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권 독서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피에르 쌍소

by 조윤효

습관처럼 미래를 보고 앞으로 치닫는 몸짓이 몸에 배어 있다. 그래서 '느리다. 굼뜨다'라는 표현은 마치 삶의 경주에서 패배에 익숙해질 거라는 속삭임처럼 들리기도 한다. 삶의 가속이 일상이 되기 전에 책을 통해 살짝 브레이크를 밟고자 읽은 책이다. 저자 피에르 쌍소의 느림 예찬은 한 여름의 산들바람처럼 잔잔한 행복감을 준다. 그는 일상들 속에 자신의 철학을 다소곳이 꽂아 책들 사이사이에 프랑스 문화를 맛볼 수 있게 해 준다. 읽다 보면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지만 문화가 달라 생소한 부분도 있다. 철학 교수이자 에세이스트인 그가 쓴 책은 프랑스 논픽션 1위였다고 한다. 프랑스 인들의 정서와 잘 맞아떨어져서일 것이다.


느리게 사는 지혜를 이야기한다. 빈둥거릴 것, 자기 만의 시간을 가질 것, 들을 것, 꿈을 꿀 것, 기다릴 것, 취미를 가질 것, 쓸 것, 절제를 가질 것 등등.... 책의 첫 장은 파스칼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앉아 휴식할 줄 모른다는 데서 비롯한다.' 고요함에 익숙한가. 늘 가족에 둘러 쌓여 있고, 아이들의 제잘 거림 속에 살아가는 네게 고요함은 참을 수 없는 지루함일 때가 많았다. 책을 읽으면서 '고요한 시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그리고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현존하는 나를 만날 것인가'라는 질문이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 구글 창에 'How to spend time'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다양한 의견이 많았는데 대략, '책을 읽어라, 써라, 취미를 가져라, 사회에 봉사해라'라는 의견들이 많았다.

새벽의 고요함은 하루의 첫 장이라 마음이 분주하다. 하지만, 느닷없이 주어지는 한낮의 고요를 맞이해 본지는 오래되었다. 그 한낮의 고요를 적극 대면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고 저자가 이야기하는 듯하다.


저자의 느림에 대한 찬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느림. 내게는 그것이 부드럽고 우아하고 배려 깊은 삶의 방식을 보여 준다.' 삶의 우아한 몸짓이 느림일 수 있다. 느림은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삶의 선택에 관한 문제라는 점을 그는 독자에게 이야기한다. 느림의 삶을 받아들이기 위한 선택으로 한가로이 거닐기와 모데라토 칸타빌레 즉 절제가 아니라 아끼는 태도 방식을 이야기한다. 닮고 싶다. 아무 애정이 없는 권태가 아니라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사소한 일들을 소중하게 인정하고 애정을 느끼기 위한 권태을 이야기한다. '한번 소홀하게 넘어가 버린 유년기는 영원히 소멸되고 돌아오지 않는 법인데......'라는 이야기는 하루하루 소멸해 가는 삶을 살아가는 전 생애에 해당되는 내용이리라.


'느림이란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려 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에서 나오는 것이며, 또한 삶의 길을 가는 동안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겠다는 확고한 의지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느리지만 예리한 눈으로 자신과 세계의 삶의 조화를 이루려는 저자의 자세가 보인다. '삶은 내가 조금씩 아껴가며 꺼내 놓고, 싶은 행운인 것이다.'라는 말이 가장 인상 깊다. 어릴 적 할머니가 손주를 위해 주머니 깊숙한 곳에 사탕을 숨겨 두시듯이 신 또한 사랑하는 그의 자식들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 달콤한 사탕을 숨겨 두셨으리라. '삶. 그것은 마치 파도처럼 넘실 거리며 다가오고, 햇살처럼 좍 퍼져 나간다. 그것은 세차게, 도도하게 흘러가는 강물이나 거세게 휘몰아치는 회오리바람이기보다는 섬세한 작은 물방울들 같은 것이다. 그것은 강한 힘이기보다는 부드러운 빛과 같은 것이다.... 모든 인류에게 똑같이 부여된 이 삶이라는 특권을 참되게 누리기 위해서, 나는 나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라는 표현이 멋스럽다. 섬세한 작은 물방울 같은 삶의 특권을 누리기 위해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그리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삶을 관찰해 봐야 한다. 그래야, 신이 숨겨 두신 삶의 곳곳의 그 달달한 사탕을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행위는 타인을 위로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과 그 말을 진지하게 들으려는 사람, 이 두 사람의 만남은 말하자면 하나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어쩌다 운 좋게 이루어진 것으로서, 미처 기대하지 못했던 기분 좋은 사건이다.' 대화의 또 다른 발견이다. 기분 좋은 사건을 만들어 가는 삶이 행복한 삶이다.


저자에게 권태는 세상으로부터 벗어나고, 그랬다가 다시 돌아가 세상의 새로운 맛을 더 잘 느끼기 위한 선택한 삶의 방식이라고 한다. 절제된 권태를 이야기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권태는 우리의 생각 속에서 둥지를 틀어야 한다. 우리를 가두어 놓은 온갖 것들을 느긋한 마음으로 멀지 감치 서서 바라보며 하품하는 것, 그보다 더 건강에 좋은 것이 어디 있을까' 고급스러운 권태라고 이야기하는 저자는 '당신이 살게 될 도시와 갖게 될 직업, 삶을 함께할 미래의 배우자, 친구들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지혜의 안내를 받을 수 있기를!' 조용하게 타인을 위한 기도도 잊지 않았다.

'만일 내가 나 자신의 가치를 확신한다면, 굳이 사회적 위치를 구분해 주는 흔적들을 쌓으려고 애쓰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은 무엇이 먼저 인지를 보여 준다.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인정하는 게 먼저다.


보는 일에 열중해서 더 많이 보고, 더 잘 보도록 노력하라고 이야기한다. 행동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신 더 많은 생각으로 그 자리를 보충하려는 저자의 삶의 방식은 그가 책에서 이야기하는 포도주를 닮았다. 태양을 잔뜩 먹은 포도로 술을 만들어 지하 창고에 넣어 두고 인생의 특별한 행사를 위해 그 포도주가 익어가는 시간을 기다리는 마음이 느림의 미학과 닮았다. 느림은 한 사람, 하나의 사건을 시험해 볼 기회를 제공하며, 시간이 이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볼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그의 표현이 재미있다. '나는 더 이상 행동가가 못 되므로 이제는 특권을 누리는 구경꾼이 되고 싶다.' 그의 이야기처럼 느림이나 빠름은 그 자체가 본질적인 요인들이 아니라 전체의 조화에서 나오는 느낌이라는 생각에 공감이 간다. 그 전체 안에서는 각 요소가 원인이자 결과이며, 일부이자 곧 전체라는 말은 결국 삶의 연주자인 우리가 느림과 빠름을 조절하는 조절자임을 잊지 않게 해 준다.


계절에 대한 그의 표현도 좋다. '계절들에다가 눈에 보이는 특징 하나씩을 부여해서 강제로 짝지어 놓은 것은 바로 우리 인간들이다..... 겨울은 우선 우리의 코 끝에 빨간 점을 찍어 놓는다.' 그 겨울이 갔고 봄을 지나 어느덧 6월의 문턱에 들어선 우리에게 그는 이야기한다. 평범한 일상에서 우리의 감각을 세련되게 다듬는 일을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은지 묻는다. 올림픽 경기 슬로건이 '더 높이, 더 빨리, 더 멀리'라고 한다면 우리는 '덜 높게, 덜 빠르게, 덜 멀게'라는 삶의 경기 슬로건이 필요하다고 한다. 때에 따라서 돌아가기도 하고 쉬기도 하고, 길을 잃고 헤멜 수도 있는 그런 문화도 있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엄마의 손길을 닮았다.


'인간은 언제나 지나치게 능란한 솜씨로 자연을 모방하려고 애쓴다.' 강둑을 포장도로보다 더 단단한 콘크리트로 온통 발라둔 것을 빗 데어 '사람의 손에 길들여진 강이 마침내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게 되었다.'라고 표현한 그의 예리한 시선도 느림에서 나온 생각의 산물 같다. '산다는 것은 환경과 내가 서로 익숙해지는 것을 말한다.'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해서는 살아가는 걸음이 느려야 한다.


그의 책은 삶의 속도를 조절해주는 음악 교본 같은 책이다. 느리게.... 빠르게.... 그리고 더 느리게..... 삶의 교향곡을 지휘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다양한 음역을 보여주고 싶어 한 저자의 이야기들이 프랑스 센 강을 한가로이 걸어가는 사람들과 닮아 있다. 그의 책을 통해 인생은 해치워야 할 사건이 아니라 누려야 할, 슬로비디오로 봐야 할 소중한 과정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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