알렉산더 대왕은 이집트와 인도에 이르는 전체 오리엔트들을 그리스 문명과 연결시킨 인물이라는 해석도 역사 이해에 도움이 된다. 스토아학파였던 황제 아우렐리우스 사상 이야기 그리고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영혼 속에서 신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간다.'라고 했던 신비주의에 대한 내용으로 이어 진다. 힌두교 사상을 서양에 전하는데 기여한 스와미 비베 카난다의 인용 말도 인상에 남는다. '어떤 종교에서는 자기만 믿고 신을 믿지 않은 사람을 무신론자라고 말한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믿지 않는 사람을 무신론자라고 말한다. 자기 영혼의 숭고함을 믿지 않는 것을 우리는 무신론이라고 말한다.' 자기 영혼의 숭고함을 믿다는 다 함은 자신을 사랑하는 자기애 윗 단계 같다. 모든 인간에게 숭고함이 있다는 생각은 마치 아우구스 티누스가 말한 '모든 존재자는 신적인 본성을 갖고 있다.'라는 말과 일치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스 신화적 세계관을 지나 르네 상스 시대를 맞이하고 다시 바로크 시대를 흘러가는 역사의 흐름은 모두 이해하기에는 버겁다. 이렇게 스치는 지식은 한겨울의 첫눈이 땅에 녹아들듯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지속해서 관련 책들을 만나다 보면 어느 순간 수북이 쌓인 눈이 풍경을 만들어 낼 것이다. 바로크 시대의 구호인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나, 머 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은 여전히 인용되는 글귀다. '오늘을 즐기라'는 카르페 디엠, '죽음을 기억하라'는 머 멘토 모리는 여전히 삶의 본질에 대한 대답을 찾는 사람들의 의식 속에 남아 있다.


계몽주의와 낭만주의를 지나 마르크스 사회주의 그리고 프로이트의 정신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주는 소피의 이야기는 소녀 힐데의 삶의 철학을 심어 준다. 그래서 그녀의 아버지가 준비한 15살 생일 선물은 아이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 반드시 필요한 철학이라는 인생 과목이다. 어른이 되기 전에 아이들에게 필요한 과목이 철학이 되어야 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 그래서 유럽의 강대국들이 고등학교 교과목으로 철학을 선택하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철학을 돌려주어야 한다. 대학이라는 작은 문을 위한 과목을 배우게 하는 교육 시스템은 삶을 윤택하게 살아갈 방법을 찾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다. 인생이라는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철학이라는 과목이 필요하다. 아이든 어른이든 노인이든 철학자로 살아 가야 삶의 모든 영역에서 꽉 찬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준 책이다. 이 책 덕분에 400쪽짜리 책도 가뿐하게 느껴진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도 삶의 발거음을 가볍게 해 준다. 철학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마중물이 되어줄 책인 것 같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하루 한 권 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