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제작되어 제법 알려진 책이다. 다들 알고 있을 듯 할 때 나만 모르고 있다가 시간이 지나고 혼자만의 판단으로 만나고 싶은 책과 영화들이 있다. 그 중 하나인 책이기도 하다.
중고 서적들 사이에서 그래도 한 번씩 들어 봤던 제목의 책을 구입해 읽다 보면 실패할 확률이 낮다. 책 읽기가 지칠 때 머릿속이 복잡할 때 가끔 소설책을 읽어 본다. 현실 속의 삶과 소설 속의 삶의 빛깔은 다르지만 삶이라는 공간 속에서 있을 법한 내용이 소설 속에서는 그 농도 가 더 진하다.
저자 박현욱 소설가는 독특한 이미지다. 책 첫 장을 넘 지자 마자 그의 사진과 함께 약력이 소개되어 있다. 마치 70, 80년대 장발 직전의 머리 모양 속에서 다른 인생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필하는 듯한 느낌이다. 게그 프로에서 이수근 씨가 저자의 헤어스타일 같은 가발을 쓰고 코미디를 선보이는 듯한 분위기다.
저자는 자신의 책을 '행복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책을 읽는 동안 머리는 쉴 수 있었다. 단지, 기존의 제도에 아무런 저항 감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적 기준과 가치가 맞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축구를 연애와 결혼 생활로 비교해서 비빔밥 비비듯이 조화롭게 잘 어울리게 글을 써 내려간 것 같다. 축구 팬들은 저자의 해석이 제법 재미있을 듯하다. 읽고 나서 지단, 호나우도, 베컴 등등 선수들이 축구하는 사진들을 찾아보았다. 삶의 전혀 다른 영역에서 살고 있는 그들의 몸에서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보였다. 축구 경기장이라는 인생의 필드에서 골키퍼라는 방해물과 상대 수비수의 수많은 방어막을 뚫고 원하는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삶의 경기장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첫 장의 내용이 충격 적이다. '아내가 결혼했다. 이게 모두 다... 나는 그녀의 엄연한 현재 남편이다.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녀 역시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인생은 엉망이 되었다.' 남자의 시선으로 결혼과 연애관을 잘 보여 준다. 그리고 진행되는 과정을 축구와 비교하는 기법은 자칫 어두워질 수 있는 소설 속 배경을 산뜻하게 해 준다. 남자의 입장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라 여자인 내가 여자 편이 되어야 하는데 왜 남자의 편에 서서 그의 부인의 태도에 거부감이 드는 걸까. FC바르셀로나 팬인 부인 인아와 레알 마드리드 팬인 남편 덕훈의 인생 플레이어를 보면서 마치 룰이 바뀐 축구경기를 보는 관람자의 당혹감을 느낄 수 있다.
일부다처제는 아직도 몇몇 국가에서 허용되는 시스템이다. 남자의 사회적 주도권이 우월한 사회에서 자신의 종족을 여러 곳에 번식시키고자 하는 동물적 욕망과 닮았다. 하지만, 여성의 권력이 높아 일처 다부제, 책에서는 폴리 피델리티라고 하는 사회적 제도는 상당히 낯설다. 결혼 전 자신의 결혼관 때문에 청혼을 거부했고, 그녀의 독특한 사고관을 허용한다는 전제하에 그녀와 골인한 남편 덕훈은 결혼 후 설마 했던 일이 벌어진다. 어느 날 갑자기 놓치고 싶지 않은 또 다른 남자를 알게 되었고, 그와도 결혼을 하고 싶다고 한다. 가부장적 제도 중심의 한국의 전형적인 남자의 고민들이 요란하게 책을 흔들어 댄다. 결국, 그녀를 잃고 싶지 않아 삼각 형의 안정적(?) 결혼 모델을 만들어 낸다. 절묘하게 삶의 외발 자전거를 끌고 나가는 사람은 부인 인아다. 아이가 태어나자 덕훈의 머릿속은 더 복잡해진다. 딸 지원이를 향한 이중 감정은 인간이라면 모두 느낄 수 있는 그런 번뇌 중 하나다. 두 집 살림을 하는 인아는 마지막 삶의 터전으로 뉴질랜드 이민을 결정한다. 두 남자와 한 집에 사는 것까지 이끌어 낸 그녀의 힘이 독특하다. 남편 덕훈의 마음속은 온통 자신의 경계를 만들고자 하는 시종일관되는 전투태세를 만들어 내지만 결국 타협이라는 삶의 선을 선택한다. 약해 보이지만 강하고, 강해 보이지만 유한 두 인물이 조화를 이룬다.
결혼 제도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우리 부부 모두 결혼을 늦게 했었고, 꼭 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약했었다. 결혼 제도는 안정된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오랜 기간 만들어 온 인간의 창작물이다. 누구나 다 할 수 있지만 인생의 필드에서 골인하는 사람은 소수다. 인생 필드에서 공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향해 뛰어다니다가 많은 태클을 만나고 지치기도 하고, 결국은 골대에 원하는 공을 넣을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다. 마치, 그 수많은 축구 선수들 중 탁월한 플레이어가 소수 이듯이 인생 필드도 마찬 가지다. 결혼이라는 색다른 틀을 제시하는 저자의 상상력은 웃음을 선사한다. 이미 동성 결혼도 합법화된 곳이 생기고 있고, 책에서 나오는 이야기처럼 폴리 피델리티 삶을 지양하는 폴리아모리스트들이 모여 사는 곳도 있다고 한다. 결혼만큼 삶의 큰 변화를 주는 것도 드물다. 삶의 방식을 스스로 만들어 내어 독특한 자기만의 색채로 살아 가는 게 인생이다. 책 속의 그들의 삶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생은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질주가 아니라 산책하듯이 꾸준히 걸어가야 하는 긴 여행길이다. 여행은 과정이 즐거워야 한다. 결혼관에 대한 독특한 인아의 기준이 인상 깊다. 그 저변에 깔린 용기와 배짱 그리고 자신감이 있었기에 가능한 시도다. 세명의 나이 든 노인들이 지는 석양을 보고 흐뭇하게 삶의 황혼을 즐길 것 같은 엉뚱한 생각이 든다. 결혼의 룰을 벗어던진 소설은 곧 다른 형태의 결혼의 탄생을 야기 할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